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려령 소설집
이 소설집에는 7편의 단편소설들이 묶어져 있다.
이 단편소설들은 하나의 촛점 '불량가족'으로 모아진다.
첫번째 소설 #기술자들
배관공으로 조그만 가게는 운영하던 최는 결국 망했다. 마지막 구인승 승합차에 남은 연장들과 간단한 가재도구들만 싣고서 길을 떠나는데, 잡일 보조를 자처한 조를 태우고 함께 간다. 그들은 꼭 맞는 톱니바퀴처럼 잘 해 나간다.
두번째 소설인 #상자
엄마의 한복상자안에는 여자 주인공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딸이 너무 예뻐서 엄마가 신줏단지처럼 모셔온 그 한복상자안에는 쪽쪽이, 딸랑이, 배냇저고리 등등이 고이 모셔져 있었다. 엄마집에서 그 상자를 가져올 때만 해도 그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 상자를 보며 배시시 웃는 여자에게 남자는 "징그러웠어..."라고 말하며 이별을 고한다. 그렇게 서른세살의 동갑내기 커플은 이별했다.
세번째 소설 #황금꽃다발
좋은 대학에 입학한 큰 아들은 혼인신고를 했다면서 여자를 데려온다.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위해 혼인신고를 먼저 했다고 하며 유산을 미리 요구한다. 거절한 부모와는 그 후 연락 한번 없이 살아간다. 노부부의 아픈 손가락인 둘째 아들은 손대는 사업마다 망한다. 우직하게 성실하기만 한 둘째 아들과 엄마는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고향인 시골로 내려오고, 베스트 셀러 작가이자 큰 상 수상자인 큰 아들은 눈오던 어느날 기자를 데리고 엄마를 찾는다. 첫째 아들에 치여 마냥 쭈그러진 둘째 아들에게 엄마는 태몽이었던 황금꽃다발 이야기를 들려주며 서로를 위로한다.
네번째 소설 #뼛조각
중학교 때 발목을 접질렀다가, 우연히 찍게 된 엑스레이에서 무릎 근처에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던 뼛조각을 발견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중환자나 된 듯한 엄살'이...
그리고 스물 아홉! 무릎이 아팠다. 엑스레이를 찍었다. 뼛조각을 제거해야 할 듯 싶었다. 또 시작되었다. 늙은 아버지를 향한 남자의 엄살은....
다섯번째 소설 #세입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겨우 원룸생활을 하는 여자에게 부모와 여동생은 처치곤란한 짐짝이다. 엄마덕에 직장에 보증금까지 모두 날리고 빈털털이가 된 여자는 야무지게 마지막 미역국을 끓여 먹고서는 읻제는 엄마가 도저히 찾을 수 없는 행방불명자로서 길을 떠난다.
여섯번째 소설 #오해의숲
그럭저럭 해나가던 직장에서 자신이 폭탄돌리기의 주인공인 폭탄이라는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그래서 그만 두고 마지막 출근하던 날, 예전 등학교 동창생은 첫 출근을 했다. 동창인 그녀를 의도적으로 피했던 기억이 있는 여자는 불편해만 하는데, 마지막 카페에서 오랜만에 인사이자 마지막 작별을 하는데...모든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이 폭탄이 아니었음을.. 모든 것이 오해였음을...
그리고 마지막 내겐 가장 압권이었던 #청소
스물셋, 스물넷 짜리 남매를 둔 여자는 어느 날 직장을 그만둔다. 그럭저럭 잘 해나가던 직장이었다.
210쪽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고 누구도 그녀를 견제하지 않아 가능했다. 그녀는 성과를 위해 눈에 띄게 앞으로 나선 적이 없었다. 늘 이선의 조력자를 자처했다.....그것이 한결같아 입사 초기에는 적극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뒤로는 오히려 과욕이 없다는 평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일이라는 것이 늘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어서 일이 틀어지면 우선 그녀를 탓하기도 했다. 그러면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로 답하고 곧장 돌아섰다. 결과에 칭얼칭얼 징징대는 것을 참지 못했다. 그런 건 너네 부모한테 해. 그녀는 며칠 전에 사직서를 냈다. 이제 그만하자. 결심했고 망설이지 않았다.
그리고 청소를 시작했다.
몇년 묵은 짐은 버리기 시작했다. 첫날 냉장고부터 청소하기 시작했다. 청소하는 과정이 너무 섬세하게 설명되어 있어서 심지어 내가 청소하는 듯한 묘한 시원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청소하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아들과 딸의 무심함...누구 하나 돕는 놈들이 없다. 고된 직장생활에서 딱 한번 홧김에 샀던 작은 명품백을 쓰레기 봉투에 밀어넣자 딸은
225쪽
엄마! 등 뒤에서 그녀의 딸이 소리쳤다. 그거 나달라니까 왜 버려? 짝퉁이었어. 백화점에서 샀다며. 그냥 한 말이지. 어쩐지 폼이 안 나더라. 폼. 말 한마디에 명품의 위상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221쪽
아들도 얼굴을 내밀었다. 뭐 해? 문 닦아. 요즘 무슨 일있어? 없어, 닫아. 냉장고에 먹을 게 하나도 없어. 어떤 것을 채워야 저런 말을 듣지 않을까. 차라지 음식 배달책자와 카드를 넣어둘 것을. 그랬다면 정성껏 만들어 쓰레기통만 배부르게 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배고파. 시켜먹어. 치킨 시킨다......
뭐 시켰냐? 양념하고 치즈 뿌린거. 나 그거 안 먹어. 주문하기 전에 말해야지. 물어봤어? 새 거 시켜? 됐어?
221쪽
쌓인 휴지로 뚜껑이 벽으로 밀려날 지경이 되어도 비우는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제발 나의 하루를 26시간으로 늘려주십시오. 두시간 만. 제발 두 시간만 더. 한때는 그런 기도를 달고 살았다. 아마 그녀의 아들이 고등학생 때였나보다. 그녀의 다리 부종이 유독 심한 날이었다. 쿠션을 높여 다리를 올리고 잠시 눈을 붙였다. 그모습이 짐짓 한가로워 보였을까. 아들이 다가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엄마, 자? 아니. 화장실 쓰레기통 비워야 해. 그녀가 기분이 상하거나 민망하지 않도록 조심한 말투였다. 힘들면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진심과 배려마저 느껴져 어떤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선한 고용자의 일꾼을 향한 배려. 날 고용했니? 자조했을 뿐이다.
그렇게 가족을 위해 살았던 만49세의 여자는 6일동안 청소를 마치고 7일째이자, 그녀의 생일날에 미역국에 쌀밥을 해먹고서는 아파트를 나선다.
마지막 230쪽
더이상 수를 헤아리기 힘들 만큼 긴 시간이 흐른 날. 그녀는 아직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먼 곳에 있는 그녀에게 누군가 말했다. 당신은 당신의 하나를 간직할 수 있습니다.
없습니다.
다 닦고 다 버리고 남길 것은 남기고 왔습니다.
아! 이 미친 여운...옆에 있으면 등짝에 싸다구라도 한번 시원하게 날려주면 시원할 놈의 자식들....
다 버리고 떠난 그녀에게 진심 존경을 표한다. 그런데 그 놈 자식들이 과연 깨달음이 있을지...부모라고 다 부모가 아니고, 자식이라고 다 자식이 아닌...어떤 때는 남보다도 못한...관계들....
가슴이 너무 먹먹해서 오늘 밤 일찍 잠들긴 글렀다.
#기술자들 #김려령 #창비 #소설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