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eer Party!

마주하기

내 입맛을 마주하기, 이 음식을 마주하기

by 음미하다




illust by illust by @eummihada - 음미하다



술은 쓰다. 술이 쓰게 느껴지는 것은 술을 술로 만드는 주성분인 에탄올이 쓴맛을 느끼는 수용체인 TAS2R38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술이 누구에게나 쓴 것은 아니다. 대략 네 명 중 한 명은 이 수용체가 둔감하여 술에서 쓴맛을 잘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오랜 시간 발효된 감미로운 술의 향기와 취기는 모조리 느끼면서 알코올의 쓴맛은 느끼지 못한다니, 이런 축복받은 입맛이라면 술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 결과는 뜻밖이다. 알코올을 쓰게 느끼는지 여부는 정작 술을 좋아하는 것과는 크게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어느 조사에서는 오히려 쓴맛을 잘 느끼는 사람 중 과음하는 이의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그래서 술을 마시며 ‘캬~’ 하고 쓴맛을 뱉어내는 것일까?


결국 쓴맛에 대한 기호는 학습된다. 처음부터 쓴맛을 좋아하는 아이는 없다. 어머니의 젖 내음에서, 부모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 하려는 본능에서, 봄이면 으레 맛보는 봄나물에서, 음식과 함께했던 즐거운 기억과 추억을 통해서 쓴맛의 묘미를 배운다. 썩은 우유 한잔이 평생 우유를 멀리하게 할 수 있듯이 아무리 요리를 못하더라도 외롭고 아플 때는 부모님이 해주신 집밥이 맛있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의 입맛은 절대적인 잣대라기보다는 그저 감각적 경험의 느슨한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1920년대 미국에는 1345개의 브루어리가 있었다. 그 후 20여 년간 술의 제조와 판매가 금지되었고, 다시 문을 연 브루어리는 그 절반에 불과했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그 수는 다시 절반으로 줄었다. 수많은 소규모 브루어리들이 사라지고, 일단 살아남은 브루어리들은 무주공산이 된 시장을 장악하며 급속히 대형화되었다. 전쟁으로 인한 물자 부족으로 맥주를 만드는데 필요한 보리의 가격이 오르자 그들은 알코올 도수를 낮추고 보리 대신 값싼 쌀과 옥수수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메리칸 라거’는 그렇게 탄생했다.


한 번 그 맛에 적응한 미국인들이 새로운 맛의 맥주를 찾는 데는 50여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의 입맛은 적응의 산물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늘 소시지만 먹어왔다면 소시지를 좋아할 것이다. 늘 삼겹살만 먹어왔다면 삼겹살을 좋아할 것이다. 늘 김치를 먹어 왔다면 김치를 좋아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 음식을 좋아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것이 제대로 만들어진 음식인지, 몸에 좋은 음식인지, 우리를 위해 만들어진 음식인지를 증명해 주지는 않는다.


달걀에서 살충제가 나왔다. 이제는 달걀조차 마음 놓고 먹지 못하는 세상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우리는 달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누가 만드는지, 어떤 생각으로 만드는지, 그들이 무엇으로 힘들어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얼마나 관심 가져 봤을까? 닭을 치는 농부들이 달걀을 먹는 소비자에게 무관심하듯 우리도 달걀을 낳는 닭에, 그리고 닭을 기르는 농부에게 무관심하다. 내가 그들에게 관심이 없는데, 그들은 왜 우리에게 정성껏 기른 최고의 달걀을 팔아야 할까? ‘나는 달걀이, 계란말이가, 계란찜이 좋아’라고 했을 때, 그 달걀이 평생 날갯짓도 해보지 못한, 어두컴컴한 철창에 갇혀 알 낳는 기계로써 살아온 닭이 낳은 것이라면, 그런데 나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면, 나는 정말로 달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작은 시골 마을에 장이 서면 다들 자신이 키운 농작물을 가지고 나온다. 자신이 키운 것만을 팔기에 잎이 꼬불꼬불한 파슬리와 잎이 납작한 파슬리의 맛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는 것 따위는 일도 아니다. 소비자들도 자신이 무엇을 사는지 잘 알고 있다. 때로는 너무 잘 알아서 문제이다. 한 사람은 우리 집 달걀을 사 가면서 수탉과 암탉의 비율이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 리 호이나키, 정의의 길을 비틀거리며 가다


적어도 저 사람은 달걀을 아주 (혹은 지나치게)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다.



손수 재료를 고르고, 손질하고, 익히고, 그 맛을 보고, 기억해 본다. 자꾸 반복하다 보면 기름이 튀는 정도에서 그 온도가 느껴진다. 굳이 보지 않아도 프라이팬에서 나는 냄새로 고기가 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젓가락을 통해 느껴지는 감촉으로 채소가 얼마나 신선한지 알 수 있다. 오감을 쓰자. 모든 감각을 쓰자. 그렇게 먹었을 때 우리의 뇌는 최대한 활성화될 수 있다. 최고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시간을 쓰자. 이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 재료는 어떻게 키워졌는지, 누가 키웠는지, 왜 키우는지 알아보자. 그때 비로소 우리는 그 음식을 마주한다.







참고문헌

Allen AL et al. 2014. Polymorphisms in TRPV1 and TAS2Rs associate with sensations from sampled ethanol. Alcoholism. 38 (10): 2550-2560.

Choi JH et al. 2017. Genetic variations in taste perception modify alcohol drinking behavior in Koreans. Appetite. 113: 178-186.

The Economics of beer. Edited by Swinnen JFM. OUP Oxford, 2011.

리 호이나키 저, 김종철 역.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녹색평론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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