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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의선 Sep 24. 2022

템플릿 좀비

문서에 들어갈 내용보다 형식과 표준에 집착하는 사람을 미국에서는 '템플릿 좀비'라고 부른다고 한다.


템플릿 좀비는 문제의 원인과 내용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템플릿을 채우고 보고하는 데만 집중할 뿐이다. 완료율 100%, 그리고 모든 진척상황이 파란색 불을 보일 때 뿌듯해한다. 


"저희 보안 탐지 시스템에 검출된 파일에 보안조치가 되지 않은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내일까지 조치하지 않으시면 당신의 인사점수가 감점됩니다."

"저번 주에 조치를 다 했는데요? 저희는 매월 초에 점검과 조치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 시스템에는 조치를 했다는 데이터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조치를 해주세요."

"..."


하지만 문서에 없다고 해서 그 문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로는, 맥락을 무시한 채 형식만을 쫒다가는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템플릿 좀비의 진짜 문제는 본인뿐 아니라 같이 일하는 사람의 의욕마저 꺾어버린다는 데에 있다. 템플릿 좀비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팀이라면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관리조직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일단은 템플릿을 먼저 빠르게 채우고 싶은 유혹을 한 번쯤은 겪어봤을 것이다. 실제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해당 프로젝트의 맥락을 읽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템플릿을 채우라고 실무자들을 윽박지른다. 결국 일정은 준수하고 템플릿은 모두 채우게 되지만 문서상의 형식 조건만을 간신히 채운 저품질의 소프트웨어가 탄생한다.


이것이 본사와 현장 인력 간 갈등, 실행부서와 관리부서간 갈등이 생기는 이유다. 또 멀쩡한, 그리도 똑똑한 사람도 템플릿 좀비가 되는 주요 이유다.


프로젝트의 초점을 형식, 글꼴, 줄 간격, 번호 매기기에 맞출 때, 장기적이 안목보다는 단기 이슈에 집중할 때, 문제의 근본보다 겉모습에만 치중할 때마다 템플릿 좀비들이 비틀거리며 서서히 다가온다. 그리고 이는 조직의 경쟁력을 서서히 갉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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