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회승 May 25. 2023

teach의 반의어는 learn이 아니다.

teach와 learn는 유의어이다.


오늘 아이와 함께 국회체험관을 다녀왔다. 앞으로 사회 시간에 배우게 될 어려운 국회에서 하는 일, 국회의 상정안건들은 어떻게 처리되고, 어떻게 토의를 하는지 직접 체험을 해주고 싶었고, 투표도 직접 참여해 볼 수 있으니 유익한 경험이라 생각했었다.     



국회의사당



국회본회의장을 그대로 옮긴 국회체험관에서 영상을 통해 상정안건을 발표하고 참여한 아이들로 하여금 국회의원이 돼 보게 하며 투표도 참여하는 것은 재밌어하는 듯 보였으나, 그 외, 국회의사당의 본회의장으로 자리를 옮겨 입법기관이 하는 일등 직원의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용어들이 섞인 설명을 듣는 아이들의 표정은 지루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외려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함께 간 딸아이보다 오늘도 더 내가 배운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렇다.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누군가를 가르친다기보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내가 배우고 깨닫는 경우가 더 많다.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내부모습



항상 가르친다기보다는 내가 공부한다는 겸허한 마음을 갖고 이 일을 하고 있지만, 내 딸아이에게는 나도 모르게 겸허한 자세를 벗어난 지나친 욕심을 부리게 되는 흔히 보게 되는 극성엄마로 돌아가게 된다.      

본디는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단긴 일이라지만, 오늘 딸아이는 친구와 국회체험관을 마치고 근처 한강에 가서 친구랑 한강라면 먹기, 친구와 자전거 타기가 가장 즐거웠던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그냥 흔한 초등학생일 뿐이다.        


그런데 나는 오늘도 아이에게 하나라도 더 일찍 알려줘야지 하는 조바심 어린 여느 엄마처럼 지하철이 한강대교를 건너기 시작하니 창밖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국회의사당을 보며 설명을 하려 들었다.      

“재희야! 저기 봐봐 뉴스에서 자주 보았던 국회의사당이야, 왜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내며 토의하는 곳 있지!”     

아이는 관심 없는 듯 무심한 얼굴로 그저 지나칠 뿐이다. 나는 속으로 ‘으이그!’하면서도 아이가 좀 더 내 말에 관심을 가지고 듣길 원했으며, 다른 아이들보다 좀 더 나아지길 여느 엄마들처럼 바랬다.      



한강 공원



그런데, 함께 한 딸아이의 친구 엄마는 딸아이의 친구에게 어제 어릴 적 들었던 국회의사당의 상징물인 원형돔의 재밌는 일화를 아이에게 얘기해 주었단다.      

“있잖아. 국회의사당 원형돔이 열리면서 로봇태권브이가 나오는다는 거 아니?”     

딸아이의 친구는 엄마 아빠의 얘기를 어이없다는 얼굴로 들었다고는 했지만, 딸아이 친구는 엄마 아빠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반대로 재밌게 들었으리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그리고 반문하게 됐다. 나는 왜 아이에게 늘 뭔가를 가르쳐야겠다는 생각만 했을까?     


국회 체험관이 끝나고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체험을 하기 위해 이동하면서 탁 트인 전경과 넓은 광장의 잔디밭을 지나면서 딸아이와 딸아이 친구에게 들뜬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얘기했다.     

“얘들아! 그 얘기 들어봤니! 6.25 전쟁처럼 위기 때마다 국회의사당의 원형돔이 열리면서 로봇태권브이가 나와 우리나라를 위기에서 구해줬대!”     

딸아이는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었으며, 딸아이 친구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에이! 거짓말 같은데요.”     


딸아이가 크면서 일한다는 핑계로 이제 컸으니 뭐든 잘해야 한다는 늘 내가 가졌던 강박관념을 그대로 딸아이에게 하지 않았나, 늘 아이를 가르치려고만 해 봤지. 딸아이의 마음을 다독이는 대는 딸아이의 친구엄마보다 부족했구나 하는 생각에 들어 딸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까지 달리기만 했지. 여유라고는 가져보지 못했던 내 삶을 내 딸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강요하며 내가 했던 만큼 아니 더 하기를 딸아이에게 채찍질한 건 아닌지 내 딸이니 잘해야 한다. 아니 나보다 더 잘해야 한다 스스로에게 했던 스스로에게 해야 할 채찍질을 딸아이에게 강요하지는 않았나 스스로를 반성하게 됐다.     


teach의 반의어는 learn이 아니다. teach와 learn는 유의어이다. 물론 정답은 아니다. 시험은 늘 정답을 써야 하지만 세상은 결코 정답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예외가 더 많은 법. 딸아이가 현명하게 살길 바란다며 말은 늘 그렇게 해왔지만 마음속으로는 공부 잘하는 똑똑한 아이로 키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가르치며 나는 배운다. teach=learn






작가의 이전글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