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유진 EUGENIA Oct 12. 2024

감정의 역설: 자유롭기도, 고독하기도

클래식 음악으로 자유 읽기, 브람스: F-A-E Sonata

브람스: F-A-E Sonata



여러분도 인생의 모토, 좌우명 같은 것이 있으신가요? 오늘 소개할 브람스의 친구, 요아힘에게는 있었습니다. 바로 국내 서적 중 브람스의 전기 제목으로도 유명한 Frei Aber Einsam (독일어-한국어: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 인데요. 첫 철자를 줄여서 F-A-E라고들 부릅니다.


왠 갑자기 브람스 음악에 요아힘 이야기냐고요? 왜냐면 요아힘의 모토로, 그의 친구인 브람스와 슈만이 함께 음악을 만들었거든요. 바이올리니스트로 유명한 요아힘과 그의 친구인 작곡가 슈만, 브람스는 아주 절친한 그룹이었는데요. 이들은 요아힘의 모토인 Frei Aber Einsam이라는 주제에 영감을 얻어 협업합니다. 이 주제에 입각하여 각 악장을 작곡하기로 한 것이죠.


그들은 실제 Frei Aber Einsam, F-A-E의 이니셜이 파, 라, 미의 영어 음이름 C 도 -D 레 - E 미 - F 파 - G 솔 - A 라 - B 시 -C 도 과 동일함을 활용하여 세 음을 토대로 음악을 작곡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처럼 음악의 기본 재료가 되는 음들을, 자음이나 모음 철자에서 따오는 방법을 소제토 카바토 기법이라고 합니다.


오늘 소개할 음악은 그중에서도 브람스가 작곡한 악장입니다. 그러나 요아힘, 슈만과는 달리 브람스는 이 곡에서 소제토 카바토를 고집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래서 더 흥미롭습니다. 혹시 음악적 퀴즈를 숨겨놓은 것이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다른 친구들과 달리 소제토 카바토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죠. 그러한 궁금증 때문에 그들이 느꼈을 자유와 고독에 대해 더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브람스의 음악과 여타 다른 작곡가들의 F-A-E 악장을 듣다 보면, 슈만의 아내를 짝사랑하며 평생을 혼자 산 브람스도, 자신의 제자와 결혼하여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던 슈만도, 아내와 잘 살다가 그녀의 불륜을 의심하여 파혼에 이르게 된 요아힘도, 모두 각자의 이유로 자유와 고독에 대하여 공감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곤 해요.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유와 고독의 불가분은 개인의 특정 상황에 국한된 것이 아닌, 인간의 아주 보편적이고 내밀한 공존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어요.


자유롭게 Frei, 그러나 Aber , 고독하게 Einsam와 같이, 인생을 살다 보면 자유와 고독처럼 모순된 감정이 공존하게 되는 때가 많습니다. 이처럼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일어나는 감정적 반응과 상태를 양가감정이라고 합니다. 의학계나 심리학계 등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용어인데요. 상반되어 보이는 감정이 분명하게 공존할 수 있음을 사회과학적으로 설명해 주는 용어이기도 하죠.


인간이 느끼는 고독과 자유의 양가감정은, 철학가들 또한 관심 있게 다루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니체는 책 「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 에서 혼자됨의 고독을 견뎌야 나아가는 자유의 삶을 맞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니까요.


이 곡에서도 자유 Frei라는 말에 그러나 Aber를 붙인 이유도 그런 것일 겁니다. 자유롭지만 Frei , "그러나 Aber" 고독하게 Einsam라는 표현을 통하여, 고독이 자유와 상반되는 감정임을 보여주지요. 니체가 그러했던 것처럼, F-A-E의 모토를 음악적으로 활용한 그들 역시 혼자 있을 수 있는 자유가, 처절한 고독이 상반되어 어울리지 않더라도, 분명하게 공존한다는 걸 이해했기 때문일 겁니다.


어쩌면 브람스가 곡의 초반에 E(Einsam, 고독)와 F(Frei, 자유)의 간격에 해당하는 상행하는 2도 음정을 배치한 것도, 자유를 자각할 틈도 없이 느꼈던 강렬한 고독을 가장 먼저 표현하고 싶어서 아닐지 상상하게 되어요. 반복되는 고독을 반복하고 나서야, 처절한 고독 뒤에 자유가 있다는 방증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듯한 착각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또 다른 가능성으로, 이 곡에 소제토카바토가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고독하게 그러나 자유롭게는 개인의 모토로 특정되는 것이 아닌, 모두의 삶의 도처에 깔려 있다는 걸 암시하지는 않았을지.


독자분들은 이 음악을 들으며 어떤 고독과 자유를, 어떤 양가감정을 떠올렸나요?____



누구나 살면서 한번 즈음은 철저히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기분으로, 고독에 몸부림치는 순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지독한 고독은 아주 얽매이지 않을 자유 속에서 피어납니다. 즉 진정한 자유는 혼자 있는 처절한 고독을 즐길 수 있게 될 때 오지요.


저 또한 이 음악을 알고 나서부터는 기꺼이 혼자되어 괴롭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듯합니다. 여러분도 이 음악을 통하여 삶 속 자유에서 느끼는 고독에 너무 오래 괴로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 삶울림 lifecho____
 
삶: 자유, 고독의 양가감정 = 음악 : 소제토 카바


l 자유, 고독. 관련 없는 단어의 나열인 것만 같다. 하지만 무의미해 보이는 철자만으로도 분명한 울림을 만들어내는 소제토 카바토와 F-A-E 소나타처럼, 고독과 자유의 상반관계는 마냥 무의미하지 않다.
 자유가 있기에 고독하고, 고독하기에 자유롭다.



- 추천 연주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nhR36uGx4Xk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