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genia Sep 06. 2023

중국 조식 한 상 차림과 국빈의 발자취 - 용허셴장




용허셴장

永和鲜浆/영화선장

北京市西城区阜成门外大街3号楼一层5门

월~일 6:30~20:00


대륙의 수도인 베이징은 과거 황제가 거주하던 자금성(고궁)을 중심으로 성문과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1950년대 들어서서 이 성벽은 모두 철거되고 이 길을 따라 지하철 2호선이 건설되었다. 그 중 자금성 서쪽에 위치했던 부성문(푸청먼/阜成门)은 서쪽 먼터거우 지역에서 생산된 석탄을 베이징 성내로 운반하는 성문이었다. 지금은 성문이 사라지고 거리 이름으로만 남은 이 사거리를 중심으로 한 쪽은 거대한 금융가가 형성되어 현대적인 풍경이고, 반대편은 전차선이 하늘을 가르고 옛 골목의 정취가 남아있는 과거 풍경을 지니고 있다.


부성문외대가 3번지(阜成门外大街3号楼)에 위치한 평범해 보이는 중국 조식당이 있는데, 2017년에 우리나라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방중시에 조식을 먹었던 곳이라 화제가 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식당 앞 거리에는 택배 차량들이 물건 분류하느라 바쁘다. 베이징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친근한 풍경이다.


식당에 들어가면 새벽부터 북적이는 모습에 놀란다. 이 식당이 맛집이긴 하지만 베이징 어디에나 파는 일반적인 메뉴이고 이 정도 맛을 내는 곳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의 이른 기상과 아침 식사 사랑을 새삼 느낀다.


가게 한 켠 모니터에 방중 당시 식당에서 대통령 내외와 수행원들이 식사하는 모습이 반복재생 중이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우리가 한국인인 것을 눈치챈 주인이 재빨리 이 자리로 안내한다.


12월 14일 이 식당 방문 후 이틀만인 16일에 중국 네티즌의 성원에 힘입어 문재인 전 대통령이맛 보았던 메뉴들을 재구성하여 ‘대통령세트(总统套餐)’를 선보였다. 담백고소한 콩국물인 또우장(豆浆), 꽈배기 모양의 튀긴 빵 요우티아오(油条), 육즙 가득한 만두 샤롱바오(小笼包), 그리고 뜨끈한 만둣국인 훈툰(馄饨)으로 구성된 이 세트는 당시 35위안(한화 약 6,300원)으로 판매되었다. 이 음식들은 정말 너무나 평범한 중국 아침 메뉴의 대표들로서, 이른 아침 길거리 가판대에서조차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다.


이 식당은 음식 가격이 전반적으로 저렴한데, 맛이 꽤나 좋다. 그래서 우리가 거주하는 왕징에서 멀지만 종종 생각이 나서 주말 아침 뜨끈하게 속을 채우러 온다. 특히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 이후에 특히 생각나는 식당이다.

대통령세트 그대로 주문해 본 날. 양이 꽤 많다.


요즘 중국 어느 식당에서든 큐알코드 스캔하여 핸드폰으로 주문하는데, 이 식당은 아직까지 종이 주문표에 연필로 직접 표시해야 한다. 나는 핸드폰에서 클릭하는 거보다 이런 방식이 더 정겹고 편하다.

담백고소한 또우장, 속이 꽉찬 왕만두 빠오즈, 한 그릇 먹으면 속이 편해지는 훈툰, 느끼함 없는 요우티아오, 매콤한 요우티아오로 속을 채운 계란전병 등 모두 강력 추천!


식당 이름인 용허선장의 선장=시엔쟝은 신선한 콩국물(또우장)을 의미하는 만큼, 이 집 또우장은 정말 엄지 척이다. 식당 입구에는 또우장 만드는 기계와 포장 용기들이 가득이다. 몇 병 포장해와서 차갑게 또는 따뜻하게 먹으면 좋다.

6년 전의 대통령 방중에다가 코로나를 지나오며 한국 여행객들의 발길도 뜸해지고 교민도 많이 줄어들었지만 최근까지 방문해본 이 식당에서는 여전히 모니터에 대통령 식사 장면이 방송되고, 대통령 내외가 앉았던 자리를 표시해두었다. 오르락 내리락하는 한중 관계 속에서도 별 개의치 않는 주인 할아버지의 소박한 식당으로 오래 남아주길 바래본다.




국빈의 발자취, 조어대와 은행나무길

용허셴장 식당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조어대라는 곳이 있다. 조어대(댜오위타이/钓鱼台)는 과거 황제들이 이곳에서 낚시를 하던 황가원림(古代皇家园林)이자, 현재에는 외국 국빈의 숙소와 회의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통령 방중 때 왜 용허셴장에서 조식 기회를 가졌는지 이해가 되었다.


이 조어대의 동측 담벼락은 10~11월 중 베이징 대표 은행나무 감상지 중 한 곳이다. 가을에는 은행나무를 감상하러 인파가 몰리기 때문에, 용허셴장에서 이른 조식을 먹을 후 떠오르는 해를 보며 인파가 적은 시간에 감상하면 안성맞춤이다.


조어대 동문 앞, 국빈관으로 사용되는 곳이라서 경비가 삼엄하다. 하지만 담벼락따라 길게 심어진 은행나무길을 보니 누구나 감상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 자연의 모습에 긴장감은 사라지게 된다.


일요일 이른 아침이지만 제대로 된 의상과 전문적인 촬영장비 갖춘 사람들이 가득했다. 아마도 날이 밝아질 수록 주말 나들이 인파로 대단할 듯 하다.


따스한 침대 속을 뿌리치고 조금 일찍 기상하면 여러 모로 얻는 것이 많다. 그 매력에 한 번 빠지면 갈 곳이 무궁무진한 베이징의 조식당과 한적한 아침 볼거리들이 차차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일단 한 걸음 옮기면 계속 하고 싶어지는 마법에 빠지게 된다.




이전 02화 시공간의 순간 이동 - 릴리즈 아메리칸 다이너(LAD)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