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어느 전당포의 조건은 이상했다.
어느 한 사내가 있었다. 그 사내는 오늘도 휴대전화에 떠있는 문자메세지를 보며 덜덜 떨고 있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달 귀하의 휴대전화 요금은 38,000원이며, 미납시 미납연체료가 가산됩니다.’
그랬다. 그는 몇년 전 즈음, 청운의 꿈 하나를 품고 서울로 올라왔었다. 그러나 이놈의 서울은 그에게 “자비 따위는” 없었던 것이 틀림없다.
(이 이야기를 적고 있는) 나같이 서울에서 토박이로 산 사람이라면, 대충 서울이란 동네가 “약간의 약은 머리가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동네라는것을 몸으로 충분히 익히고도 남았겠지만, 저 먼 시골동네에서 올라온 사내에게는 그런 생각보다는 “그냥 서울이란 동네가 모든 것이 다 신기한 것” 이라는 생각이 그 모든 것을 압도한 것은 사실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에게는 지금 당장의 생활비가 참 궁했다. 하지만 이놈의 생활비라는 것은 그렇다고 “대출”을 이용하기에는 참 애매한 액수였던 것이다. 병원비나 교통사고 처리비 같은 거금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장의 교통비나 하루 두끼 언저리의 식비에 비하면 많은 대충 그 애매한 액수가 언제나 사람을 피말리게 하지 않은가.
그러던 그 사내는 오늘도 어찌할 줄 몰라 초조하게 집에 가던 중에 전단지 하나를 보았다.
“전당포, 하루만 거래해도 급전 지급”
전당포. 그랬다. 자신의 그 무언가를 맡기면 그것을 댓가로 급전을 준다는 곳. 그러나 정작 사내는 의아해했다. 전당포라는 곳이 이제는 거의 반쯤 “추억의 흔적 비슷한” 그 무언가일텐데, 그런 전당포가 서울에 남아있다니, 그리고 자기가 알고 있는 전당포는…. 대충 가지고 오는 물건의 “가치”에 대한 지급조건이 따로 있었는데, 정작 이 전당포는 주소와 전화번호, 그리고 딱 이 문장만이 다이다보니… 사내는 의심의 눈초리를 버릴 수 없었다. 이게 대충 사이비종교 홍보 전단을 가장한 걸까, 전당포를 가장한 다단계인걸까. 그러나, 사내에겐 그런거를 생각하기엔 당장의 통신비와 전기료, 수도료는 감당할 수 없는 무언가였기에… 전화기를 들고,
전단지 속의 번호를 눌렀다.
전화 속에 흘러나오던 중년의 목소리는… 뭔가 차분하면서도 굉장히 공포스러운 무언가가 있었다. 사내는 그저 “서울시 성북구 삼선동” 과 낙산 아래에 있는 으슥한 곳에 있는 전당포 간판을 보고 뭔가를 멍하게 보고 있었다. 굉장히 오래되고 허름한 중층의 건물.
“그리고 저기를 올라가면… 그래, 지금 내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것… 이것을 팔고 급전을 해결하는 거야“
사내는 건물을 올라 전당포의 문을 열었다.
전당포의 문을 열었을 때, 차분하면서도 공포스러운 느낌의 중년… 아니면 노년에 가까운 신사가 나를 보며 인사를 건넸다.
“아…. 당신이, 몇일 전에 가지고 있던 반지 맡기겠다 한 청년이요?”
“네. 맞습니다.”
반지. 정작 서울에 올라와서 처음 만났던 “사랑하는 사람” 이었고, 그 사람과 맞췄던 그래도 나름 백화점에서 거금을 깨어 산 커플링. 그러나 정작 그녀는 미래와 비전도 보이지 않는다며, 나에게 이 커플링을 빼어, 이별을 고했고, 이윽고 몇년이 안되어, 결혼을 한다는 소식 하나만을 SNS에 남기고 말았던, 쓰라린 기억만 남아, 버리는게 나을것만 같았던 커플링을 자취방 서랍에서 찾아낸 것은 행운일까, 아니면 배드엔딩의 복선일까.
사내는 반지를 내어 놓으며 말했다. “저… 선생님. 솔직히 이 반지를 그냥 매입하셔도 됩니다. 저에게는 쓰디쓴 기억만 남아있는 거니까요.”
그때, 중년의 신사는 갑자기 반지를 훑어보더니, 그것을 다시 나에게 돌려주었다.
“흠… 반지를 받을 필요는 없을 거 같소이다…” “네? 아니 여기 안에 감정서까지 있는데, 가짜란 겁니까?”
“핫, 하하하하! 그런 의미가 아니요. 이 전당포에서 당신에게 급전을 받는 조건은 그게 아니요.”
“아, ‘조건’ 이 달랐다고요?“ 사내가 그 말을 끝마치기도 무섭게, 중년의 신사는 뭔 종이를 꺼냈다.
“그저 나에게 이 종이에 싸인을 하시면 되오. 어쩌면 당신의 ‘모든 것’ 일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아닌 것’일 수도 있지요“
사내는… 이 ‘조건’이 적힌 종이를 읽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 종이에 싸인을 하면 당장의 곤궁함을 해결할 수 있다 하니…
그렇다. 그는 싸인을 하고 지장까지 찍었다.
“이… 이러면 된건가요 선생님?”
그랬더니 중년의 사내는 수표 한장과, 쪽지 한장을 건넸다.
“그래요. 된거요. 축하하오. 이 수표는 이미 배서 처리 된 거니 근처 은행에서 현금으로 바꿔가시고, 이 쪽지에 적힌 주소에 내 이름 대시고, 이후에 쭉 그대로 살고 계시오.”
청년은… 떨린 발음으로 “감…감사합니다…” 라는 말만을 하고는, 문을 후다닥 나갔다.
사내는 눈을 떴다. 분명 그의 마지막 기억은 대충 은행에 들러서 수표를 현금으로 바꿨을 때 아주 큰 거금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가 그 달의 생활비를 치르고 나서 후에 같이 있던 쪽지를 들고 찾아간 곳이 어떠한 정당의 “서울시당” 사무실이었다는 것이고,
‘그냥 나는 이제 거기서 취업을 해서 이 거금을 그냥 갚는 것인가?’ 하고 뭔가 그쪽 사람들이 쓰라는 서류를 와장창 쓰고는 자취방에 들어와서 잠이 들었다는 사실이었다.
“어… 아니 내가 몇시간을 잔걸까… 음, 아니 몇일 잤나? 꿈이었을까? 아니야. 그러기엔 지금 휴대폰에 공과금과 방세, 기타 다른게 다 처리되었다고 알림이 와 있는 걸”
그러고 갑자기 걸려오는 전화. 그렇다. 그 중년의 신사가 알려준 곳, 일터가 맞나? 아무튼 정당에서 걸려온 전화다.
“어.. ㅇㅇㅇ씨 맞으시죠?” 맞다고 했다.
“아, 당신은 저희 당의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군에 선정되셨어요” 네?!!
그랬다. 그 서류는 일단 입당서류 였던 거 같고, 자잘하게 찍은 도장은 선거 출마 자료 였던 거 같으며, 이미 선거 출마 비용은 그 거금에서 빠져 나갔다는 것이다.
….뭔가 양심을 판 기분이었다.
“ㅇㅇㅇ씨, 뭐 기타 자잘한 경력같은 것은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당 선거전략본부에서 적어주신 서류를 바탕으로 ’그럴싸한‘ 이력을 넣었으니까요. 다른 사람들 대비 뭐 기행을 벌이거나, 범죄를 저지르신 거도 없으니, 크게 문제 없을 거에요. 저희는 대한민국의 교섭단체 이상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고 당신은 무조건 비례 1번으로 넣어서 일정량의 득표만 얻어도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실 수 있을거에요“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할말을 잃었다. 그리고 떠 올렸다. 그 전당포에서 준 종이 속의 “조건”을.
“….의원님?”
미모의 비서는, 나에게 잠을 깨라는 듯, 여의도 국회의사당 근처 카페에서 시킨 아메리카노 한잔을 건넸다.
“아, 그래. 내가 몇시간을 잔거지?”
그랬다. 갑자기 몇년 전 생각들과, 최근에 여당에서 낸 굉장히 “엉터리 스러운” 법안을 검토한다고 밤을 좀 새서 그렇게 된 거 같았다. 아니… 솔직히 굉장히 이상한 과정으로… 아니 정확하게는 뭔가 “양심을 팔아서” 국회의원이 된 기분을 느끼고 있기에, 법안을 읽어봐도 뭐가 뭔지 모를 이 글자 투성이들 속에서… 대안은 보이지 않은 채, 어느새 나의 집은 자취방에서 서울숲 가까이에 있는 높은 아파트로 바뀌어 있었고, 그 반지는 무사히 남아서 다른 사람의 손에 끼워져 있다.
“그나저나, ㅁㅁ씨, 오늘 여의도 호텔에서 파티 있는데, 같이 갈래?”
“아… 그… 사모님이 알면 어떻게 하라는 거에요?“
“아, 이미 아내에게는 대충 ‘업무 일정’ 으로 퉁쳤어. 정치인이 뭐 사람 만나는 게 일이지, 다른게 일이냐?“
그랬다. 이 위험한 관계는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내는 참 “순진했다” 고 해야 정확할 정도로 그냥 이런 관계를 모른 채 “아, 우리 남편이 그냥 일로 바쁘구나” 라 생각하고 있다. 한편으론 다행이었다. 그렇다. 내 지갑에 아직 콘돔을 살 돈은 많고, 피임약을 살 돈도 많다. 마치, “전가의 보도” 같은 무언가였다.
오늘 밤도 똑같았다. 여의도의 호텔 스위트룸. 이 고층의 빌딩 위의 창문을 그냥 보고 있노라면, 도데체 나는 왜 그 시골에서 구질구질하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했을까, 참 멍청하기도 하지. 그리고 잔 안의 발렌타인 30년, 그래, 오래전 노태우 대통령이 즐겨 마셨다는 위스키 아닌가, 이걸 그냥 나도 잔에 담아 마시고 있고, 비서는 샤워 중이고, 나는이미 샤워를 했고.
“의…의원님, 좋은 밤 되세요”
“어.. 그래.. 좋은 밤 되자고.”
….그래, 참 좋은 시간이었지.
내 안에서는 뭔가 진액을 다 뿜어낸 느낌이고, 술기운은… 세지고… 긴 잠이 찾아왔다.
….긴 환상이었다. 잠에서 깼을 때는 구치소의 안이었다.
“수인번호 954! 면회자 있습니다.”
그랬다. 아주 긴 잠이었다. 그러나 그 환상과 꿈속의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었다. 이 위험한 외줄타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 밤의 호텔들 속에서 만났던 누군가가 나에 대해 검찰에 고발인지 자백인지 모를 무언가를 이야기했고, 비서라는 년은 갑자기 기자회견을 열어서 “그 의원이 나를 임신시키고 낙태를 시켰다” 고 하질 않나.
뭐 어쨌든, 그 몇년은 정신이 없었다. 이미 국내 로펌에다가 돈을 쓴다고 아주 돈을 펑펑 부어 쓰다보니… 그랬다. 그 전당포 신사 영감탱이가 준 거금은… 정말 다 떨어지고 없어진 마당이었다. 암튼, 면회 시간… 아내였다.
“…꼴에 그 가락지는 폼으로 끼고 있냐.”
그러고 나서는 나에게 종이를 보여줬다. “이혼서류야”
그랬다. 어쩌면 이혼서류를 안낸 것이 용한 거겠지. 몰락한 정치인은 그 뒤끝은 아무것도 아니란 것이 체감이 되는 구만… 이라는 느낌이 강했고,
나는 그저 말없이 반지를 빼어 교도관에게 전해주었다.
그랬다. 이게 나와 그녀의 마지막 장면일 것이다.
“그래. 폼이야. 폼이라고. 그래…. 이제 가. 나같이 양심 다 판듯 개폼만 잡은 사람에 기대지 말고.”
면회가 끝나고, 뭔가 구치소 밖의 창을 봤다. 음… 도데체 나에게 그 몇년은 무엇이었을까. 그랬다. 이 감옥에서 나가면, 그 영감탱이에게 묻고 싶었다.
도데체, 그 종이의 의미가 무엇이었냐고.
“수인번호 954! 보석처리 석방!”
그나마 그 사내는 그나마 남은 돈으로 보석금은 낼 수 있었다. 물론… 경제범에 정치범이 전과를 진 마당에 무엇을 할 수 있겠냐만, 그나마 찾아갈 수 있는 곳이 딱 하나였다.
서울시 성북구 삼선동, 낙산 밑의 어느 전당포.
그 전당포는 그대로 있었다. 문은 열 수 있었던 거 같고. 그 사내는 문을 열었다.
“아…. 당신이 올줄 알고 있었소. ‘조건’에 맞춰서, 갚을 치르러 온게 맞겠지요?”
이게 누굴 약올리나 싶은 말투로 중년의 신사는 노년의 신사가 되어있었지만, 옷과 그 표정은 똑같았다.
“그래요. 이제야 궁금합니다 선생! 그 조건이… 뭐였는지 이제야 알거는 같지만, 당신의 그 뻔뻔한 입으로 좀 들어야겠어!”
노년의 신사는 갑자기 미친듯이 웃더니… 갑자기 TV를 틀다가, 뭔가를 그 사내에게 보여주다가 끈 후 그 사내를 똑바로 쳐다본채 말을 이어갔다.
“아, 그래요… 맞아요. 당신이 돈을 받은 조건은 ”양심“이 맞았소. 그런데 참 놀랍더군. 보통의 사람들은… [양심을 팔고 모든 것을 가지시오] 란 문구에 오히려 마음이 동요하여, 아니라고, 그냥 나는 양심만은 못팔겠으니 그냥 내가 가진 거만 내놓을게요! 라고 했는데, 당신은 특이했지. 그래. 그게 마음에 들었소.“
그랬다. 함정이었다. 하지만 이 함정에 사내는 어떠한 항변도 할 수 없었다. 양심을 판 것은 본인이었기에.
“뉴스입니다. ㅇㅇ당 전 국회의원 ㅇㅇㅇ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나는 내 친구와 그저 식당에 앉은 채… TV속의 이 뉴스를 멍하게 보고 있다. 나는 그저 성북구의 다른 어떤 분에게 저 의원에 대한 내막과 이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들은 입장에서, 뭔가 어떠한 말도 더 할 수는 없었다.
“아이고.. 그런데 저 양반은 참 허언증이 심하지. 아니 왜 ”양심을 팔아서 내가 왜 이모양이 된걸까?“ 라고 남기는 거야? 하긴… 정치할 때 겉만 번드르르 해서 이상하긴 했어.. 아유”
“하긴, 우리는 양심 팔아서 쓰레기는 되지 말자 승조야.”
“야, 송의현, 너 그런데 저번에 밥값 더치 제대로 안했냐. 양심을 아주 팔았어 아주그냥…”
“…젠장, 알았다. 밥값은 내가 오늘 낼게.”
양심의 댓가는 의외로 혹독하다. 내가 승조에게 오늘 밥값 38000원을 모조리 뜯긴거와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된 저 양반의 모든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