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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 킴 Nov 23. 2019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이 된 J와 Y.

사람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나 보다.

"Tim 아저씨, 저 공무원 시험 결국 합격했어요.

하나는 지방공무원이고, 하나는 소방직 공무원이에요.

어떤 것을 선택할지 고민이에요"


2018년 가을이 접어들기 시작할 무렵인 9월,

갑작스레 카카오톡에 뜬 메시지였다.

그녀는 자랑을 하려는 게 아니고

기쁨을 진정 나와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난 벨기에에서 여지없이 10월에 있을

PTC 다자회의 준비를 위해 어젠다 세팅으로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소식을 보자마자 바로 하던 일을 멈추고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지하 1층에서 축하 전화를 했다. 진심으로 내게 뿌듯한 시간이었다.


 왜냐하면, 그녀 J는 나를 보고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하고, 2016년부터 노량진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녀 J와 처음 알게 된 건 2015년 9월이었다.


난 한국외대 국제관에서 야간 영어과정을

두 달 정도 듣게 되었다.

난 그 당시 영어 점수를 만들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던 시기였다.


첫 수업 날, 약 12명이 와서 자기소개를 하는데,

 직업과 연령대가 모두 다양했다.

공무원도 있고, 기업, 금융계도 있었으며,

외대 대학원생도 있었다. 각자 나름의 꿈이 있었고 열심이던 젊은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수업에서 최고령이었으며, 나의 영어명은 Tim이었다.



나는 은행을 다니다 퇴사하고 브라질 여행을 한 달간

갔다 막 돌아온 백수 Y와 특히 친하게 지냈다.

그는 20대 후반의 예의 바르고 개성 있는 친구였고

말이 잘 통했다.

난 당시 그와 13살 차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친하게 지낸다는 것이 신기했다. 

영어과정이 끝나갈 무렵 우리 12명은 모두 친해져 있었고, 특히 Y와 J는 그 후에도 가끔 만날만큼

서로 의지가 되는 친구가 되어갔다.

 당시 Y는 29살, J는 25살, 나는 42살이었다.



  Y가 고액 연봉을 받은 은행에서 퇴사한 이유는 나름 설득력이 있었으나, 백수로서 흔들리는 그의 꿈이 가끔 불안해 보일 때도 있었다.

 한번은 영어학원 강사가 되겠다며,

보습학원에 다니기도 했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그는 우리 가족이 벨기에로 떠나는 날,

인천 공항까지 나와서 배웅을 하고

진심 어린 엽서를 써서 선물을 줬던 감동 있는 친구였다.

 그는 나를 보내고 얼마 후 내게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다.


"팀 서기관님, 저 신용보증기금에 결국 취직했어요. 만족하며 잘 다니고 있어요."


난 기뻤고 한편 속으로 웃었다.


'짜식, 결국 금융권으로 돌아갔구먼.

안정적인 공공 금융기관으로....'


 벨기에에서 귀국한 올해 7월,

난 Y와 J를 서울역 근처 술집에서 재회했다.

둘 다 휠신 더 예뻐졌고 잘 생겨졌다.

우리는 서로 바라만 보고 있어도 계속 웃음이 났다.


 4년 전 각자 불투명했던 꿈을 향해 달리던 우리였는데.....

적어도 지금은 흔들리는 눈동자 없이

자기의 포지션에서 다른 지역에서

각자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올해가 가기 전에 그들과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연말 분위기가 나는 곳이든,

외대 앞이든 어디든 좋다.


그들과 함께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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