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시민은 뉴요커(New Yorker), 런던 시민은 런더너(Londoner), 서울 시민은 서울라이트(Seoulite), 베이징 시민은 베이징런(Beijingren/北京人).
단지 그곳에 거주한다고 해서 이런 별칭을 얻을 수 있을까?
거주하는 도시에 걸맞는 생활 방식과 그 도시에 대한 일정 수준의 애정이 기본 전제가 아닐까?
‘애’와 ‘증’이 공존하다 결국 정이 들어버린 이 도시를 탐색하러 오늘도 주말 이른 아침 눈 비비고 일어난다.
인산또우즈
윤삼두즙/尹三豆汁
北京市东城区天坛街道东晓市街176号
월~일 05:30~12:30
또우즈 (豆汁/Fermented Soya-bean Milk)
옛 베이징의 특색 전통 음식 중 하나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녹두를 주 원료로 하며 전분을 걸러서 발효한 일종의 콩국으로, 위장 보호와 해독 등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일찍이 요, 송나라 시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며 청나라 건륭황제 때는 궁궐 음식이 되었다. 색상이 윤기 나고 녹회색을 띠며 부드럽고 새콤하면서도 약간 달달한 맛이 특징이다.
보편적으로 무난하게 먹는 중국 조식 중 하나인 고소한 콩국물 또우장(豆浆)이 아니라 또우즈(豆汁),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또우즈!!
발효된 시큼한 맛으로 인해 상당히 호불호가 갈리는 쉽지 않은 음식이라 들었기에, 겁을 잔뜩 먹고 도전하는 마음으로 조식당으로 향했다. 호기심 반, 걱정 반.
베이징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천단공원(天坛公园) 북문 바로 앞에 위치한 이 식당은 진정한 ‘조식당’이다. 아침 전용 메뉴를 따로 판매하며 종일 영업하는 일반 식당과 달리, 이 식당은 정말 ‘아침’ 시간에만 영업을 한다. 새벽 5시 반에서 12시 반까지 하루 반나절만 영업하지만, 인기가 좋아서 늦으면 이미 매진이거나 문 닫은 상태라고 한다.
식사하는 사람들 90% 이상이 노인분들이었다. 그만큼 역사와 전통을 지닌 식당이라는 뜻임과 동시에, 베이징 옛 맛을 기억하고 즐기는 사람들의 연령대를 알 수 있었다. 7~8시 정도면 정말 피크 타임. 이게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이른 아침부터 이 허름한 식당에 몰려오는 것일까, 정말 정말 궁금했다.
또우즈 포함하여 모두 낯선 메뉴들이라 주변에서 주문하는거 보고 눈치껏 시켜보았다.
또우즈(豆汁) = 녹회색 콩국물.
쟈오촨(焦圈) = 꽈배기의 일종으로 또우즈와 주로 곁들여 먹는다.
멘차(面茶) = 죽과 비슷한 형태로, 부드러운 식감과 진한 맛을 가지는 간식이다. 주 식재료는 노란 좁쌀가루와 마장(깨소스), 참기름, 소금이 들어간다.
탕훠샤오(糖火烧) = 달달한 빵. 촉촉하기 보다는 조금 퍽퍽한 식감.
결론적으로, 너어어어어어무 시큼하여 입안의 모든 침샘이 폭발하며 그 시큼함을 어쩌지 못하여 어깨가 자꾸 위로 올라가는 맛이었다. 정말 쉽지 않았다. 그래도 성의를 보이고자 꽈배기빵 뜯어서 찍어 곁들여 먹어보았다.
오래된 베이징 거주자를 일컫는 라오베이징런(老北京人)들이 즐겨 먹는 몇 가지 쉽지 않은 음식들이 있다는데, 또우즈도 그 중 하나. 진정한 베이징런의 길은 멀고 험하다. 외국인으로서 무모한 도전이었으나, 경험해본 것으로 만족하는 독특한 조식 경험이었다. 그래도 난 또우즈를 먹어봤다!
베이징에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7곳이 있다. 바로 고궁(자금성), 만리장성, 주구점북경원인, 천단, 이화원, 명13릉, 경항대운하인데, 이 중 베이징 시내 한가운데 위치한 고궁은 사전 예약이나 검문검색 등이 까다로워서 자주 방문하기는 어려운 반면, 천단은 천단공원이라는 이름을 지닌 만큼 관광객 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 부담 없이 개방된 곳이다. 입장료도 저렴하다.
천단공원(天坛公园/티엔탄공웬)은 면적 283만m2에 이르는 광대한 공원으로, 원래 천단은 제천의식, 즉 오곡풍양(五穀豊穰)을 위한 기우제와 풍년제 등을 올리기 위해 1420년 명대의 영락제가 건설한 제단이다. 자금성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천단(天坛), 북쪽에는 지단(地坛), 동쪽에는 일단(日坛), 서쪽에는 월단(月坛)이 있어 각각 하늘, 땅, 해, 달에 제사를 지냈는데, 그 중 천단은 황실 최대의 제단이었다.
새벽 06:00에 오픈하여 밤 22:00까지 개방된 공원.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는 유명 관광지이자 동네 공원이라는 두 가지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흥미로운 장소이다. 인산또우즈에서의 충격적이고 범접하기 어려운 아침 식사로 인해 진정한 베이징런이 되는 멀고 험난한 길을 깨달았다 해도, 아직 늦지 않았다. 천단공원을 거닐다 보면 베이징런이 별거냐 싶은 생각이 들게 된다.
천단공원의 가장 핵심 건축물인 기년전(祈年殿)은 저 멀리서만 감상해본다. 예전에 몇 번 이곳에 올 때마다 관광객 모드로 기년전 앞에서 사진 찍고 그 부근에서만 머물다 갔었다. 오늘은 그냥 동네 주민 모드가 되어 보기로 했다.
여기가 유명 관광지이든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든, 넓은 공터만 있으면 이른 아침 열심히 운동하는 베이징런들을 자주 보게 된다. 노년의 건강한 생활 습관에 있어서는 중국에 이런 모습이 배울 만하다고 생각한다. 중년 아줌마들의 광장무(廣場舞)를 보면 내 몸도 따라서 들썩거린다.
천단공원이 유명한 또 하나의 이유는, 녹지 면적 180만 평방 미터라는 어마어마한 넓이로다양한 식생을 품고 있어서 계절마다 다채롭고 풍성한 나무와 꽃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베이징 내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측백나무숲을 보여하고 있는데, 오래된 측백나무가 3562그루. 그중 300년 이상 수령이 1,100여 그루나 된다고 한다.
붉은 색 이름표는 수령이 300년 이상, 초록색은 100~300년 사이 된 나무라는 뜻이다. 각 나무에 붙어있는 큐알코드를 스캔하면 나무에 대한 상세 정보를 알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나보다 훨씬 어르신인 나무들의 신분증이자 이름표를 읽으며 산책하다 보면, 동네 공원인듯 가볍게 산책하던 마음이 숙연해진다. 몇 세기에 걸쳐 천단의 주위의 다양한 인간사 천태만상을 모두 지켜보았을 조상님 나무들 아닌가.
베이징 도심에서 한 시간 정도만 차로 달리면 만리장성으로 둘러싸인 웅장한 산들이 나타난다. 주말이나 연휴에 드라이브하며 훌쩍 다녀올 수 있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손에 닿을 듯 펼쳐져있다. 베이징런의 삶이 별거냐. 중국 전역이나 해외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유명 관광지를 언제든 바람 쐬듯 훌쩍 다녀오는 게 베이징런의 일상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