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으로 죽음 읽기, 윌리엄 볼컴: 우아한 유령
윌리엄 볼컴: Graceful Ghost
우리는 모든 인간이기에 필멸의 죽음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필멸의 결론이 '어차피 죽을 인생, 살아서 뭐 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저 또한 한 때, 삶의 의미를 잃고 회의주의에 빠졌던 적이 있습니다. 어차피, 죽을 건데, 왜 태어났니, 왜 태어났니, 그런 거요.
그렇게 극단의 회의를 달리다 보면, 이렇게 살아서 무엇이 득이 되겠는가 하는 내면의 경고가 들리기도 하죠. 결국 죽음을 생각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삶에 대한 의지와 함께,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 저에게 잘 사는 삶의 지표를 보여준 음악이 있습니다. 바로, 윌리엄 볼콤의 우아한 망령입니다. 우아한 죽음, 말만 들어도 잇-걸 it-girl을 뒤잇는 잇-데스 it-death 일 것 같은 이 단어. 그날부터 저의 목표는 우아하게 추모하고, 우아하게 추모받는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윌리엄 볼컴(1938~)은 자신의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하여 이 곡을 작곡했는데요. 아버지를 추모하며 래그타임이라는 장르를 가져왔다는 것이 특이합니다. 보통 추모라고 함은 엄숙하기 마련이지만, 본 곡의 래그타임은 춤곡의 일종으로써 미묘하게 어긋나는 리듬의 당김음이 특징입니다. 그 미묘한 슬픈 흥겨움이 우리로 하여금 발가락을 까닥이게 하는 곡이기도 하죠.
그의 곡을 듣다 보면, 우아하게 추모받는 아버지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우아하게 영혼을 추모하고 춤출 수 있게 하는 힘은 무엇일지 고민해 보게 합니다. 너무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그 은근한 춤곡을 듣고, 과거를 추모하다 보면, 상처를 아물게 했던 사람들과 음악이 떠오릅니다.
인생은 예상하지 못한 누군가의 우연한 위로에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하지만, 아주 가까운 존재로 인하여 가장 큰 슬픔을 얻기도 합니다.
저는 이 인생의 역설이 사람을 사랑하고 삶을 지속하게 하는 힘인 동시에, 삶이 한없이 어려워지는 이유라 생각해요.
인간을 제하고도, 우리가 위로를 얻는 글, 음악, 영화, 예술 모두 인간이 만들었다는 것은, 인간이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다시금 생각해보게 합니다. 아마도 삶을 살아가다 겪는 절망의 늪에서 사람과 예술에게 위로받는 일은, 인간의 보통적인 일상이기에 우리가 지금도 글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사람과 부대끼고 살아가는 이유일 겁니다.
어쩌면 각자가 부대끼는 사람과 음악을 통한 우연한 위로로써,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삶을 빚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또한 삶이 어려울 때마다 뜻도 모를 음악,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게 되어버린 시절의 사람들로, 무수한 위로를 받으며 살아왔어요. 그렇기 때문에 말 한마디 따듯하게 건네는 힘과, 별거 아닌 것 같은 지나간 토닥거림이, 의지할 곳이 없는 한 사람에게는 실오라기만큼이라도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는 걸 느낍니다.
어쩌면 이 우연한 위로조차 느낄 수 없을 것만 같은 아픔이 다가올 때도 있겠죠. 저 또한 우아한 추모조차 사치로 느껴졌던 순간도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제가 만약 추모의 대상이라면, 혹시 이 글을 아주 아주 먼 훗날 나의 가까운 사람들이 보게 된다면, 늘 어렵고 부족했던 내 삶에 있어줘서 고마웠다고. 나는 땅에 묻히거나, 바다에 뿌려지거나, 흙 또는 먼지가 되고, 그걸 탄 바람이 되고 비가 되고 공기가 되어서, 모든 모습으로 당신의 곁에 남아있으니. 너무 오래 슬퍼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저 또한 그런 우아한 추모의 마음으로, 떠나간 누군가를 애도하며 살아갑니다. 그 누군가도 나의 마음과 같이 바라고 있겠거니, 하는 마음으로요. 나를 우아하게 추모하길 바라는 마음이, 누군가를 우아하게 추모하기 위한 마음으로 향하고, 누군가를 위한 마음이, 나를 향한 마음으로 대치되는 순간입니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누군가를 생각할 때면, 그 사람을 위해 썼던 내 마음, 그 사람과 함께 했던 그 귀한 시간, 그 사람을 향한 기도들이, 결국 나의 선택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떠올려요. 내가 그 사람이랑 함께하는 시간을 낸 것, 내가 그 사람을 위해 자유의지로 기도했다는 것. 그 모든 게 나의 선택으로 왔다는, 그 사실이 도리어 내 존재를 더욱더 귀히 여기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살면서 인간은 무수히 많은 상실을 겪게 됩니다. 나의 것이 었던 것부터 시작해서, 사랑했던 애인, 가장 친밀했던 가족까지.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추모로, 어떤 마음을 보냈거나 보내고 계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그 마음이 너무 오래 힘들지는 않기를.
아파봤던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도 조금이나마 잘 알 수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그래서 더욱더 타인의 아픔에 관해 쉽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윌리엄 볼컴의 우아한 망령을 여러분들께 보내며, 무지하지만 따듯하고픈 위로를 동봉합니다.
☁️ 삶울림 lifecho____
삶 : 추모 = 음악 : 래그타임, 레퀴엠...
ㅣ삶은 누군가를 추모하는 방식이 된다. 때로는 들썩이는 래그타임의 춤곡으로, 엄숙한 종교적 추모인 레퀴엠으로. 그 순간만큼은 추모가 세상에서 가장 크고 높은 아픔이 되기도 하지만, 음악이 흐르고 공간에 울림을 보내듯, 삶에 찾아오는 감정도 흐르는 대로, 때로는 래그타임의 우아함으로, 레퀴엠의 비통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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