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방 그룹 수업이 끝나고 마지막 수업인 개인과외 수업을 하고 있는데도 평상시와 다르게 딸아이가 아직 오지 않았다. 마지막 수업의 학생이 들어왔다. 애간장이 타다 못해 핸드폰만 들여다보기를 수십 번, 머릿속은 이미 밖을 뛰쳐나가고 있었다. 틈틈이 계속 딸아이에게 전화를 했지만 딸아이의 전화가 꺼져있다.
‘도대체 얘가 어디 간 거야... 휴우!’
전업주부를 일하는 딸아이 친구엄마는 일하는 나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나는 전업주부로 일하는 딸아이 친구 엄마를 부러워한다. 옆에서 늘 아이를 돌봐줄 수 있으니 말이다. 아이가 아플 때나 이런 일이 있을 때면 그나마 재택근무라 해도 아이를 찾아 뛰쳐나갈 수도 없고, 옴짝달싹할 수 없으니 갈등과 고민을 반복하는 것은 워킹맘들의 공통점이 아닌가 싶다.
공부방 학생들 대부분 우리 아파트 아이들이다 보니 그룹 수업을 마치고 가는 아이들에게 혹시 몰라 부탁을 했다.
“얘들아! 혹시 선생님 딸 놀이터에서 보거나 하면 빨리 집으로 오라고 얘기 좀 해줄래.”
“선생님 딸, 아직 안 들어왔어요!” “어! 이런 적이 없는데.. 전화도 받지를 않네!”
“네... 알겠습니다. 나가다 혹시 보면 들어가라고 얘기할게요.”
"얘들아, 고마워."
공부방 학생들 따라 나가고 싶지만, 마지막 남은 과외 수업을 해야 했다. 공부방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과목 수도 꽤 늘어나 다행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이 많아지면 질수록 아직 어린 딸아이는 점점 공부방 학생들보다 뒤로 밀려나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 공부방을 시작한 의도와는 다르게 공부방 일에 휩쓸려 딸아이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심심하다 보니 밖으로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 일도 많아진 것이다. 공부방 아이들 수업이 끝난 후, 딸아이 공부를 봐주고 있지만, 저녁시간 때 봐주다 보니 나도 아이도 피곤한 상황에서 수업을 해 집중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 문제가 걸려있는 상황이면 워킹맘들은 전업주부로 일하는 엄마들이 부럽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해 혹여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아마 나는 견디기 힘들것이다. 아니 모든 엄마들이 같은 마음일 것이다. 수업 내내 걱정과 근심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는 기다리다 못해 수업하다 짬시간에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는 아이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잔뜩 찌푸려진 이마에 손을 얹고,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누르며 얘기했지만, 이미 지금의 상황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난데... 휴우! 아이가 없어졌어. 어딜 갔는지 전화도 안 받고,,. 자기가 지금 당장 빨리 찾아.....”
“선생님!...... ”
조금 전 공부를 마치고 나간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소리가 나는 대문 쪽으로 가보았다. 그런데... 공부방 여학생의 손에 딸아이가 있었다. 여학생은 헐떡거리는 가뿐 숨을 몰아쉬며 내게 반가움을 전해왔다.
“선생님... 딸 데리고 왔어요. 저기..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놀고 있더라고요!”
다행히 공부방 여학생이 나가다가 놀고 있는 딸아이를 보고는고맙게도 데리고 와준 것이다. 나는 순간 휴우! 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안도감과 고마움도 잠시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딸아이에게 차갑게 말했다.
“너!.. 들어가 있어. 수업 끝나고 보자!”
딸아이를 찾아 데리고 와준 공부방 여학생들에게는 고마움 마음을 전하며 작은 선물도 주었다. 조금 늦어진 수업도 안도감 때문인지 편한 마음으로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다.
저녁 식사 전 나는 딸아이를 데리고 서재로 가 문을 닫고 차근차근 따졌다.
“너! 이 시간까지 어디 갔었니?”
“친구가 저기 가보자고 해서...” “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학교 끝났으면 엄마가 전화하라고 했지. 전화도 안 받고 엄마 걱정하는 건 생각 안 해”
애써 화난 감정을 눌러 얘기는 했지만 나도 모르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아이는 엄마의 평소와는 다른 태도에 놀라 눈에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닭똥 같은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
아이는 그만 으앙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전화기 밧데리가 다 돼서...”
아이의 울음에 나도 모르게 그만 나도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리고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전화도 안 되고 나가지도 못하고...”
“혼자 심심했단 말야. 엄마는 맨날 바쁘고...”
사실 잔뜩 걱정 어린 마음에 아이에게 화는 냈지만 미안함이 더 컸다. 일을 하니 시간이 없었고, 또 피곤함에 아이를 돌보는 게 힘에 부쳤고, 아이는 자연스레 방치가 아닌 방치가 되어있었다.
전업주부를 일하는 딸아이 친구 엄마는 일하는 나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이럴 때면 나는 전업주부로 일하는 딸아이 친구 엄마를 부러워한다. 옆에서 늘 아이를 돌봐줄 수 있으니 말이다. 아이가 아플 때, 아이와 함께 놀아주지 못할 때, 학교행사에 참여해야 할 때, 가지 못하고 돌봐주지 못하고 놀아주지 못할 때, 워킹맘들은 괴롭고 힘들다. 이런 갈등과 고민을 반복하는 것은 워킹맘들의 공통점이 아닌가 싶다. 육아에 정답은 없다. 전업주부로 일하는 엄마나 워킹맘으로 일하는 엄마든지 누가 누구를 부러워할 일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워킹맘으로의 삶을 지금도 살고 있다.
현재 공부방 6년 차 선생님이다. 7년 만에 다시 워킹맘으로 엄마에서 다시 선생님으로 복귀했다. 일하면서 느끼는 스스로의 자존감이나 자기 계발까지 아이가 자라는 만큼 성장하는 엄마로 선생님으로 한 여성으로 있고 싶다. 아이가 이런 엄마를 자랑스럽게 여겨주기보다는 딸아이가 자라 내 나이가 됐을 때, 주부로 있기보다는 당당한 여성으로서 사회의 한 일원으로 살아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엄마라는 자랑스러운 이름 위에 당당한 워킹맘으로 아이 옆에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