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리니 도시계획
사파이어를 연상시키는 파란색 지붕, 그와 똑같은 짙푸른 바다, 그리고 부드러운 느낌의 하얀 건물. 이 세 가지 보물이 합쳐진 공간에 들어서 투명한 햇살을 받으면 마치 아름다운 동화 속에 빠진 듯 행복감이 밀려온다. 누구나 사진 속에서 한 번쯤은 보았을 그리스 산토리니섬의 풍경이다.
그러나 처음 이곳 산토리니에 도착했을 때는 그 장면이 허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길 주변을 보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프로페셔널 사진가가 절묘한 각도에서 찍어낸 ‘만들어진 장면’이었던 것이 아닐까?”
숙소는 산토리니 피라 마을의 꼭대기 쯤에 위치해 있었다. 짐을 풀고 아무런 기대 없이 바다 쪽으로 향했다. 어느 순간 하얀색과 파란색의 조화가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푸른 바다를 향해 옹기종기 서있는 수많은 건물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아! 이거였구나!”. 그것은 사진 속 풍경과 다를 바 없었다. 어느 곳에서나, 어느 각도에서나 그 장면이 연출됐다. 이곳에 머문 2박3일 동안 이 장면을 그토록 자주 볼 수 있게 될 줄이야.
산토리니는 왜 이렇게 아름다울까. 그것은 바로 산토리니섬 자체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10만년에 이르는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자연 속에서 살았고, 그 자연 속에 있을 때 가장 편안하게 느낀다. 이곳서 볼 수 있는 장면 대부분에는 언제나 푸른 바다가 배경을 만든다. 이곳 건물 역시도 자연의 일부다. 마치 어머니의 품 같은 푹신푹신한 느낌의 하얀 건물에는 대자연의 역사가 담겨 있다.
“우르릉 쾅쾅!” 기원전 1613년 산토리니에서 발생한 화산폭발은 48~64시간 동안 지속됐다. 폭발의 충격은 지구적인 규모로 충격을 줬다. 화산에서 튀어나온 화산재 등은 성층권에까지 도달해 2주간 어둠이 깔렸고, 2년간 겨울이 지속되었다.
이 엄청난 폭발과 함께 땅 속의 마그마가 빠져 나오자 지표면은 폭삭 주저앉았다. 칼데라 지형이 만들어진 것이다. 주저앉은 곳 이외의, 남은 부분이 바로 산토리니다. 산토리니는 화산 한 가운데를 바라보는 듯 감싸며 초승달 모양으로 남았다. 화산 쪽 바다를 향한 절벽에 거주지가 들어섰고, 그 덕택에 우리는 산토리니 어느 마을을 가더라도 바다와 건물, 하늘을 함께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머문 피라, 이메로비글리, 이아 마을에서는 각각 서로 다른 마을을 바다와 함께 바라보며 조금씩 다른 매력을 즐길 수 있었다.
산토리니 사람들은 화산재를 파고 들어가 집을 만들었다. 산토리니는 워낙 건조해 나무가 잘 자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나무도 잘 자라지 않아 집의 구조체로 사용할 만한 목재를 구하기 어려웠다. 대신 화산재로 구성된 지층을 가지고 있었다. 이 지층을 동굴처럼 파고들어가면 훌륭한 집을 만들 수 있었다. 화산재는 시멘트와 거의 비슷한 성질을 갖는다. 화산폭발 당시 쏟아져 나온 화산재는60㎦에 달했고, 화산재와 부석(pumice)이라 불리는 화산석 등을 공중에 흩뿌렸다. 이는 집 6400만채와 맞먹는 부피다.
동굴을 팔 때 무너지지 않게 하려면 좁고 길게 파고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입구에 들어가면 거실, 침실, 창고 등이 차례로 등장하는 일자형 평면구조가 이곳 건축물의 특징이다. 동굴주택은 이곳의 강렬한 자외선과 강풍을 피하기에도 적합했다.
산토리니 사람들은 동굴을 파고 살며 익힌 재주를 이용해 동굴이 아닌 집도 지었다. 화산폭발로 나온 부석은 가볍지만 강도가 셌다. 이 부석을 세우고, 화산재를 시멘트 삼아 벽체를 세웠다. 화산재에는 석회 가루를 섞어 강도를 더했다. 하얀색 회반죽을 외장재 삼아 표면을 덮었다. 하얀 회반죽은 이곳의 강렬한 빛을 반사시켜 주는 동시에, 만약 내부에서 구조적 문제가 생길 경우 크랙(금)으로 경고를 해줄 수 있다. 절벽 위쪽에 화산재로 형성된 지층이 있기도 했지만, 해적의 침입도 잦았기 때문에 바다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숨겨진 계곡 위주로 자리를 잡았다.
목재가 없으니 자연히 석재의 압축력을 기반으로 한 건축물이 발달했다. 수직력을 견디기 위한 방안으로 아치 형태의 지붕이 등장했다. 수직 하중을 수평으로 작용하는 아치 지붕을 지지하기 위해 벽체는 두꺼워졌다. 1956년 이곳을 완전히 파괴한 대지진 이후에는 아치형 지붕이 더욱 늘어났다.
아치 위에 평평한 옥상을 추가로 덧붙이는 경우도 있었다. 천장이 이중으로 돼 여름엔 시원하게, 겨울엔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었고, 빗물 수집도 쉽게 해줬다. 매우 건조한 이곳에서 옥상은 빗물 수집용으로 아주 중요했다. 살짝 기울기를 줘 빗물을 아래쪽으로 흐르게 해 ‘시스턴’이라는 이름의 빗물받이에 저장하도록 했다. 섬의 꼭대기 부위에 화산재가 쌓였고, 가파른 절벽 지형을 이루고 있어서 누군가의 집 옥상은 또 다른 이의 집 베란다로 활용됐다. ‘수직도시’가 된 것이다. 건물들의 소유관계는 굉장히 복잡해서 그에 대해 물으면 현지인들도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주 단순한 형태에 두꺼운 벽체, 얇은 아치, 좁은 입구, 하얗고 부드러운 곡선의 단순한 외형을 가진 산토리니 건축물은 이렇게 탄생했다. 산토리니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이런 흰 건축물은 이포스카포스(Yposkafos)라 부른다. 하지만 선장이나 귀족 등과 같은 부유층의 주택은 달랐다. 빽빽한 절벽지에 집을 짓는 대신, 꼭대기 평지에 집을 지었다. ‘선장의 집’으로 통칭되고 있는 카페타노스피타(Kapetanospita)다. 1850년께부터 지어지기 시작한 선장의 집은 프랑스 같은 곳에서 볼 만한 건물과 비슷한 느낌의, 화려한 장식이 더해졌다. 유럽 전역을 다녀온 선장들은 당시 유행한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을 따라 하고 싶어 했다.
그리스 아테네국립공과대학의 타노스 스타시노풀로스는 2006년 발표한 논문 ‘산토리니 건축물의 4가지 요소에서 찾아낸 토속적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찰’에서 “지형과 기후조건 등에 적응해 나가는 사회 진화의 한 형태”라고 소개했다. 건축물은 사람들이 그 장소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산토리니의 화산폭발과 그에 따른 지형 조건, 지중해성 기후 등은 이곳 특유의 건축을 만들어낸 셈이다. 외부에서 들여온 건축 재료가 아닌, 이곳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그대로 써 만들어낸 건축은 인공이면서도 인공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자연과의 조화는 태생적으로 당연한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과거 형성된 마을의 형태적 특성이 지금까지도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자연과 역사와 사회환경이 맞물려 형성된 토속의 아름다움은 수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관광객과 돈이 몰리면 개인의 욕망이 부풀어 오르고, 도시의 매력도 조금씩 훼손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산토리니는 그렇게 놔두지 않았다. 그것이 이곳 도시계획의 힘이다.
피라 마을의 한 매장에서 판매 중인 옛 사진들을 보니, 1930년대의 산토리니도 지금의 모습과 놀랍도록 똑같았다. 이 아름다운 경관이 거저 만들어질 수는 없다. 현대의 풍요로움과 그것을 향한 욕망은 이곳의 아름다움을 훼손하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이곳 특유의 건축과 지형, 그에 따라 나타난 경관은 어떻게 지금까지도 유지될 수 있었을까. 산토리니시가 만든 도시계획 가이드의 내용은 그 방법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줬다. 산토리니시가 발간한 <산토리니 전통 주거지에서 작은 규모의 건축 계획: 사례를 통해 본 실무 가이드>란 책에는 다양하면서도 세세한 사례들이 담겨 있다. 책은 각종 사례를 사진으로 보여주며, ‘좋음, 중간, 나쁨’으로 분류해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예컨대 마당의 바닥재에 대해 “건물의 재료를 그대로 살린 하얀색 회반죽이 바람직하다”고 한다거나, “흰색 페인트로 규칙적으로 도색하는 것도 깔끔하다”고 소개했다. “건축물과 어울리지 않는 세라믹 타일이나 공장에서 찍어낸 대리석을 사용하면 어울리지 않는다”며 재료의 제한을 명확히 하는가 하면, 에어컨 실외기를 숨기는 방식, 건물의 계단과 난간을 만드는 방식의 좋은 예와 나쁜 예도 소개했다. “계단은 흰색 회반죽을 활용해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하는 게 토속 건축물에 어울린다”는 식이다. 이곳 토착 덩굴식물인 부겐빌레아를 이용해 그늘막을 만드는 방법까지도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로 세밀한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또 책은 길거리의 조명이나 골목길 바닥재의 모양도 어떤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준다. 이 수많은 사례들은 강제 규정이 아니라 ‘권고'일 뿐이긴 하지만, 건물 신축 허가와 연계돼 중요한 기준점을 마련해준다.
이외에도 중앙정부와 시 당국은 이곳의 경관에 대해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정책을 펼치고 있다. 바람이 굉장히 센 지역임에도 경관을 해칠 수 있어 풍력발전은 하지 않고 있다. 맥도널드와 같은 프랜차이즈 업체나, 하이엇•힐튼 같은 대형 호텔 체인을 허용하지 않는다. 작은 상점과 작은 개인 호텔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모습이 이곳의 트레이드 마크다. 거대한 매스로 마을의 경관을 훼손시킬 여지를 아예 없애버린 셈이다. 서울의 명동이나 홍대거리와 비슷한 오밀조밀한 거리 상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곳 특유의 건축물과 어우러져 매우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산토리니의 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다. 건물 하나하나가 각각의 개성을 바탕으로 다양성을 이루며 일관된 도시계획 속에서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배열된 모습은 관광객들에게 놀라운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도시계획을 통해 토속적 건축물을 유지하면서도 바다라는 자연 자원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게끔 관리해온 그리스인들의 섬세한 문화적 역량은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산토리니를 만들어냈다. 하얗고 부드러운 파사드의 건축물들이 오밀조밀 모여 바다와 한 쌍을 이루는 모습. 인공 아닌 인공이 자연과 어우러진 그 경관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곳 사람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얻은 것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선다. 이곳만의 특별함을 만들어냈다. 저녁 때가 되면 모든 관광객들이 바다 쪽을 향해 석양을 기다린다. 바다를 배경으로 바라보는 석양은 한국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런데 산토리니에서의 이 장면은 왜 이렇게나 특별했을까. 이곳엔 바다 쪽에 설치된 담장조차도 허리춤 밑으로 설치돼 있다. 누구든 걸터앉아 석양과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이 디테일, 자연을 다루는 인간의 섬세함이 자연을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 아닐까?
나는 이아 마을에서 만난 석양을 잊지 못한다. 석양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우리는 푸른 바다가 붉은 태양을 삼키는 순간을 바라보기 위해 숨을 죽였다. 어느새 태양이 바다 속으로 쑥 들어갔다. 그 순간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된 듯 환호하고 박수를 쳤다. 지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석양은 이 순간, 이곳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이벤트가 되었다. 나는 이곳에 모인 지구촌 인류 동료들과 석양 하나로 묘한 공감대를 느꼈다. 그 순간, 속눈썹에 살짝 맺힌 눈물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음성원 도시건축전문작가
*이 글은 2016년 10월17일치 한겨레 신문에 실린 '산토리니는 어떻게 모두의 바다를 얻었나' 기사를 다시 작성해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이 발행하는 잡지 디오션 VOL.07에 실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