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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HSonG Jun 09. 2023

3분간의 복마전

버스 정류장으로부터 집까지는, 몇분이던가.

"하... 오늘도 잘 놀고, 잘 먹었다."


나의 하루는 늘 이런 식이었다. 자잘한 소일거리나 기타 여러 일을 하여 돈을 벌면, 일 없는 날 하루를 골라서 나의 식도락을 채우고 하는 못된 버릇이 있고는 했다. 문제는, 나의 직업은 프리랜서고, 그러다보니 벌이는 시원치 않은데, 식도락의 욕구만 그득하여, 결국 몇일 동안 개고생해서 벌은 돈을, 단 하루에, 식도락 한번으로 날려먹고 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면 어쩌하랴, 인생은 단 한번 뿐. 한번 살다 곱게 "뒈져버리는" 그런 인생 앞에서는, 그래도 제일 맛있는 것은 먹고 죽어야 하는 일종의 "신념 같은" 무언가가 있었다.


그 날도 그랬다. 도데체 SNS의 세상 속에는 얼마나 맛난 것들을 홍보하는 내용들이 많이도 퍼지던지, 오늘도 121번 버스를 타고 서울숲으로 내려 성수동을 길게 걷다가, 성수동의 어느 맛집에 들러, 조금은 늦은 점심을 마치고, 다시 서울숲 정류장으로 돌아오니,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는, 저녁 6시의 언저리의 가을날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그렇다. 가족들에게 "아이고, 너는 또 그런데 돈을 낭비하고 오냐!" 라는 핀잔 내지는 지인들에게 "야! 그거보다 더 맛있는 데가 있는데 왜 거길 갔냐?" 라는 하마평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체질적으로 "과민성 장 증후군" 이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 날이었던 것이다. 그 날이라고 하니 오해하지 말지어다. 이 이야기를 풀어헤치는 나는 군대도 다 마치고 예비군도 끝나가는데, 벌이는 애매한 프리랜서 인생이라 반쯤 "잉여 인간" 소리를 듣는 남정네인지라. 하필이면 이 과민성 장 증후군은 나의 군생활과 대학생활을 너무나도 짖궃게 괴롭혀 온 것이었다.


그렇다. 121 버스가 집으로 향하기, 딱 6정류장 전이었다. (나의 집은 종암동 즈음에 있었지.) 6정류장 전이니 딱, 청량리 즈음이었을 것이다. 


"꾸루루루룩."


그렇다. 다시, 나의 대장은 눈치 없이 나에게 신호를 보내오던 것이었다.


그랬다. 화근은, 요즘, 너무나 많은 업무 요청으로 인해 가족들이 꾸준히 먹으라던 "유산균제" 라던가 "영양제" 등을 제대로 먹지 못한 탓이었다. 그렇다. 프리랜서의 삶은 직장인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그러나 뭔가 매일이 "생존"을 요구받는 듯한 기분을 주는 날이, 너무나 많았던 것이 탈이라면 탈이었던 것이러라.



"꾸루루루루룩"


그렇다. 나의 장은 그 와중에도 눈치 없이 계속 나에게 신호를 보내오고, 

이윽고 경동시장에 이르러, 배마저 조금씩 아파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안돼! 아직 집까지는 무려 4정거장이 남았고, 종암동 안에서만 숭례초등학교와 종암동 주민센터와 성북소방서 정류장까지 무려 3정거장인데, 아뿔싸, 나의 집은 만날 "종암동의 남자" 송의현씨가 툭하면 방송 등에서 언급하던 "하하! 저의 집은 성북소방서 정류장 근처에 있지요!" 라 말하는 그 근처 였던 것이었다!


식은 땀이 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게 얼마나 심했는지,

"저... 총각, 몸은 괜찮아요? 혹시 독감이라던가... 코...코... 뭐냐.. 코로나는 아니지요?"

라며 어느 할머니가 나에게 걱정어린 눈빛을 보내셨다.


"아니요! 괘...괜찮습니다. 그저 속이 안좋은 것 뿐이에요... 감사합니다..."


그 사이에 121번 버스는, 숭례초등학교를 지나고 있던 것이었다.



121번 버스가 도데체 어디 즈음인지도 정신을 못차려갈 무렵 버스 안내방송이 나왔다.


'이번 정류장은 성북소방서, 성북소방서 입니다.'


그렇다. 이제 내려야 할 때다 그러나 벨을 누르려는 찰나

"꾸루루루루루르으으루...."


그렇다. 이젠 정말 뱃속에서 뭔가 액체인지, 점액질인지 모를 그 무언가가가 요동 치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젠 필사적으로 팔을 뻗어 벨을 눌렀다. 

"삐-"


하지만 그 순간 긴장이 풀어진 것일까, 뭔가 움찔 하는 듯이 몸이 반응했다. 안돼! 나는 이대로 전 국민의 망신살이 될 수는 없어!!! 이대로면 나의 29년의 삶이... 모두 부정 당하는 것만 같잖아!!!


나는 겨우 겨우 폭주하는 직장을 어떻게든 TV속에 나온 "케겔 운동" 으로 틀어 막아가며, 정류장에 내렸다.


"헉.... 헉... 도데체 집까지는 몇분이지...."


그래... 저기 한 코너를 돌면, 아파트가 나오고, 그 아파트에 집이 있지. 


달린다.


도데체 몇분이 흘를지는 모르지만, 대충 어림 잡으면 "3분 정도" 그러니까. 3분 안에, 나는 대자연과의 사투를 벌여야 했던 것이다.


뛴다. 또 뛰어본다. 그러나 갑자기 웬 차가 온다. 그래 교통사고로 갑자기 웬 판타지 세계로 넘어가버린다던가 그러지는 않고 웬 "교통사고를 당한 것도 모자라 대변까지 지린 20대 후반의 남성" 이란 이름으로 뉴스에 나와버리고 싶진 않다! 


잠시 멈춰 본다. 그러나 이미 배와 다리 전체에 오는 고통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럴 때 오래 전 인터넷 글에서 나온 "과민성 장 증후군 환자들이 쓰면 좋은 마인드 컨트롤 방법"을 되뇌어 본다.

"착하지 장아... 화장실은 저 멀리 제주도에 있어. 여기는 무인도고... 화장실은 제주도까지 뗏목을 타야, 갈 수 있어..."


그 말을 몇번을 되뇌였던가. 아마도 동네 사람들이 이런 나를 본다면 완전히 "청년 실업 700만 시대에 취업난의 고뇌를 못이기고 완전히 미쳐서" 헛소리를 하는 사람으로 보겠지. 하지만 그러기엔 지금 나는 배가 무지 아픈 사람이란 말이다.


그 생각을 하니 몸은 이미 아파트 입구 계단을 넘어 도어락 앞에 섰다.


앗, 젠장.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까먹었다. 안돼!!! 생각을 해내야 한다. 

하지만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대로는 완전히 주저 앉아서 인생 최악의 장면을 찍게 될 것이야....


하지만 더 생각은 나지 않고 모든 것이 끝났다 생각한 순간.... 


오래 전, 소위 "썸을 탔던" 그녀와의 시간들이 생각났다.




"야, 이 피규어들 뭐야... 너 오타쿠냐?"


그랬다. 그녀는 이상하리만큼, 나의 집을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였냐면, 내가 사는 아파트의 도어락 비밀번호까지 다 외울 정도였고, 그녀는 그 번호 앞에서 나를 아주 놀릴 정도였다.


"0765? 야... 너랑 상관이 없는 번호잖아? 니 폰 번호 이거 아닌데? 뭐 사연이 있냐?"

"어... 뭐 딱히, 니가 생각하는 의미 아니야..."

"765... 765... 765프로덕션... 야, 너... '아이돌마스터'라는 거 즐겨보는 거냐?!"

"아! ....너가 그걸 어떻게 알아!"



....고맙다. 생각났다.

빠르게 내 집 호수와 0765를 누른다.


삐리릭- 딸깍.

문이 열렸다.



이제 더이상 시간은 없었다. 이제 몇초가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더이상 배와 엉덩이에 힘이 풀리는 순간 나는 정말 완전히 끝나는 것이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내가 사는 16층 언저리에 있다. 여기는 지하 1층으로 되어 있고, 더 이상 이대로는 정말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


"제발, 제발!! 신이 있다면 제발 나를 살려주세요! 다시는 러브라이브 오타쿠들을 "럽폭도"라고 놀리지 않겠습니다 엉엉... 엉엉..."


띵. 동.


엘리베이터가 왔다.


부랴부랴 16층을 누르고,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그리고 16층, 문은 열리고


배배 꼬이는 몸을, 뒤틀리는 몸을 부여잡고 현관 도어락을 누른다.

그렇다. 다행히도 이것도 0765였다.


"삐리릭-"


문은 열리고, 바로 짐을 풀어 헤치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그랬다. 나의 화장실은, 제주도까진 모르겠고, 외딴 마음속의 섬 어딘가에 있었다.




.....해방이었다.


비록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더럽다" 라느니 "밥먹는 시간에는 절대로 들어선 안되는 이야기"라느니 매도를 하겠지만, 그걸 매도할 지언정 나의 이 3분 남짓한 "복마전" 을 무시할 수는 없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볼일을 다 본 후, 잠시 긴 여운이 찾아왔다. 도데체 그 3분간, 나는 도데체 왜 그 고통을 안으며 집으로 왔던가. 순간 긴 슬픔이 찾아와. 울음이 터져나왔다.


"사내 자슥이 왜 울고 있냐" 라고 누가 묻기에는.... 너무나도 긴 고통과, 외로움과, 그리움이 섞인 눈물이었다.



그랬다. 그녀와의 썸이 끝난 날, 그녀는 말했다.


"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하고 더 뭔가 발전하긴 어려울 거 같아. 너가 싫은건 아닌데... 그냥, 내가 너와 어울리는 사람은, 아닌 거 같아."


아마도 그녀는 나와 영원을 꿈꾸지는 않았던 거 같다. 하긴, 과민성 장 증후군이 있는 남자를 좋아 할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



마음은 슬퍼졌고, 몸에 힘이 빠졌다.


더 뭔가를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 나는,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다음날. 어김없이 업무 일정이 있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14층, 띵동. 문이 열리고 보이는 것은, 아 여기 이 아파트에 송의현씨의 작업실이 있었던가?


"아... 안녕하세요... 그 송의현씨 맞죠?"


"네.. 제가 송의현입니다. 안녕하세요- 너무 후줄근해서 이상한가요?"


"아, 아니에요! 팬입니다!! 이 아파트에서 살고 계신다니 놀랍네요"

"뭐... 저희 할머니네 꼽사리 낀 작업실이 있는 곳인데요 뭐."


그리고 나서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데, 갑자기 송의현씨는 안내리신다.


"아... 안내리시나요?"

"아, 먼저 가세요. 갑자기 속이 안좋아서요..."


갑자기 뭔가, 화장실이 급하신 거 같은 송의현씨의 표정을 뒤로 한채, 오늘의 하루를 시작하러 아파트 현관문을 나선다. 그래... 어제의 아픔과 3분의 복마전을 뒤로 한채 다시 맞는 세상이... 또 다른 의미의 "전장"이 아니겠는가. 


삶은 그런 것. 매일이 복마전의 현장 속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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