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by 조은이

여자가 아내가 되고, 아내가 엄마로 변하는 그 모든 과정은 정해진 공식이 존재하지 않아요. 어떤 대상으로부터 학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대상을 만나든, 어떤 환경에 처해지든, 중요한 것은 어떤 관점으로 무슨 선택을 하느냐 에요.
명희는 남편을 선택하지는 못했지만, 남편의 행태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맞서는 모습을 선택했더라면, 덕수는 달라지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아들 인규에게만큼은 좀 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요? 인규 역시 아내 혜정의 애쓰는 모습 속에 함께하고 견디는 인내를 선택했더라면, 혜정은 포기가 아닌, 생명을 지키는 선택을 했더라면, 민지는 홀로 남겨지지 않았을 텐데요. 홀로 남겨진 외로움을 아는 민지는 힘들게 세상에 나온 생명을 외면하는 선택이 아닌, 품에 안고 외로웠던 자신을 사랑하듯 보살피는 엄마라는 이름을 선택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우리가 새로운 세상 적응기를 잘 견뎌내고, 확장되어 재구성된 우리 영역을 조금씩 일구어 갈 때쯤, 남자 몸에서 나온 머리(두부, head)와 몸통(중부, midpiece) 그리고 꼬리(미부, tail)로 이루어진 수십 개의 무엇인가가 내 속으로 들어왔어요. 치열한 경쟁을 통해 그중 하나가 내 몸속 깊이 자리 잡았어요. 내 몸속에 생명이 잉태되어 내가 ‘엄마’가 될 준비가 시작된 것이죠. 내 육신 전부를 자리 잡은 생명에게 잠시 대여해 준 것 같았어요. 자유로이 움직일 수도 없고, 먹는 것조차 내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어요. 그런 불편함을 견딜 만할 때쯤, 생명의 씨앗은 인간 형태를 갖춘 태아가 돼요. 그때부터는 태아에게 필요한 영양소 공급을 충분하게 넣어 주어야 하고, 엄마, 아빠 목소리를 많이 들려줘서 태아가 안전감을 느낄 수 있도록 친해져야 해요. 남편과 나는 내 뱃속에서 커가는 생명이 반응하고 응답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생명의 신비로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내 몸으로 태아를 지키고 있다면, 남편은 우리를 위해 좀 더 넓은 집을 찾아야 했고, 먹을 것을 더 많이 저축해야 했어요. ‘아빠’라는 이름을 갖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 거죠.


사십 주를 내 몸속에서 자라 난 태아는 이제 좁고 답답한 그곳에서 나오기 위한 용기를 내요. 그럴 때 태아가 잘 나올 수 있도록 엄마인 나는 태아가 안전하게 나올 때까지 견디며 태아의 용기를 뒷받침해 줘야 해요. 온몸 뼈들이 익숙한 자리를 이탈하고, 모든 조직이 약해져 고통을 동반한 고난이 시작되죠. 경험해 보지 않은 죽음은 아닐까! 하는 공포가 엄습해 와도 엄마는 태아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최우선이 돼요. 긴 시간의 고통이 사그라들고,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고, 아기가 내 품에 안겨 대면하는 순간 세상에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었던 공포는 잊히고, 세상에 어떤 언어로도 표현되지 않는 감사와 기쁨에 젖어들어요.

생명의 울음소리는 부드럽고 유연한 긴 터널 끝 빛의 눈 부심이고, 빛 속에 안긴 덩어리는 공기를 마시고, 소리를 듣고, 변화를 느껴요. 그리고 스스로 꼬물꼬물 조물조물 작은 움직임을 시작하죠. 엄마 품에서 익숙한 심장 소리를 찾는 순간 생명은 모든 것을 그 심장에 의지하고 맡겨요. 엄마가 되는 순간은 정말 감격적이라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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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변화와 달라지는 이름은 플라스틱 당신처럼 준비나 대비 없이 이루어지지 않고, 혼자이지 않아요. 변화를 위해 준비하는 과정을 남자와 함께하고, 대비하는 것도 남편과 같이해요. 모든 것이 처음인 것 같지만 생소하지 않고, 고통과 두려움이 동반되지만 무섭지 않아요.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죠.
나는 여러 번 생명의 씨를 받아 심어 키웠고, 고통과 고난의 시간을 통해 여러 생명을 세상에 내어놓았어요. 남편과 나는 남편과 아내라는 이름과 같이 엄마와 아빠라는 이름도 갖게 되었죠.


아침에 눈을 뜨면 남편과 나는 창조주에게 어제와 다른 오늘을 허락하심을 감사하고, 가 보지 않은 오늘을 잘 갈 수 있게 힘과 능력을 달라 기도해요. 남편과 아침 식사 준비를 같이하고, 식사를 마친 남편은 일터로, 큰아이들이 배움터로 나가면, 나는 집 안을 정리하면서 작은 아이들을 먹이고 눈을 맞추고 대답하고 듣는 일을 반복해요. 독박육아를 한다는 억울함으로 남편에게 짜증도 냈지만, 남편이 그런 내 고단함을 알아주고 위로해 줘서 불평은 오래가지 않았죠. 종일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 반응하면서 우리가 살았던, 우리가 돌아갈 곳 완벽한 동산 이야기도 잊지 않고 들려줘요. 큰아이들이 배움터에서 오면, 큰아이들이 작은 아이들과 놀아 주는 사이 나는 남편과 함께할 저녁 먹거리를 준비해 두고 남편을 맞이해요. 남편과 나는 같이 저녁 음식 준비를 하고, 온 가족이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창조주에게 오늘 경험한 일상을 나누어요. 우리는 함께 식탁 정리를 하고 아이들을 씻기고, 아이들의 학습도 도와요. 그리고 아이들이 잠든 늦은 밤, 우리는 우리만의 깊은 사랑의 대화를 시작하죠. 서로의 수고와 희생을 다독여 안아주고 위로하는 사랑을 나누고 잠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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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고단하고 힘겨웠지만, 어떤 존재가 생명을 얻어 숨을 쉬고 자라고 커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플라스틱처럼 단숨에 형태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서서히 변해 가는 생명의 변화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죠.

아이들이 엄마 아빠라고 불러 준 첫 순간의 감격을, 아이들이 첫걸음을 떼던 때의 용기를, 아이들이 집 밖의 세상 배움터로의 첫 모험을 내딛는 뒷모습을,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성 친구를 말하며 얼굴이 붉어지고, 첫 생리를 시작한 딸아이의 수줍은 미소, 친구와 다투고 가슴앓이하며 커 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는 자신의 성장 과정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지만, 아이들을 통해 생명이 성숙되어 깊어지고 자라나는 것을 볼 수 있었죠. 우리가 완벽한 세상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생명의 변화와 신비를 경험하지 못했을 거예요.


‘여자’라는 이름에서 변화되고 달라져 ‘아내’, ‘엄마’라는 이름으로 재구성된 세상에서 ‘아내’, ‘엄마’라는 이름은 사랑의 결정체에서 나온 생명의 씨앗을 보호하고, 생명을 키우는 밑거름이라 할 수 있어요.

생명을 얻어 살아가는 존재라면 현재 삶이 어떠하든 생명을 얻어 시작하게 된 이유와 주어진 역할이 있음을 믿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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