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유진 EUGENIA Oct 12. 2024

삶은 죽음을 향하여, 삶은 죽음의 전주곡

클래식 음악으로 죽음 읽기, 리스트: 전주곡


리스트, 전주곡


'죽인다', '죽을 만큼 힘들다', '죽을래, 아니면 나랑 살래' 등 우리나라만큼 관용적인 표현에 죽음이 많은 나라가 있을까요? 그러나 삶을 돌이키다 보면, 늘 죽음에 대한 이야기하는 우리네 삶이 어쩌면 필연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떤 삶을 살 것에 대한 고민은 결국 죽음이라는 종결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지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철학을 궁금해하는 이유는 본인의 사는 이유와 목적에 대해서 '잘' 알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네 모든 삶은 죽음으로 귀결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한정된 삶을 잘 살기 위해서는 어떤 삶의 모습으로 죽음을 맞을 것인가에 대해서 묻는 건 당연하죠. 우리는 지금 이 순간도 죽음을 향해 가고 있으니까요.


실제 실존주의 철학가 하이데거는 "인간은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태초의 생애 첫울음을 터트리는 아이의 모습은, 생명의 탄생을 축복하는 소리인 동시에 다가오고 있는 죽음을 경고하는 소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 죽음 전 경보음으로써 "응애"를 음악으로 풀어낸 사람이 있습니다. 다시 이야기하면, 삶을 죽음의 전주곡, 즉 죽음의 전에 울리는 곡이자 경보음으로 여기고 곡을 쓴 사람이요. 바로 리스트(1811-1886)입니다. 리스트는 전주곡이라는 작품을 통하여 자신이 생각하는 죽음에 대해서 밝혔는데요. 이를 위해 곡의 프로그램에 특별히 라마르틴느의 <시적명상> 에 영감을 얻어 프로그램에 인용하고, 아래의 글을 고안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리스트의 전주곡 서문
/ "죽음에 의해 억양 되는 첫 번째이자 엄숙한 음표인 미지의 찬미가에 대한 일련의 서곡이 아니면 우리의 삶이 무엇인가? - 사랑은 모든 존재의 빛나는 새벽이다. 그러나 행복의 첫 번째 기쁨이 어떤 폭풍에 의해 중단되지 않는 운명은 무엇입니까? ”필멸의 폭발“이 그 미세한 환상을 소멸시키고 ”치명적인 번개“가 그 제단을 삼키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폭풍우 중 하나에서 빠져나와 들판의 고요한 삶 속에서 자신의 기억을 쉬게 하려고 애쓰지 않는 잔인하게 상처받은 영혼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처음에는 자연의 품에서 공유했던 자비로운 고요함을 즐기기 위해 자신을 거의 포기하지 않고, "나팔이 경보를 울릴" 때 그는 전쟁이 무엇이든 간에 위험한 초소로 서둘러 간다. 마침내 전투에서 자신에 대한 완전한 의식과 에너지의 완전한 소유를 회복하기 위해 그를 대열에 불러들인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무슨 궤변일까요. 그것이 알고 싶군요. 제가 보기에는 이런 말입니다.


LISZT said(이하 L): 죽음에 의해 억양 되는 첫 번째이자 엄숙한 음표인 미지의 찬미가에 대한 일련의 서곡이 아니면 우리의 삶이 무엇인가?

= 우리의 삶은 죽음에 대한 서곡이 아닐까? 죽음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억눌리며 자라는 첫 번째 인생의 음표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오늘이 처음이라 알 수 없이 설레며 찬미하게 되는 삶이니 말이야.  



L: 사랑은 모든 존재의 빛나는 새벽이다. 그러나 행복의 첫 번째 기쁨이 어떤 폭풍에 의해 중단되지 않는 운명은 무엇입니까?

= 사랑은 우리 모두의 빛나는 새벽이지. 그러나 처음의 사랑으로 느끼는 행복이 갑작스러운 좌절을 맞아도, 우리가 사랑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는 뭘까?


L: 필멸의 폭발이 그 미세한 환상을 소멸시키고 치명적인 번개가 그 제단을 삼키게 하는 것이다.

= 반드시 없어지고 말 죽음이, 우리의 사랑과 환상을 좌절시키고 두렵게 하는데도 말이야.


L: 그리고 이 폭풍우 중 하나에서 빠져나와 들판의 고요한 삶 속에서 자신의 기억을 쉬게 하려고 애쓰지 않는 잔인하게 상처받은 영혼은 어디에 있습니까?

= 사랑의 좌절 속에 빠져나와서 고요를 찾지 못하는 상처받은 영혼들 여기에 있지? 그만큼 사랑에 의해 쉽게 상처받는 삶을 살면서도 끊임없이 사랑에 대해서 기억하는 게 인간이지.



L: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처음에는 자연의 품에서 공유했던 자비로운 고요함을 즐기기 위해 자신을 거의 포기하지 않고, 나팔이 경보를 울릴 때 그는 전쟁이 무엇이든 간에 위험한 초소로 서둘러 간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아무것도 없는 삶을 택하지 않고, 위험하더라도 사랑을 향해 달려가지.


L: 마침내 전투에서 자신에 대한 완전한 의식과 에너지의 완전한 소유를 회복하기 위해 그를 대열에 불러들인다.

= 어쨌거나 우리는 자신만의 삶을 온전하게 살아내기 위해서, 죽음을 받아들이고 다시 사랑할 수밖에 없어.



요컨대 리스트의 전주곡은, 죽음과 삶과 사랑의 관계에 대서 이야기합니다. 삶이란 죽음을 예견하는 찬미가, 찬란하고 아름다운 노래라고 하죠. 또한 삶이란 언젠가 오는 죽음을 잊기 위해, 사랑에서 오는 "필멸의 폭발"과, "치명적 번개"를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삶과 사랑의 죽음이 끊임없이 예견되어도, 삶은 사랑을 소유하고 기억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끊임없는 투쟁을 위한 음악적 장치로 주제적 변형기법을 사용하는데요. “도-시-미”로 대표되는 주제 선율을 곡 전체에 끊임없이 변형하면서 반복하여, 곡을 이끌어가는 중심으로 구축해 나가죠. 이와 같이 주제 선율을 곡 전체를 끌고 나가기 위하여 끊임없이 변형시키는 기법을, 주제적 변형기법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마치 주제적 변형기법처럼, 언젠간 끝이 난다는 걸 알면서도 투쟁하면서 삶을 변화시켜 나갑니다. 삶이 어려운 이유는, 삶에도 사랑에도 언제 죽음이 다가올지 모른다는 막역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두려움은 삶과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기도 합니다. 끝, 곧 필멸의 죽음이 있단 것을 알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삶과 사랑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지요.


리스트는 서문과 음악을 통해 이런 말을 전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당신만 삶과 사랑에 절망하고, 삶과 사랑이 끝날까 봐 어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만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인생에는 끝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그 끝을 두려워하고, 절망하고, 어려워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태어났습니다."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곡 속 "도-시-미" 3음의 끝없는 변형이, 삶, 사랑, 죽음 등 3요소의 굴레 속에서 끝없이 고민하며 변화해 나가는 인생을 그린 것만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한번 즈음은 누구나 두려움과 절망에 잠기는 시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리스트도, 저도, 여러분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나 세상은 야속하게도 나만 빼고 잘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잘 흘러가고 있는 세상에게 악의는 없습니다. 그저 세상은 순리대로 흐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나처럼 아무렇지 않게 걸으면서도, 외로움을 느끼며 "도-시-미"는 사람이, 전 세계 이곳저곳에 수만이 있다고 생각해 보면, 기분이 조금 나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처럼 그들도 아무렇지 않은 척 걷고 있겠지요. 세 음의 주제가 끊임없는 변용을 만들어나가며 새로운 음악을 자아내듯, 수많은 도시에는 도-시-미들(?)이 각자의 장에서 서로 다른 삶의 새로움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 


곡이 끝나고 다시 재생되듯, 이 외로움과 고독도 언젠간 사라지고 다시 생기기를 반복하겠지요. 그렇게 음악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면, 음악이 저의 마음을 알아주었듯, 왠지 오늘은 누군가가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있는 것만 같은, 삶과 죽음과 사랑에 대한 희망을 동시에 느끼곤 합니다.


리스트의 전주곡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1부는 평화와 사랑에 대한 욕망, 2부는 생명의 폭풍우, 3부는 사랑의 위안과 평화로운 목가, 4부는 싸움에서의 승리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삶에서 느끼는 평화, 사랑, 폭풍, 위안, 투쟁까지. 크게 인간의 희망과 고통으로 대변되는 삶의 굴레를 훑는 이 곡은 역시, 삶은 죽음의 전주곡이라는 곡의 구상에 잘 들어맞네요.


☁️ 삶울림 lifecho____

삶 : 삶, 죽음, 사랑의 서사  = 전주곡 : 주제적 변형기

ㅣ 그 모든 속칭 '위대한' 이름들도, 
죽음의 주제는 모두에게 예외 없이 적용된다. 중요한 건 모두에게 동일한 죽음 앞에, 어떠한 삶과 사랑의 변용을 선택하고 살아갈 것인지이다. 죽음이라는 동일한 주제 아래, 다양한 음높이로 분초마다 밀려오는 감정의 파란을 불러오는, 리스트 전주곡의 주제적 변형기법처럼.





- 연주 영상 출처, The West-Eastern Divan Orchestra,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

https://www.youtube.com/watch?v=e3zbIG0MN4o&embeds_referring_euri=https%3A%2F%2Fbrunch.co.kr%2F%40eugeniaa%2F126&source_ve_path=Mjg2NjY


- 본문에서 인용한 리스트 전주곡 서문에 대한 정보와, 해당 도서의 개정판에 접근할 수 있는 e-book 채널은 아래에,


P.S. 4화에서 다룬 베를리오즈의 고정악상과 본 회차 리스트의 주제적 변형기법이 다른 점은, 고정악상은 보통 극(drama)적인 줄거리가 있는 음악에서, 하나의 관념(특정한 인물이나 줄거리를 가리킴-베를리오즈의 경우, 스미드슨이라는 인물을 가리킴)을 끊임없이 보여줌으로써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다소 문학적 장치입니다. 한편 주제적 변형기법은 극(drama)적인 줄거리 없더라도, 하나의 음악적 주제(동기와 악구로 구성된 음악의 한 단위로, 문학에서 말하는 주제와는 다름) 선율을 끊임없이 변형하고 순환시키는 것입니다. 고정악상의 초점이 음악 외적인 관념에 있다면, 주제적 변형기법은 음악적 주제의 변형에 더욱 초점을 둡니다. 정리하면 고정악상은 문학적 서사에 중점을 두고, 주제적 변형기법은 문학적 서사에 중점을 두지 않습니다만, 둘다 반복과 변형이라는 측면에서는 공통점을 가집니다.

이전 07화 최후에서 최초를, “끝에서 거꾸로 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