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음성원 Jan 27. 2017

르 코르뷔지에①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를 다시 보다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대해 인문학적 사유로 풀어낸 책 <행복의 건축>을보고 난 뒤, 나는 그 책의 저자인 알랭 드 보통에 대해 무한한 경외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분명 건축의 아웃사이더인 그는 그 어떤 건축가보다 더 명료하게 건축의 아름다움에 대해 글로 표현해 냈으니까. 역시 건축의 외부인일 수밖에 없는 나 역시 그의 글에 매력을 느꼈고, 하나의 롤 모델로 생각해왔다. 그는 복잡한 장식과 거대한 기둥의 배열, 반복되는 비율 등으로 표현되는 고전주의 건축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해냈다.

건축가 Imre Steindl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지은 국회의사당 건물. 알랭 드 보통은 "가장 고귀하고 적절한 건물"이라고 표현했다. 사진=위키미디어커몬스

 알랭 드 보통은 책에서 르 코르뷔지에를 조롱했다. 그의 대표작인 '빌라 사부아'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빌라 사부아는 실용적인 정신을 가진 기계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술적 동기에서 나온 비실용적인 건물이다." "사부아 부부가 처음에 반대를 했음에도, 르 코르뷔지에는 평평한 지붕이 물매가 있는 지붕보다 더 좋다고 고집했다. 아마 기술적이고 경제적인 근거만 들이댔을 것이다. 즉 평평한 지붕이 건축비도 싸게 먹히고, 관리도 용이하고, 여름에도 시원하다고 설득한 것이다. (중략) 그러나 가족이 이사한지 불과 일주일이 안 되어 지붕에서 아들 로제의 침실로 물이 샜다. 그 양이 너무 많아 아이는 가슴에 염증이 생겼고, 이것이 폐렴으로 발전하는 바람에 아이는 샤모니의 요양원에서 1년을 보내야했다."

 그의 혹평은 끊이지 않는다. "모더니즘 건축가들은 내심 아름다움을 염두에 두고 설계를 했으면서, 왜 자신의 작품을 주로 기술적인 맥락에서 정당화했을까?"

 르 코르뷔지에가 탄생시킨 모더니즘은 유독 한국의 서울에서 빛을 발했다. 아마도 모더니즘이 태동하던 시점, 서울로 쏟아져 들어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콘셉트가 바로 모더니즘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수많은 고전주의 건축물이 가득차 있던 유럽과 달리 텅 비어있던 서울 땅, 빠르게 발전하는 수도 서울은 모더니즘이 번성하기에 적절한 토양이었다. 서울은 아파트 단지의 천국이 되었다. 직사각형의 못생긴 매스가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눈을 아프게 했다. 자동차가 득세하던 시절에 필로티의 존재는 자연스럽게 주차의 수요를 충족시켜 줬고, 모더니즘이 만들어낸 건축법은 필로티를 세워 주차공간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되게끔(토지 면적이 넓지 않다면 말이다) 억지하는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건축과 거리가 소통하는 지점을 텅 빈 곳으로 만들어 버렸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과 건축물 안에 있는 사람들 간의 소통을 단절시키고 거리의 매력을 바닥으로 떨어뜨려 버렸다.


 나는 이 두 가지 점 때문에 르 코르뷔지에를 미워하고 싫어했다. 그런데 나는 예술의 전당에서 펼쳐진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들을 보며 생각을 달리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당연한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그 시대에 도시와 건축, 그리고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르 코르뷔지에는 <도시계획>이란 책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했다. "도시는 인간의 활동을 위한 도구다. 도시는 더 이상 이 기능을 제대로 다하지 못하고 있다. 쓸모가 없다."

 너무나 아름답지만, 평범한 인간이 살기에는 부적절한 거대한 규모, 그리고 지나치게 투입되어야 할 비용 등은 코르뷔지에에게 혁신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에게 집이란 "살기 위한 기계"였던 것처럼, 그는 공간을 경제적이고 실용적으로 배열해 거주의 본질에 충실하게 해 어머니를 위한 집, 'Villa Le Lac'을 지었다. 한 건물에서 개인과 공동체의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고, 그것을 세계 최초의 대규모 현대식 아파트인 '유니테 다비타시옹'으로 구현했다. 그리고 빌라 사부아를 통해 '현대 건축의 5원칙'을 정립하기에 이른다. 이전까지의 건축이 '신을 위한 건축'이었으며 권위와 지배를 위한 기계였던 반면, 코르뷔지에의 것은 인간을 건축의 주인공으로 끌어올렸다. "파르테논 신전과 같은 기념비적 건축물만 만들던 건축가가 비로소 살림집을 창조의 대상으로 삼게된 것이다."(예술의전당 전시)

 코르뷔지에와 20년 간 함께 일했던 프랑스 건축가 앙드레 보겐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르 코르뷔지에는 과거의 것들을 깨끗이 지워버리고자 계획하는 사람으로 심각하게 비난 받았다. 이는 그를 비난하는 자들이 그의 계획과 작업을 심도있게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 객관성이 없었다는 점을 말해준다. 그는 과거의 건축물들이 간직한 고유의 아름다움과 정신을 존중했고, 그것들이 보호되기를 원했다. 다만 그 작품들이 단지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보존되기를 바라는 극단적인 보존주의는 반대했을 뿐이다. 애초부터 그의 도시계획은 가치있는 기념물, 거대한 파리 한가운데에 역사적인 모든 것을 보존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건축가 중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의 역사를 가장 폭넓고 깊게 아는 사람이다."

 이제 르 코르뷔지에에 대한 글을 써보려 한다. 편견에 가득 차 있던 내가 다시 반대쪽에서 또 다른 편견에 가득차 있게 될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자연의 치유효과를 건축에 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