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유진 EUGENIA Oct 12. 2024

자유롭게, 그러나, 고ㄷ..기쁘게

클래식 음악으로 자유 읽기, 브람스: 교향곡 3번 1악장

브람스: 교향곡 3번 1악장


40초 즈음부터 연주가 시작됩니다. 감상하세요:)

                                                

                                  


자유와 고독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브람스가 또 찾아왔습니다. 지난 시간에 F-A-E에서 Aber를 통한 자유와 고독의 양가감정이 그의 음악 속에 공존한다는 것을 이야기했는데요.


이번 곡에는 자유롭게 Frei 그러나 Aber 기쁘게 Froh 가 아주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F-A-E Sonata에서 자유와 고독에 대해서 그렸던 브람스는 이제 기쁨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나 봐요. 역시 자유와 기쁨의 앞글자를 따 음이름으로 쓰는 소제토 카바토 기법을 또 다시 사용합니다. 자유롭게 그러나 기쁘게 Frei Aber Froh 이니, F-A-F겠지요?


그런데, 곡의 도입에 등장하는 F-A-F는 사뭇 다릅니다. 바로 F-Ab-F(파-라 b-파)로 나타나기 때문인데요.


물론 소제토 카바토 기법에서는 자음뿐만 아니라 모음도 따오기도 하고, 작곡가의 자의대로 음운을 따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Aber 중 Ab를 가져오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F-Ab-F가 자아내는 사운드가 아주 특별한데요. 단조의 화음을 차용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본 곡인 교향곡 3번 1악장은 F장조의 조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 처음 도입의 3음인 F-A-F(F-Ab-F) 선율은 f단조라고 하는 상반된 사운드의 화음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남의 집 물건을 빌려온 것이죠.


흔히 음악 시간에 장조는 밝은 것, 단조는 어두운 것이라고들 하는데요. 장조와 단조가 자아내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는데, 차용화음이란 장조에서는 단조의 화음을, 단조에서는 장조의 화음을 빌려오는 걸 의미합니다. 마치 다른 집 물건을 빌려와 새로운 가구 배치를 만드는 것과 같죠. 그러면, 기존의 인테리어 콘셉트와 도드라지는 가구 하나가 눈에 띄겠죠? 그럼 그 도드라지는 가구가 주는 분위기 달라지겠죠.


음악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특히 이 곡처럼 냅다 시작부터 차용화음을 쓰면서 장단조를 혼용하는 일은 아주 엄격한 클래식 음악에서는 전통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걸 알아두시면, 나름의 감상의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처음에 살짝 어두운 듯싶다가 다시 밝게 돌아오는 모습이, 가장 서두에 고독하게 단조로 표현된 선율을 기쁜 장조로 다시 돌려놓는 듯한 느낌을 줘요.


여기서 자유, 고독, 기쁨의 관계를 살펴볼까요. 오늘의 곡인 교향곡 3번 1악장은, 자유롭게 Frei 그러나 Aber 기쁘게 Froh의 서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쁜 Froh 장조가 아니고 Einsam 고독하고 어두운 단조를 가져왔네요. 이러한 점에서 기쁨 Froh를 고독 Einsam으로 치환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결국 본래 곡의 모토인 F-A-F 자유롭게 그러나 기쁘게에서, 서두의 차용화음을 통한 F-A-E,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의 모토가 숨겨져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괜히 고독하게를 기쁘게로 바꾼 건 아니고요, 본 음악에 쓰이는 차용화음이라는 기법에 대입해 보면, 기쁘게 Froh를 고독하게 Einsam로 대치하는 게 더 들어맞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러나 Aber가 주는 의미 심장함도 기쁘게 Froh를 고독하게 Einsam으로 대치하게 하는 요인입니다.


그래서 본 글의 제목을, "고독하게"와 "기쁘게"를 합한, "고ㄷ.. 기쁘게"로 추려봤어요. 자유롭게 그러나, 이후 고독의 단조를 슬쩍 내밀었다가, 기쁨의 장조로 대치되는 곡의 서두를 표현 해주기에 적절한가요? 고독하다가도 고ㄷ기뻐질 상황을 인내하며 기다리는 삶을 그린 것만 같네요.


브람스는 자신의 음악을 통해 자유, 고독, 기쁨의 감정을 표현하고, 그러나 Aber라는 재밌는 단어를 통해 상반된 감정의 역설이 공존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브람스는 “자유는 고독하지. 하지만 너무 고독해하지 마, 고독하다는 건 또 기쁨을 느끼게 하기도 하니까.”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그가 내민 자유, 고독, 기쁨의 일련을 듣다 보면, 자유, 고독, 기쁨의 굴레로 점철되었던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어요. 이 세 감정의 파도 속에서 삶은 길을 잃고 모호해지기 십상이지만, 삶 속 역설적인 감정의 공존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브람스의 음악을 통해 위로받습니다. 음악이 단조에서 장조로 넘어가고, 또 다른 조성으로 변화하듯, 감정의 상태는 정해지지 않았고 영원하지도 않다고, 지금의 삶이 모호하고 길을 잃은 것 같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가 없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브람스가 건네는 삶울림 속 자유, 고독, 기쁨의 영원한 굴레에서, 한껏 뒹굴며 살아지고 마음껏 자유롭고 아주 고독하고 또 아주 기쁜 길로 무한히 돌아오는 일련을 상상합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나날이 피고 지기에, 영원한 절망에 아주 좌절하지도 말고, 영원한 희망에 쉽게 들뜨지도 않기를 바라며.


☁️ 삶울림 lifecho____

자유 : 양가감정 = 음악 :  차용화

ㅣ음악에서 장조에서 단조를 혼용하고, 단조에서 장조를 혼용하듯, 삶 또한 기쁨 안에서 슬픔을, 슬픔 속에서도 기쁨을 찾을 수 있다. 그러니 환희 속에서는 겸허를, 절망 속에서는 희망을 놓지 말기.



- 추천 연주 정보

https://www.youtube.com/watch?v=amDySgJm2ss


* Frei Aber Froh 에 관련된 일화는 많은 썰들 --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와 함께 공유했던 삶의 모토Frei Aber Einsam 에 대한 반박이다, 그가 독신으로 지내는 이유에 대한 대답으로 자주 했던 말이다, 그의 친구들에게만 알려준 음악적 비밀이었다 등 -- 이 항간에 떠돌고 있습니다만, 어쨌거나 그가 F-A-F를 차용한 건 공식적으로 밝혀진 사실입니다. 세계적 권위를 가진 옥스퍼드 음악 사전The Concise Oxford Dictionary of Music에 따르면, "브람스의 개인 모토로, 이 모토의 첫 글자를 그의 3번째 교향곡의 기본 주제 구조로 사용했다(1883)" 고 기술하고 있네요. 

이전 05화 감정의 역설: 자유롭기도, 고독하기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