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상실의 숲 10화

10. 새 소리 _ 1

by 조은이

주영: 회장, 부목사님 그만두시는 거 맞아?

민철: 교회에서 그렇게 결론 내린 것 같던데, 조만간 말이 있을 거야.

지연: 그럼 우리 청년부는 어떻게 돼?

민철: 부목사님 없다고 청년부가 왜?

주영: 지연이는 목사님 부재로 청년부 분위기를 걱정하고 하는 말이잖아.

민철: 그러니까, 그런 걸 왜 걱정하냐고?

지연: 주영아, 민철이는 원래 저렇잖아. 그만해.

정수: 부목사님 그만두시면 청년부 전체 분위가 예전 같지는 않을 거야.

그럴수록 우리 리더들이 각자 자기 셀에 있는 청년들 세심하게 챙기고,

힘든 일 있으면 같이 공유하고 기도하도록 하자.

주영: 역시 정수 오빠야. 민철아, 네 말투가 정수 오빠와 좀 다르다는 생각 들지 않니?

민철: 너나 잘해.

정수: 친구끼리 왜들 그래...


청년부 회장 민철은 부목사 은석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은석이 부임했을 때, 말수가 적은 담임 목사 김동호와는 다르게, 위트 있는 언행으로 어떤 사소한 문제도 말로 그치지 않고 해결해 보려는 노력과 열정에 민철도 덩달아 가슴이 뜨거워지곤 했었다. 무엇보다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살아온 그의 고백이 담긴 설교를 들을 때마다, 결핍을 모르고 자라온 자신의 환경과 삶이 작고 부끄럽기까지 했었다. 민철은 은석과의 교제를 통해 마음속으로 가난한 나라로의 선교를 계획하고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런 은석이, 어렵고 힘들게 사는 청년들은 보이지 않게 외면하고, 교회 주류층 자녀들과 주도적 역할을 하는 청년들에게만 보여주기식 친절과 관심을 표현하는 것을 보고 은석에 대한 불신이 싹트고 있었다. 하지만, 민철은 기도할 때마다 은석을 의심하고 있는 자신을 자책했었다. 의심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은석은 민철을 포함해서 부모가 함께 교회 출석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자신이 종교 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부모님을 설득해 달라 회유했고, 민철은 그런 은석에게 깊이 실망하고 말았다. 혜란과의 소문은 목사라는 가면이 벗겨진 것 같은 허탈감에 한참 동안 마음이 불편하고 어려웠다. 은석은 민철에게 여러 번 변명과 설명을 반복했지만, 민철은 그의 변명과 설명이 장황할수록 자기 개인 출세를 위해 성전을,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는 위장술에 능한 위선자로 보일 뿐이었다.


혜원: 얘들아, 부목사님 하고 혜란이 소문 들었어?

주영: 응 나도 들었어, 지연이 너 교회 앞에서 목사님 하고 혜란이 봤다고 했지?

지연: 응, 지난 금요일 저녁 우리 청년 예배 끝나고 시내 가서 커피 마셨잖아?

그날 집에 들어오는 길에 교회 앞에 그 시간까지 혜란이 차가 있더라고,

트램 뒤를 따라 서행하면서 봤는데, 차 안에 목사님이 타고 있길래

처음에는 혜란이가 목사님에게 볼일이 있나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그래도 그렇지 그 밤중에 차 안에 단둘만 있는 거 보니까 오해받을 상황이다 싶더라고.

그날 내가 주영이 너하고 통화하면서도 말했잖아, 느낌이 좀 그렇다고…

주영: 그래 그날 나도 지연이 전화받고 좀 이상하다 싶었어. 혜원이 너는 어떻게 알았어?

혜원: 우리 집에 교회 어른들 몇 분 오셔서, 엄마 아빠하고 이야기 나누는 거 얼핏 들었어.

주영: 그럼 목사님 혜란이 때문에 그만두시는 거야?

혜원: 꼭 혜란이 때문인 것 같지는 않은데, 이런저런 상황이 좀 있나 봐.

현석: 혜란이가 목사님을 곤욕스럽게 한 일이 몇 가지 있는 모양이야.

주영: 오빠도 보거나 들은 말 있어?

민철: 그만들 하지.

현석: 그래 회장 말이 맞아, 우리가 할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

주영: 오빠도 같이 듣고, 하고 있었잖아.

지연: 근데, 오늘 왜 모이자고 한 거야?

민철: 우리 교회 새로 나오는 삼십 대 누나 한 분이 계시는데, 교회는 처음 나오시는 분 이래.

새벽기도도 나오시고, 주일 예배도 꾸준히 나오고 있어서, 아직 미혼이라,

청년부로 들어와야 할 것 같은데, 누나를 어느 셀에 편성하면 좋을까?


인숙은 선희를 따라 처음 새벽기도 나간 날부터 매일 새벽 예배당에 앉아 있었다.

어둠의 기세가 점점 좁혀오는 것 같은 공포가 호흡 곤란으로 이어졌고, 어둠을 뛰쳐나와 이슬이 내려앉는 찬 공기를 들이마실 때, 인숙을 향해 달려오는 선희 자동차에 오를 수밖에 없는, 선희 픽업은 일요일 날도 빠지지 않았고, 인숙은 일요일 예배에 나가 앉아 있었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 강대상에서는 어린 청년들 대여섯 명이 찬양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고, 인숙은 보육원에서 후원의 밤이라는 제목 플래카드가 떠 올랐다.




알록달록한 플래카드가 붙어 있는 보육원 강당에서 열 살 인숙은 관리 교사의 학대를 견디고 있었다.

“너 왜 안 하는 거야?”

“하기 싫어요.”

“왜?”

“그냥요.”

“이게 진짜 독방에서 며칠 굶어 볼래?”

보육원을 후원하는 후원자들을 초대해서 공연할 계획으로 보육원 아이들은 저녁을 먹고 강당에 모여 연습하고 있었다. 인숙은 같은 또래 친구들과 합창 연습을 하지 않겠다고 관리 교사에게 대들었고, 관리 교사에게 머리를 쥐어박히고, 따귀를 얻어맞으며 모욕적인 말을 들어야 했었다.




강대상 위에 서서 예쁜 표정과 몸짓으로 찬양을 진심으로 부르는 청년들과 이 십여 년 전 보육원 강당 무대에서 관리 교사들이 원하는 표정과 율동을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던 아이들 모습이 오버 랩 되고 있었다.

보육원에 사는 아이들은 관리 교사들의 학대와 부당함을 피해 보고자 복종하고 있었고, 후원자들의 표정에 따라 먹을 것과 입을 것, 때로는 그들 중 누군가의 눈에 들어 신분이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로 초라한 눈물을 숨긴 어릿광대 역할에 충실했었다. 인숙은 궁금했다. 교회 강대상 위 청년들은 무엇 때문에 보이지 않는 존재의 어릿광대가 되어 저리도 자기를 왜곡시키고 있는지…





인숙은 한 시간여의 예배가 끝나고 점심이 준비된 식당으로 이동했다. 선희가 안내하는 테이블에 앉아 있을 때, 비빔밥 그릇을 들고 인숙을 향해 걸어오는 청년들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지난주처럼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지연: 안녕하세요. 인숙 언니 시죠?

정수: 안녕하세요. 누나 저는 김정수라고 해요.

지연: 아, 저는 이지연이에요. 언니가 나이는 좀 많지만, 우리 청년부에서 같이 교제하면 좋을 것 같아 서요.

정수: 같이 뭘 해야 하는 건 아니고, 저희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돕고,

누나시니까 저희에게 인생 선배로서 좋은 말씀도 해 주시면서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주영: 지연아, 내 밥은?

지연: 여기 가지고 왔어, 이리 와서 앉아. 주영아 여기 인숙 언니 셔.

주영: 아, 네. 안녕하세요. 허주영이에요.

정수: 누나 이 비빔밥 깨끗한 숟가락으로 비볐어요. 이것 드세요.

처음이라 좀 불편하고, 어색하시죠. 우리 교회 비빔밥은 진짜 맛있어요.

한국 비빔밥 먹고 싶어서 우리 교회 오는 청년들 꽤 많아요. 드셔 보세요.


인숙은 정수가 비벼준 비빔밥을 기대하지 않고 입안으로 넣었다. 오랜만에 먹는 한국 음식이라서 인지 정수 말 대로 비빔밥은 인숙 생에서 가장 맛있는 비빔밥으로 기억될 것 같았다. 이제 갓 스물을 넘은 청년들이 테이블로 모여 앉았고 그들의 시끄러운 대화는 인숙의 후회를 잠시 잊게 했다.

주영: 나 집 구해야 해, 우리 집 아줌마네가 시드니로 이사 가신대.

지연: 언제까지 방 비워야 해?

주영: 한 달 뒤.

지연: 너도 나처럼 아파트 얻어서 독립해야겠네.

주영: 야, 나는 지금까지 유학 생활하면서 혼자 집 얻어서 살아 본 적이 없어서...

엄마도 혼자 독립해서 사는 건 안 된대, 다른 홈스테이 알아보래.

혜원: 다 큰 대학생을 누가 홈스테이로 받아 주냐?

지금 네가 사는 집 아줌마처럼 아저씨가 사업 때문에 시드니에 계시니까, 그 집에 살 수 있었지…

정수: 청년들끼리 사는 셰어하우스 방 구해서 살면 안 돼? 네가 밥 해 먹고 다닐 수 있잖아.

주영: 오빠, 셰어생들만 사는 집은 엄청 지저분해, 오빠는 남자니까…

정수: 그럼, 우리 교회 집사님들 댁으로 한번 알아보자.

주영: 안돼 오빠, 같은 교회 다니는 어른들 집에 살면서 이런저런 간섭받기 싫어.

현석: 까다롭기는, 우리 집사님들이 얼마나 좋으신데...

주영: 근데, 그렇게 좋으면서 오빠는 왜 이 집 저 집에서 쫓겨나냐?

현석: 쫓겨난 게 아니라 다 사정이 있었지.

주영: 오빠는 집사님들이 사정 설명하니까, 진짜 그 사정으로 나가 달라고 하시는 것 같지?

현석: 주영아 그만하자, 너는 내가 진심 어린 말을 하면 항상 발끈하더라.

주영: 오빠는 오빠 같지 않고, 나이 먹은 어린애 같다니까.

지연: 부모님에게 허락받고, 나처럼 작은 아파트 알아봐.

너 졸업하고 영주권 신청하고 몇 년은 더 대학원 공부해야 하잖아.


인숙은 자신이 사는 집에 방 하나가 비어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들 대화 속으로 끼어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선희가 나타났다.

“밥 맛있지?”

“네, 맛있게 먹었어요.”

“식사 시간이 끝나면 어른들은 따로 모임을 하거든. 청년들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네.”

“집사님, 인숙 언니 제가 댁에 모셔다 드릴게요. 신경 쓰지 마시고 어른들 모임 하세요. 언니, 제가 모셔다 드려도 괜찮죠?” 지연이 선희을 바라보고 말했다.

“아, 그럼 지연 자매에게 인숙 씨 좀 부탁해도 될까?”

“네 집사님,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부탁해요. 인숙 씨 나중에 전화할게.”


인숙: 트램 타고 집에 가면 돼요.

정수: 누나, 일요일은 트램이 자주 없어요. 괜찮으시면 청년들도 셀이 나누어져 있어서 따로 셀 모임을 해요.

처음이라 좀 그러시면, 지연이가 차가 있으니까 잠깐 모셔다 드리고 오면 되고요.

인숙: 내가 한국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 분위기가 그리 편치 않네요. 그냥 갈게요.

지연: 그럼 언니, 제가 지금 태워다 드릴게요.

인숙: 그래도 괜찮겠어요?

지연: 네, 괜찮아요.


집까지 태워주는 수고를 감당해 준 지연에게 인숙은 자기 집에 방이 하나 비어 있다고 말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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