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회승 Jul 10. 2023

9화. 가르치는 일보다 더 힘든 일이 있다.

7년 만에 다시 당당한 워킹맘으로... 워킹맘 출근기

“선생님, 오빠가 자꾸 욕해요!”     


이번에 새로 입회된 여학생과 먼저 입회된 남학생 둘이 공부할 때마다 유치하게도 여학생과 남학생 편 가르기 하듯이 서로 싸운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과목 수도 꽤 늘어나 다행이다 싶다가도 학생들이 많아지면 질수록 공부 외에 문제들도 늘어나고 있었다. 아직 어린 딸아이는 점점 공부방 학생들보다 뒤로 밀려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가고 말이다.     


처음 공부방을 시작한 이유가 딸아이를 밖으로 돌리지 않고, 내 손으로 돌보며 또 공부도 내가 직접 시키기 위한 것이었는데, 나는 늘어난 공부방 학생들 가르치느라 정신없이 바빠지고, 공부방에서 밀려난 딸아이는 점점 밖에서 노는 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어느 날, 새로 들어온 신입 여학생이 들어오자마자 핸드폰을 꺼내 책상 아래로 숨기며 뭔가 누르는 모습이 보였다. 앞에 서서 수업을 하던 나의 눈에 그 모습이 정확히 들어왔다. 나는 신입 여학생에게 의아해 물었다.

“수업 중에 뭐 하는 거니?”

신입 여학생은 전혀 거림 낌 없이 당당히 말했다.

“엄마가 오빠 욕하는 거 녹음해서 가져오라고 했어요!”

“뭐!!!”

나는 너무 경악스러웠다.     


세상에서 내 자식이 가장 중요하고 소중하다. 그러나, 상대방 아이도 그 어머니의 가장 소중한 자식일 텐데, 어떻게 상대방의 허락이나 동의도 없이 그것도 선생님이 버젓이 앞에 서 있는데도 아이한테 엄마라는 사람이 몰래 녹음해 오라고 시킨단 말인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공부방은 처음 내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결혼 전 학원에서 월급쟁이 교사로 있을 때와는 완전 다른 신세계를 경험하는 느낌이었다. 수업만 책임지던 월급쟁이 교사에서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학원 원장의 위치랄까. 지금 나는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그 대표 원장인 것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는 하지만 이래서 윗사람 노릇 하기가 힘든가 보다. 신경을 쓴 탓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곤이 온몸을 휘감은 것 같았다. 한동안 육아를 하면서 쪘던 살이 공부방 1년 만에 결혼 전 제 몸무게로 돌아간 것이다.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와 과중한 업무, 일부러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매일 겪는 다사다난한 사건들로 저절로 다이어트가 된 셈이다.

 

그날 저녁 공부방 수업이 모두 끝난 후,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동료 공부방 강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문의를 했다.

“저 선생님.. 엄샘입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전달을 잘못하면 어머님께서 기분 나빠하실 텐데 고민입니다.”

“선생님! 힘드시겠어요... 그런데 선생님, 이럴 땐 인터넷으로라도 검색해 보셔서 어떤 법조항의 위반이 되는지 정확히 알아보시고 얘기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냥 감정으로 대처하기보다는 정확한 데이터가 있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어요. 그나저나 이제 우리가 법 조항까지 따져가며 상담을 해야 하다니...”     


최악이었던 그 문제의 회원모는 이사를 했는지 그 뒤로 동네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이 일이 마무리된 지 얼마 안돼 또 이런 경우 없는 일을 맞닥뜨리다면서 처음으로 이 일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너무 행복하고 배우는 즐거움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보람과 자부심도 느낀다. 그런데 가르치는 일보다 그 밖에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지치고 힘들게 한다.      


신입 여학생 어머님께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공부방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 혹시 같이 공부하는 남학생 말하는 거 아니 욕하는 거 녹음해 오라고... 말씀하셨나요!”

“네! 제가 시켰습니다.”     


짧게 그것도 당당하게 말하는 신입 여학생의 어머님의 말에 나는 한번 더 당황했다. 화가 났지만 스스로 자제하려고 노력했다.
 “어머님! 그런 일이 있으시면 먼저 제게 말씀을 하셔서 상의를 해주시는 것이...”
 “아이가 평상시 선생님 말을 잘 안 듣다고 하던데요!”

“그래도 어머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시면 그 남학생 아이 어머님이 이 일을 아신다면 또 얼마나 당황스러우시겠어요. 그럴 일은 없으시겠지만 어머님 아이가 어디 가서 어머님도 모르게 이런 일을 당한다면 어머님은  어떠시겠어요. 입장을 바꿔보시면 금방 아실 수 있으실 텐데요.

"그럼, 평상시 아이가 그런 욕을 하지 못하도록 하셨어야죠. 애가 집에서 그 애가 하는 욕을 따라 해서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네! 물론 많이 당황하셨으리라 봅니다. 안 그러던 아이가 그랬으니... 하지만 따님만 계셔서 잘 모르실 수도 있는데, 오랫동안 학원에서 경험한 바, 으레 남자아이들이 하는 말이 그래요. 여자아이들하고는 다르답니다. 그냥 생각 없이 재미로 하는 것뿐이에요. 그리고 그 아이는 공부도 굉장히 잘하는 아이랍니다.”

“그러니깐 증거로 녹음을 해오란 거 아니에요.”

“어머님, 상대방의 허락 없이 몰래 학생을 촬영하거나 녹음하는 일등은 헌법에 있는 통신비밀보호법이나 개인정보 보호법에 위배되어 고소 고발 등을...”

“아! 됐어요. 욕하는 애 때문에 더 이상 우리 애를 거기 공부방에 보낼 수가 없네요.”
 “네!!... 네, 알겠습니다.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굳이 헌법까지 예를 들어 말씀 안 드려도 함께 공부하는 애도 같은 학교 같은 아파트 친구인데, 주민들 간에 매너는 지키는 게 예의 아닌가요!”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가 같을 수는 없다. 또 생각하는 관점 보는 관점이 다를 수는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공부방을 하며 겪는 일들이 때로는 힘에 부칠 때가 많다. 주로 어머님들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대부분 자신의 아이 입장만을 고집해 내세우기 때문이다. 소위 선생님은 을이요. 학부모는 갑이라고 생각을 한다. 갑질 아닌 갑질을 선생님에게 하는 것이다. 게다가 여기는 공부방. 자신과 조금이라도 맞지 않은 경우 그만두겠다는 얘기를 무기 삼아 갑질을 하는 경우, 요구조건을 거의 속수무책으로 들어줘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의 아이가 소중하듯이 상대방의 아이도 소중하다. 그리고 선생님들도 한 아이의 학부모이자,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다. 이런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자존감은 떨어지고, 가끔 선생님이란 직업에 대한 회의감도 든다.

      



이전 09화 8화. 이보다 더 최악일 수 없다(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