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상실의 숲 11화

11. 그린란드

by 조은이

정해 놓은 시간 초침 소리가 어둠 덩어리를 몰고 와서 짓누르고, 호흡을 잃어가는 혼미함이 덮쳐오는 순간,

인숙은 밖으로 나와 새벽 냉기를 먹고 마신다. 선희 자동차 불빛은 어둠 덩어리를 밀어내는 잠시의 공간이었고, 예배당에서도 인숙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고 있을 뿐이었다.


“인숙 씨 요즘 무슨 기도해? 내게 말할 수 있으면 말해 줘 같이 기도해 줄게.”

선희는 한 달여 가까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기 자동차를 기다리는 인숙에게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신앙이 들어가고 있음을 확신했다.

“특별한 기도 같은 것은 안 해요. 그냥 앉아 있다, 오는 거예요.”

“그래도, 앉아 있다 보면 계속 떠 올려지는 생각 없어?”

“글쎄요”


인숙은 선희 물음에 차 창밖 움직임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어마 어마한 세상을 만들었다는 신이, 먼지 털만한 나 같은 존재의 고립감을 알고 있을까? 한 개인의 작은 꿈틀거림과 폭 좁은 걸음과는 관계없이 세상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나아갔다. 가족도 환경도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는, 인생의 출발선이 다른 현실에서 숨 고를 틈 없이 뛰어나가 뛰고 또 뛰다 넘어져 돌아보니, 출발선도 온 길도 없어져 버린, 어딘지 알 수 없는 어둠에 갇혀 있었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사실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고, 세상의 모든 움직임은 내 어둠 안에서만 멈춰 고요하다. 그리고 죽음의 초침 소리만이 정확하게 들려온다. 처음부터 내게 세상 속 일원으로 누리고 살 수 있는 자격 같은 것은 있었을까? 인숙은 동호의 새벽 말씀이 떠올랐다.

“유럽 역사 속 바이킹이 발견한 그린란드는 사실 춥고 열악한 환경의 땅이었다고 합니다. 다른 바이킹의 이주를 설득하기 위해 초록의 땅 그린란드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린란드(Greenland)라고 하니까 나무와 풀이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그린란드로 온 사람들은 얼음으로 뒤덮인 땅을 보고 실망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원죄(original sin, 原罪)로 인하여 모두 영적 죄인이고, 광야와 같은 삶 속에서 알고도, 모르고도 짓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 혹시 지금 삶의 광야에 홀로 있는 것 같습니까? 해결되지 않는 현실적 문제들로, 돌이킬 수 없는 죄로 괴로워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그린란드라 속이는 광고가 아닙니다. 천국 가는 길을 알려 주는 방향키입니다.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십시오. 눈앞에 하나님 나라 천국이 펼쳐질 것입니다.”


거짓과 왜곡이 난무하는 그린란드와 같은 세상에서 성경이 천국을 말해 준다고? 인숙은 묻고 있었다.
부모의 부당한 학대로 보호받지 못했던 어린 인숙이 보육원으로 보내질 때, 공장으로 보내질 때, 신에게 간절하게 기도했다면… 인숙은 번득 떠올랐다. 보육원으로 보내지기 전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숨어서, 동생과 숨죽이고 매일 기도했었다.

“하나님, 오늘 밤 자고 일어나면, 아버지만 세상에 살게 하고, 동생과 저는 죽어 천국에 있게 해 주세요.”


아버지는 보육원을 그린란드라고 했다. 버려진 존재들의 재활용 센터 같은 보육원은 굴욕적이고 무서웠다. 기독교 단체가 운영하는 보육원에는 예배당이 있었다. 인숙은 그곳에 몰래 들어가 마룻바닥에 초록색 방석을 깔고 동생과 두 손을 모으고, 두 눈을 감고 기도라는 것을 했었다. 무엇을 기도했는지 기억은 없지만, 아마도 그곳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했을 것이다. 일요일에 한 번씩 방문하는 목사는 보육원 아이들에게 말했었다. "길거리 거지로 살지 않고, 보육원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낳아준 육신의 부모가 있다는 것은 동일한데, 부모와 사는 아이들은 당연한 권리를 부여받은 듯 감사를 강요받지 않는데, 분리된 존재로 보육원에서 사는 아이들은 무잡이한 학대를 당해도 시설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인지?


그린란드라 생각했던 공장, 열악한 환경과 임금으로 어린 근로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던 공장 근로자로 고단한 일상을 견딜 때도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듯 간절하게 호소했었다. 빨리 어른이 되어 어디든 마음대로 떠나게 해 달라 빌고 또 빌었었다. 부처도, 조상도 아닌 하나님에게…


‘해리성 기억장애’ 진단을 받고, 문득문득 신을 원망했었다. 도대체 멈출 줄 모르는 절망적인 현실의 끝은 어디냐고? 정말 신이 있다면, 신에게 인간이란 생명은 어떤 계획에서 만들어 놓은 것이냐고? 신의 계획에 맞춰 대량 생산된 생명으로 신이 정해 준 운명과 역할을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아무리 발버둥 치고 거부해도 신의 계획에 따라 주어진 역할이라면, 그 역할이 예수를 파는 유다라 하더라도 신이 허락하지 않으면 유다는 예수를 판자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인가? 신의 계획에 따라 최초부터 천하고 귀한 존재로 분리되어, 신이 만들어 놓은 원리 속에 존재하는 세상. 인숙은 그런 신을 인정하는 순간, 끝없는 절망과 보이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허우적거리며 견디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고 정해진 역할인 것 같아 공포스러웠다. 스스로 그 공포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을 뿐이다.


“인숙 씨,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집에 다 왔어.”

인숙은 선희 목소리에 생각 속에서 급히 빠져나왔다.

“아, 네 언니 고마워요.”

떠나는 선희 차 뒤를 바라보며 정리하지 못한 생각으로 다시 들어왔다.
인숙은 세상을 기억하는 순간부터 잠시도 안전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불우한 가정환경은 어린 인숙을 항상 긴장과 불안 속에 떨게 했고, 보육원은 세상으로부터의 동정심으로 살아 있어야 하는 수치심을 경험하게 했었다. 공장은 자기 잘못이 아닌 가난의 죗값을 자신이 치르고 있는 것 같은 억울함으로 눈물에 잠겨 벗어나는 법을 잊어버렸었다. 그 세상 속에서 인숙은 한순간도 신을 찾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다급하고 무서울 때, 힘들고 지칠 때, 아프고 서러울 때…. 부처님, 천주님, 엄마….라고 불러 본 적이 없는, 어린 인숙은 오로지 하나님에게 도움을 요청했었다. 아버지로부터 도망칠 때,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모험을 시작하면서 척박한 그린란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살아왔었다.
‘천국’은 인간이 나약해질 때 회피하고 싶은 명분에서 만들어 낸 허상일 뿐이다. 책임지고 싶지 않을 때, 책임질 자신이 없을 때, 도망가고 싶은 장소를 그럴 사 한 단어로 정의 내려놓은, 자기변명을 늘어놓고 합리화시킬 수 있는 합법화된 마음의 성읍. 인숙은 자신이 대면하고 있는 실패한 자기 인생에 대해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원망하고 책임을 떠넘기고 싶지 않았다.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은 자기 잘못이 아니지만, 결과가 실패인 것은 어찌 되었든 자기 실패다. 인숙은 씁쓸한 허탈감으로 집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일주일 전 인숙 옆 방으로 이사 온 주영이 운동복 차림으로 아침 인사를 하며 나왔다.

주영: 언니, 좋은 아침이에요. 새벽 기도 다녀오세요?

인숙: 응, 운동 가려고?

주영: 네, 저는 이렇게 운동 열심히 하는데, 왜 살이 안 빠지는지 모르겠어요.

인숙: 네가 무슨 살이 있어, 아직 젖살이 있어서 통통한 정도지, 예쁘기만 한데...

주영: 언니는 나만 보면 예쁘다는 말 말고는 할 말이 없죠?


주영이 예쁘다는 말은 인숙의 진심이었다. 하얀 피부에 이목구비가 또렷한 만큼이나 자기표현도 분명한, 항상 웃는 얼굴과 생기발랄한 주영을 보면 예쁘게 자랐구나 싶은 생각이 들곤 했다.

주영이 이사 온 날 밤, 주영의 이사를 도와준 청년들은 가벼운 삼겹살 파티를 하고 돌아갔고, 지연과 혜원은 주영의 낯선 집 방 첫날밤을 함께 하겠다며 남았었다. 인숙은 어린 그들의 귀여운 의리를 보며 어느 해 겨울 수능을 끝낸 삼수생들과의 하룻밤 여행을 떠 올려 들려주었다.

인숙이 대학을 졸업하고 주임 교사로 자리를 잡은 첫해, 수능 시험을 끝낸 삼수생 세 녀석이 인숙에게 술을 사 달라고 했었다. 인숙과 나이 차이라고 해봤자 두어 살 밖에 차이 나지 않는 그들은 인숙을 교사로 여기기보다는 자기 또래라 착각할 때가 종종 있었다.

“샘, 수능 끝났는데, 우리 술 사주세요.”

“학원 강사가 무슨 돈이 있다고 술을 사 달래? 일찍들 들어가.”

“샘처럼 실패 없이 대학 간 모범생은 삼수생들의 고달픈 현실을 모르시는구나. 오늘 같은 날 제대로 못 놀면 수능 결과 나올 때까지 여기저기 눈치 보느라 숨소리도 제대로 못 낸다니까요. 샘 같이 놀아요.”

그날 인숙은 그들과 술을 마시고, 청량리역에서 마지막 기차를 타고 대성리로 여행을 갔었다. 그날 기차 안에는 인숙의 일행뿐 아니라 수능을 끝낸 충동적 여행자가 많았었다. 대성리에 내렸을 때도 동질감이 형성되어 같이 온 일행과 관계없이 어우러져 시대를 한탄하며 술잔을 기울이던 그들을 인숙은 한없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었다. 그들처럼 단 하루만이라도 흐트러지고 널브러져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었다. 무엇이든 어떤 말이든…


주영: 언니, 그 삼수생들 그 해는 대학 갔어요?

인숙: 두 녀석은 경기도권 대학에 예비를 받아서 나중에 합격했고, 한 녀석은 뉴질랜드로 유학 갔지.

수능 점수도 좋았고 실기도 참 잘했는데, 이상하게 서울권 대학에 안 되더라고…

사수는 못 하겠고, 좋은 성적을 받고 지방대 가기는 자존심 상해하더니, 유학을 결정하더라고…

지연: 저도 뉴질랜드에서 고등학교 마치고, 대학을 멜버른으로 왔어요.

인숙: 지연이는 왜 그렇게 어린 나이에 유학을 결정했어?

지연: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온 것 같아요.
아빠가 스포츠용품 사업을 하시면서 저를 아들처럼 키웠거든요.

어릴 때부터 안 해 본 스포츠가 없었으니까요. 저도 좋아했고요.

뉴질랜드에 수상 스포츠 즐기려고 자주 왔다 갔다 하다, 중학교 졸업할 때쯤

아빠가 한국 입시 전쟁에서 고생하지 말고, 뉴질랜드에서 공부하겠냐고 묻길래, 그러겠다고 했죠.

유학원에서 정해 주는 홈스테이 집에서 고등학교 다녔어요. 정말 어이없는 짓 많이 했어요.

홈스테이집 밥이 이상해서 매일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이것저것 사 먹고,

학교 끝나면 한국 유학생 친구들 몇 명 모아 택시 불러서

시내 가서 돌아다니면서 놀다 늦은 저녁에야 집에 들어갔다니까요.

겁도 없었고, 돈을 엄청 쓰고 다닌 거죠. 부모님은 제가 첫 자식이라 많이 믿어 주셨고,

유학도 처음 보냈기 때문에 제가 달라는 대로 돈은 보내 주셨거든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운전면허증 따자마자 차 사 달라고 고집부렸는데…

아빠가 차 운전은 절대 안 된다고 했지만, 엄마에게 조르고 졸라서 엄마가 아빠 몰래 돈 보내줬었어요.

그때서부터 차를 몰기 시작해서 저 혼자되는 대로 운전을 막 하고 다녀서 운전 습관이 엉망이에요.

제가 대학을 멜버른으로 오면서 엄마가 같이 와서 아파트도 얻어주고,

장기간 지내면서 제가 쓸데없는 곳에 돈을 펑펑 쓰고 다닌 사실을 알게 된 거죠.

그래서 요즘은 엄마가 학비하고 꼭 필요한 생활비만 보내 줘요.

나머지는 제가 과외 아르바이트해서 벌어서 써야 해요. 좋은 시절 다 갔죠.

혜원: 맞아요. 옛날 지연이 별명이 돌아다니는 중소기업이었다니까요.

인숙: 별명이 뭐가 그래?

혜원: 유지비가 비싼 유럽 차 몰고 다니고,

지연이가 좀 부티는 안나 보여도 지연이 입고, 들고 다니는 것들이 대부분 명품이거든요.

돈 씀씀이가 학생 같아 보이지 않으니까, 준재벌 집 딸쯤 되는 줄 알고, 우리끼리 그렇게 불렀죠.

저는 초등학교 입학하기도 전에 아버지 회사 때문에 이곳에 와서 살기 시작해서,

지연이 같은 유학생들 보면 정말 부러운 게 한둘이 아니었다니까요.

인숙: 왜?

혜원: 초등학교 다니면서부터 아빠 구두라도 닦아야 용돈을 받을 수 있었거든요.

중학교 때부터 베이비시터나, 푸드코트에서 알바를 얼마나 많이 했는데요.

지금도 저는 쇼핑센터 옷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어요.

인숙: ......

혜원: 커서 생각해 보니까 우리 집은 그리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항상 우리 집에는 방 한 칸 정도 셰어생이나 홈스테이 학생이 있었거든요.

언니와 저는 언제나 방을 같이 섰고요. 우리가 불평이라도 하면,

엄마는 그런 학생 한두 명 하숙이라도 해야 살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

지금은 부모님이 집을 사서 이사도 안 다니고, 제 방도 있지만,

아직도 가끔 이민 와서 처음 학교 갔던 날 두려움이 떠 오른 곤 해요

지연: 학교 가는 게 무서웠어?

혜원: 비행기 타고 낯선 나라 환경에 와서 여섯 살 꼬맹이가

다른 언어를 쓰는 학교에 가서 혼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봐 얼마나 무섭겠냐?

아침마다 학교 가기 싫다고 떼를 쓰는 나를 아빠가 달래고 혼내 가면서 억지로 보냈는데,

몇 달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니까…

하는 수 없이 엄마가 한국 대학생 언니를 한 명 찾아서 영어 과외를 시켜줬는데,

영어를 조금 알게 되면서 학교에 적응하기 시작했지.

지금은 한국어를 많이 잊어버리고, 영어가 편하고 익숙하게 됐지만,

요즘은 오히려 부모님과 대화할 때 한국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생기는 오해가 많아.

인숙 언니, 저 같은 일 점 오 세대들은 여러 가지 상황 앞에서 혼란스러울 때가 많아요.

부모님은 선택해서 온 이민이지만, 우리는 그냥 이곳에 놓이게 되어 버린 거죠.

여기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인종이 다른 이민자고, 커갈수록 한국 정서는 잊어버리고 불편해지는 거죠.

인숙: 아, 그렇겠다. 정말…

지연: 주영이는 춤바람 나서 오게 됐어요.

인숙: 춤바람?

주영: 어릴 때부터 춤추는 걸 너무 좋아했는데,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친구들과 연예인 쫓아다니다가 급기야 백댄서가 되겠다고 선언을 했거든요.

지연: 주영이 아빠가 내과 의사시고, 엄마는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이셨다니까요.

주영: 집안이 발칵 뒤집힌 거죠. 엄마하고 크게 싸우고 몇 달 동안 말도 안 하고 지냈어요.

그러다 겨울방학 때 아빠가 미국에 세미나 참석차 가게 되었는데, 저를 데리고 가셨고,

돌아오면서 유학 가서 공부해 보면 어떻겠냐고 하셨어요.

그때는 반항 비슷하게 그러겠다고 했죠. 처음에는 미국으로 가려고 했는데,

아빠 친구 딸이 멜버른에 안전한 사립학교에 있다고 해서 여기 오게 된 거예요.

한국 나이로 열세 살 때 사립학교 기숙사에서 지내기 시작해서

학교에서 권해 주는 호주인 가정에서 홈스테이도 했었어요.

인숙: 후회한 적 없어?

주영: 사실은 멜버른에 처음 올 때 엄마와 같이 왔었거든요.

계속 엄마와 감정이 안 좋은 상태로 일주일 정도 같이 지냈는데,

엄마 가기 전날 엄마와 또 다툼이 있었어요.

엄마 또래 유학원 직원 아줌마는 영어를 잘하는데,

학교 선생님이 영어도 제대로 못 하냐고 엄마 속을 긁었죠. 결국 엄마가 우셨어요.

그다음 날 새벽에 공항 가는데 제가 같이 안 갔어요.

책상 위에 엄마가 편지를 써 놓고 갔는데, 그 편지 읽는 순간 후회했어요.

당장 공항 가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니까요.

인숙: 편지 내용 기억나?

주영: 그럼요, 아직 보관하고 있어요. 엄마가 영어를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고,

제가 여기서 공부 열심히 할 때 엄마도 영어 공부 열심히 해서

다음에는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돼 있겠다고… 뭐 대충 그런 내용이었어요.

편지 읽으면서 엄청 울었어요.

인숙: 그런데도 돌아가지 않고, 지금까지 잘해 왔네….

주영: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봤다니까요.

홈스테이 집에서 곰팡이 핀 빵을 먹으라고 주는데,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그래도 방학 때마다 한국 가서 친구들 만나 보면 다들 저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여기서 지내다 보니까 한국 입시 현실이 감당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요.

늘 가족이 그리운데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아요.

인숙: 한국보다 여기서 공부하는 게 좀 더 수월해?

지연: 에이~ 그건 절대 아니에요. 여기서 대학 들어가기는 한국보다 쉽지만,

대학 졸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요.

혜원: 대학에서 공부하는 과목 하나하나 패스하는 게 학기마다 얼마나 어려운데요.

주영: 입학생이 100명이면, 졸업은 20명에서 30명 정도밖에 없다고 보시면 돼요.

그만큼 공부가 어려워서 중간에 진로를 바꾸거나 포기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후회 많이 했는데, 엄마한테 포기하고 돌아가고 싶다는 말은 못 하겠더라고요.

인숙: 그래도 다들 공부를 잘했나 보구나, 지금 졸업반이지?

혜원: 우리 진짜 한 학기도 실패하지 않고, 휴학도 안 하고….

지연: 작년에 인종차별하는 백인 교수가 학점을 제대로 안 줘서 교수 찾아가서 적극적으로 따졌는데,

다행히 교수가 학점을 정정해 줬어요. 그때 학점 못 받았으면 휴학할 생각이었어.

주영: 나는 과목 하나 놓친 게 있어서 졸업이 반 학기 늦을 거야.

혜원: 나는 전공 학점을 많이 받아 놔서 졸업을 좀 빨리할지도 몰라.

인숙: 졸업하고 계획들은 있어?

지연: 저는 학교 선생님을 할 거라서 대학원 공부를 좀 더 해야 해요.

대학 졸업으로는 초등학교 학년까지만 가르칠 수 있어서, 대학원 나오면 범위가 넓어지거든요.

주영: 저도 대학원까지는 여기서 다닐 것 같아요.

혜원: 저는 졸업하고 지금 아르바이트하는 의류 회사에 정식으로 이력서 내 보려고요.

인숙: 다들 기특하다.

주영: 저희는 언니가 부러워요. 언니 나이쯤 돼서 재충전을 위해 휴가를 가질 수 있다는 게 멋져 보여요.

지연: 주영아 너 춤춰봐. 언니, 주영이 춤 진짜 잘 춰요.


주영은 지연의 주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시끄러운 음악을 틀자, 단숨에 좁은 거실을 무대 삼아 현란한 몸짓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탄력 있는 통통한 몸놀림은 정말이지 백댄서가 되었더라도 주영은 많은 매력을 발산하며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숙함을 채워주는 부모가 있고, 부족함을 용서하고 다시 기회를 주는 부모, 틀린 것을 깨닫고 옮은 것을 찾아갈 수 있는 사랑을 보여주고 말해 주는 부모를 가진 아이들이었다. 이런 아이들에게 실패와 좌절이 두려울까? 실패하면 가족의 울타리에서 잠깐 쉼을 얻으면 되고, 좌절하는 순간이 오면 다른 도전을 위해 잠시 울타리 속에서 충전하면 된다.
인숙은 자신이 왜 더 이상 일어설 수 없고, 나아갈 수 없는지, 또렷하게 정립(正立) 되어 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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