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연습중] 신호등

어서 건너오라는 걸까? 지금 당장 멈추라는 걸까?

by 마글사

[단편소설연습중] 신호등



노란색 신호가 깜빡이기 시작한다.

‘어서 건너오라는 걸까? 지금 당장 멈추라는 걸까?’


다시말해, 아직은 건널 수 있다는 마지막 찬스인가? 더이상의 기회는 없다는 마지막 경고인가?


친구 녀석의 결혼식날이다.


<올 수 있냐?>


그 녀석의 문자에 쉽사리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속칭 불알친구인 그 녀석 결혼식인데, <올 수 있냐?>고 짧지만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녀석의 속내나, 거기다 속시원히 대답할 수 없는 내 속내는 한 맥락에서 왔다.


난 삼 년 전까지 그 녀석 여동생의 남자친구였다.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3년을 구애했다. 꿈쩍도 하지 않는 그녀를 포기하고 ‘에잇, 군대나 가자’고 갔는데, 첫 휴가나온 날 밤에 그녀가 안겨왔다. 2년을 곰신을 자처해 주었고, 졸업하고 9급 공무원 합격할 때까지 5년을 기다려준 그녀였다.


그렇게 7년만에 친구 녀석이자 내 여자친구의 오빠에게 커밍아웃했다. 소주를 연거푸 퍼마시며 한 마디도 안 하던 그 녀석은, 한 병을 모두 비운 후에 딱 한 마디했다.


“우리 친구잃어버릴 짓은 하지 말자!”


지금 되짚어보니 찬성도 반대도 아니었다.


당시에는 “당연하지! 당연히! 잘 할게. 나한테는 미소뿐이야. 정말 잘 할께.”라고 쾌재를 불렀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말이 아니었던것 같다.


그 녀석은 지금 이 상황을 염려해 예견했을지도...


아직도 잘 모르는, 아니 생각해보면 수 십가지 수 백가지 명백한 이유로 10년의 연애를 마쳤다.

그리고 3년....그 녀석과 나는 30대 중반이 되었고 그 녀석의 청첩장을 문자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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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께. 당연히 가서 축하해줘야지>


결혼식 전날 밤에야 답장을 했다.


이럴 일이냐 마는 잠까지 설쳤다. 지하철에서 떠밀리듯 밀려나와, 출구에서 주춤했다. 갑작스레 멈추는 바람에 부딪친 뒷사람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했고, 몇 명의 어깨빵에 몇 번 휘청해야 했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생각해보았다. 내 10대와 20대의 목격자와 동행자인 친구의 결혼식이 아닌가! 난 당연히 그 녀석을 축하해 주러 온거야. 늦었지만 근사한 결혼 선물도 할 것이고, 깨소금 풀풀 나는 신혼집으로 집들이도 갈 것이다. 그 녀석의 팔푼이같은 마누라 자랑도 기꺼이 들어줄 것이고, 어쩌면 벌써 조카가 탄생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난 기꺼이 그 녀석을 꼭 닮은 아이를 위해 내 지갑을 활짝 열어줄 것이다.


이런 생각에 갑자기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다리가 자동으로 움직인다. 지하철 출구를 향해 큰 걸음을 떼놓는다.


그 때 한 아주머니의 큰 짐이 내 허벅지를 강타한다. 무릎이 꺽인다.


“미안해요. 총각”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 녀석 결혼식에는 그녀가 있다.


어쩌면 집들이때도 “오빠, 새언니!”하며 평소 성격대로 바지런히 손을 거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카는 항상 지 엄마 아빠 품보다도 고모인 그녀의 품안에 더 안겨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그녀의 본래 모습이니까.

황급히 몸을 돌린다.


‘못하겠다.’ 돌아서려는데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렇게 타의로 떠밀려 나왔다.


이 횡단보도만 건너면 웨딩홀이다.


말그대로 인산인해다.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뀐다.


왼손을 들어 오른쪽 가슴을 쓸었다. 나도 알지 못했던 이 짓을 그녀가 먼저 알아봐주었다.

“오빠는 긴장하면 꼭 오른쪽 가슴을 쓸더라.” 그때서야 알았다. 내가 그런 습관이 있다는 것을...

시험장에 들어가는 입구에서 바들바들 떠는 나의 심장 위로 조용히 손을 얹어주었다. 그리고 꼭 안겨서 속삭였다.


“잘 해낼꺼야. 내가 꼭 여기서 기다릴께.”


거짓말처럼 마법처럼 내 심장은 안정되기 시작했고 시험을 치뤘다.


고개를 들어 횡단보도에 발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심장이 미친듯이 뛴다. 귀는 웅웅거리고, 시야는 흐려지더니 어느 한 지점으로 촛점이 모아진다. 그 많던 사람들은 거짓말처럼 한 사람씩 삭제되고...

지금 내 눈 앞에는 딱 한 사람만 있다.


그녀다. 길건너편에서, 그녀가 날 보고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지하철 입구에서 떠밀려 나올때부터? 구겨진 양복 자락을 만지작거리며 어색하게 머리를 쓸어올리던 때부터? 멍청하게 호흡을 고르며 심장을 토닥이던 그 때부터?


녹색 신호등불이 노란색으로 깜빡이기 시작한다.


저 노란불은...


‘어서 건너오라는 걸까? 지금 당장 멈추라는 걸까?’


다시말해,


아직은 건널 수 있다는 마지막 찬스인가?


아님, 더이상의 기회는 없다는 마지막 경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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