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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회승 Oct 02. 2023

에필로그-워킹맘의 새벽 두 시.

7년 만에 다시 당당한 워킹맘으로... 워킹맘 출근기

다시 한주의 끝자락에 와있다.

지금은 12시가 넘은 시간. 모두 다 잠든 시간이지만 나는 잠들지 못한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평일 이 시간에는 늘 내일 수업에 쓸 시험지며, 프린트를 미리 만들어 놓는다. 오규원의 시 ‘세상살이’에서 잠자는 일만큼 쉬운 것도 없다고 했거늘, 나 역시 그 쉬운 일도 할 수 없어, 컴퓨터 앞에 앉아 반쯤 감긴 눈을 비벼가며, 새벽 1시와 2시의 상념의 틈 사이로, 문뜩 내가 잘살고 있는 건지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처음 공부방을 시작할 때, 일곱 살 어린 딸아이를 데리고 아이 돌보랴 일하랴 살림하랴 그야말로 동분서주하며 지냈다.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일들을 경험하면서 나는 점점 단단해져 왔다. 자그마한 일에 예민했던 나는 이제 웬만한 일에는 무덤덤해지고 지나칠 일과 내가 취해야 할 일에 조금 더 집중하는 판단력도 키울 수 있었다. 그것이 살아가는 데에 더 유리하다는 것도 터득하게 되었다. 그것이 경험일 것이다. 이윤택의 시 ‘세상살이’에서 한 소년의 마음에 한 장씩 경험이 쌓이고 그 경험이 제 생각을 갖추는데 삼십여 년이 걸렸다고 말한다. 나 또한 쌓인 경험이 제 생각을 갖추고 나를 성장시켰다.   


그런데 지금은 그간 쌓아놓은 그 경험이 나를 꼼짝할 수 없게 한다. 한 소년이 삼십여 년 동안 쌓였던 세상살이에 갇혀 꼼짝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때때로 나를 지치게도 한다. 나는 아직 어린 딸아이가 있고, 나의 미래도 설계를 해야한다며 스스로를 채찍질을 하지만 옥죄어오는 책임과 의무가 나의 몸과 마음을 한계점에 다다르게 할 때는 가끔 벗어나고 싶다는 내적갈등을 일게 한다.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돼버린 깊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그래도 시간은 그런 나와 상관없이 흐른다.

 

10월이다. 가을이 왔다. 그보다 공부방 중등부 2학년 중간고사 기간이기도 하다. 학원 강사에게 1년은 1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그리고 2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로 나눈다. 그게 학원 강사의 1년이다. 공부방 중등부 학생 1학기 때 중간고사 기말고사 준비를 해주니 금세 여름방학이 되었다, 지금은 2학기 중간고사를 코앞에 두고 있고, 역시 중간고사 준비를 하느라 바삐 보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가을이 왔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진 공기에 가을이 성큼 왔다는 것을 느꼈다. 세월도 시간도 주위에는 관심 없다는 듯 참 잘 간다. 그간 일하느라 눈코 틀새 없이 바삐 지내다 보니 부쩍 자란 딸아이를 보며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제 귀엽고 사랑스러운 어린 딸아이의 모습은 사진 속에서나 찾아야 한다.      


딸아이 어릴 때, 병원에 가기 위해 한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벤치에 누군가 낙서처럼 써놓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한평생 부지런해도 연기처럼 허무하다.’ 시리고 차가워진 날씨만큼이나 가슴이 아려왔다. 삶이 고단하고 팍팍했을 터. 그 모습이 낯설지가 않은 건 네 모습, 또 바로 내 모습 때문일 것이다. 그날 그 글귀를 보며 내 딸이 살아가야 할, 이 험난한 세상이 그저 지금보다 좀 더 따뜻해지기를 엄마의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고 기도드렸었다. 그리고 내 딸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좀 더 많아지길 바랐다.      



공부방 6년 이제 7년 차, 앞만 보고 달려왔다. 공부방 일을 하며 12시 전에 자본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 손에 꼽힐 정도이다. 열심히 달려 다시 한 주의 끝자락에 와있는 이 시간, 새벽 1시와 2시 사이 일주일의 피로가 온몸으로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간 쌓인 피로와 고단함도 이 시간이 지나면 나를 더 단단하게 해줄 것이다. 오늘도 나의 상비약인 액상 감기약을 먹으며 한주의 피로를 달래본다.      


감기약이 떨어질 때면 집 앞에 있는 약국을 간다. 약국은 사거리 모퉁이에 있다. 사거리는 늘 사람들과 차들로 북적인다. 붉은 신호등으로 잠시 대기하며, 수없이 지나가는 차들과 사람들을 본다. 문뜩 여기 내가 왜 있는지 내가 잘살고 있는 건지 행복한지 불행한 건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다 녹색 신호등을 놓쳐 다음 신호를 다시 기다리기도 한다.      


‘한평생 부지런해도 연기처럼 허무하다.’ 허무하고 혼돈인 세상, 누구도 버스를 기다리며 힘들고 고단한 몸을 애써 버텨가며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갔을 것이다. 사실 무엇이 불행하고 무엇이 행복한 건지 늘 혼돈일 때가 많은 세상살이이다. 그러나, 아직 나는 건강하게 나의 일을 하고 있고, 딸아이도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어 그냥 이대로도 행복하다고 애써 나를 달래보는 고된 이 밤, 워킹맘의 새벽 두 시이다. 그러나 가끔 생각한다. 수없이 지나가는 차들과 사람들에 상념의 틈 사이로 그 횡단보도 사이로 건너보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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