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재구성>을 재구성하다(1)
아래는 제가 쓴 책 <도시의 재구성>을 재구성하여 다시 쓴 글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공간끼리 경쟁하는 시대가 어떻게 열렸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이른바 '핫 플레이스'에서 시작됩니다. 어떤 인물에 대해 이야기할지에 대해 시작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위해 ‘핫플레이스’의 등기부등본을 뽑아 분석해봤습니다. 서울 홍대지역이라 불리는 상수동과 연남동, 그리고 경복궁 옆의 서촌입니다. 거기서 각각 183개, 148개, 92개의 등기부등본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연도별로 건물주 평균연령 변화를 그래프로 그려봤습니다.
제가 이 분석을 했던 것이 2016년입니다. 그리고 2015년 말 기준으로 건물주 연령을 뽑아냈습니다. 신기하게도 2015년 말 기준으로 건물주 평균 연령은 58년 개띠였습니다. 2016년 58년 개띠는 우리 나이로 59살, 곧 환갑과 은퇴를 앞두고 있는 나이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녀들을 거의 다 키우고 자산을 불려본 경험도 많은 세대입니다.
이 분들은 일생을 통해 부동산에 대한 특별한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완서의 소설 <서울 사람들>을 보면, 주인공 혜진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년 만에 분양가의 배가 된 집을 팔아 새로 지은 걸 분양가로 살 경우 40평도 넘는 걸 살 수 있다.”
58년 개띠가 “만 2세였을 때 그들의 인구는 101만 3427명에 달했습니다. 57년생과 56년생이 각각 90만명 정도였고, 전후 학교를 비롯한 사회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갑자기 한 해 만에 10만명이 늘어나면서 각종 특이한 상황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중앙일보)습니다. “학교에서는 일련번호 109번을 받은 친구도 있었고, 2인용 책상에 셋이 앉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입시전쟁과 경쟁이 치열한 세대”(조선일보)이기도 합니다.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개발시대를 겪었고, 거기서 부동산은 자신들을 중산층으로 성장할 수 있게끔 해주는 중요한 발판이었습니다. 마치 <서울 사람들>의 혜진처럼 말이지요.
아무리 하찮은 건물도 내놓기만 하면 팔렸거든요. 서울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긴 합니다만, 빌라를 대충 뚝딱 지어도 언제든 분양이 쉽게 이뤄졌던 것 같이 말입니다. 서울에 공간은 항상 부족했습니다. 공업화, 산업화로 일자리는 계속 서울에서 생겨났고, 농촌에서 서울로 계속해서 사람들이 밀려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공간의 공급은 수요에 견줘 적었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빠르게 올랐던 것은 수요-공급의 법칙 상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었고, 2007~2008년에는 세계 금융위기를 겪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서울에서조차 빈 건물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개발시대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요. 새로운 표준, ‘뉴 노멀’은 바로 저성장입니다. 이 저성장 시대가 이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 놓았을까요?
저성장으로 인해 세상이 두려워졌습니다. 인생을 통틀어 쏟아부은 자산인 주택을 엉덩이 밑에 깔고 앉아 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부담스러웠습니다. 곧 은퇴를 앞두고 있는데, 무려 5억~10억원에 달하는 부동산을 소비재로만 쓰고 살 수 없었습니다. 이 집을 돈이 나오는 생산재로 바꿀 수 없을까요? 이런 고민을 시작한 것입니다.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한국만 이런 고민이 생긴 것은 아닙니다. “세계 금융위기”라 했듯, 세계적인 현상이었습니다. 공간이 공간끼리 경쟁하는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2011년 7월20일, 모건스탠리가 낸 보고서 ‘임차인 사회’가 바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보고서의 간단한 내용은 바로 임차인이 우위에 섰다는 것입니다. 건물 그 자체보다 어떤 임차인을 맞이하느냐에 따라 건물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고, 공간을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중요해진 것입니다.
2008년 미국에서는 에어비앤비라는 공유경제를 대표하는 새로운 상품이 등장합니다. 브라이언 체스키와 조 게비아는 당시 샌프란시스코에서 투룸 월세 아파트에 살고 있었습니다. 경제불황에 물가가 비싼 곳에 살다 보니 매달 월세를 내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집의 일부를 임대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그때 디자인 페스티벌이 열렸고, 매년 열리는 이 행사 때 마다 이 지역의 숙소가 항상 부족했다는 사실을 이 두 젊은이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방에 에어베드를 놓고, 아침을 주며 공유숙박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191개국, 8만1000개 도시의 500만개 가까운 집이 공유되고 있습니다. 10년 만에 3억명이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숙박을 했습니다.
대표적인 공유오피스인 위워크 얘기도 잠깐 해볼까요? 미국 기반의 이 회사는 이미 한국을 장악했습니다. 서울역 앞의 대우빌딩도, 여의도의 HP 빌딩도 이제는 위워크 빌딩이 되었습니다. 이 막강한 장악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앞에서 언급했듯이 원래 오피스 빌딩은 점점 공실률이 높아져 가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위워크라는 부동산 관리업체와 건물을 통으로 장기 계약하면 건물주 입장에서는 공실 우려에서 자유로워 집니다. 위워크는 과감한 투자를 통해 새로운 트렌드를 제대로 잡아냈습니다. 바로 스타트업 시장을 대형 오피스 빌딩으로 끌어들인 것입니다. 젊은 밀레니얼들은 삼성 같은 회사에 들어가도 절반은 그만 두고 창업을 합니다. 정책자금도 스타트업으로 계속 확대되며 흘러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 시장을 빌딩에 끌어들일 방법을 위워크는 찾아냈습니다. 건물 내부 공간을 무수히 쪼개 개인에게 판매하는 방법을 말이지요. 개개인 N분의 1이 모인 임대료 총합은 크게 한 두 곳에 임대하는 것보다 더 컸습니다.
에어비앤비든 위워크든 공간을 활용하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우리는 임차인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