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상실의 숲 09화

9. 마른풀 책갈피

by 조은이

방 안 공기가 제법 싸늘하다.

인숙은 이른 새벽에 눈을 떠 시간을 확인하고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침잠이 많아 오후에 출근하는 학원 강사라는 직업을 잘한 선택이라고 여길 때도 있었다.

입시 막판에는 수업 타임이 많아 시간에 쫓겨 늘 잠이 부족했고, 끼니보다 잠자는 것에 시간을 할애하는 습관도 있었다. 이곳에서는 한 번도 늦잠을 자는 날이 없다. 깊은 잠을 청하지 못하면서도 새벽 4시를 넘기지 못하고 일어나, 침대에 오도카니 앉아 어두침침한 방안 구석구석 이곳저곳을 반복해서 볼뿐, 그냥 가만히 있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미술학원 구석 잠을 자고, 독서실과 고시원을 전전하다, 보증금 이백만 원에 월세 십오만 원 지하방을 얻어, 곰팡내로 축축한 텅 빈 방 안에 고단하고 지친 몸을 기대어 누울 때도, 인숙은 자기 내면 깊은 곳 여기저기에 자리하고 있는 희망의 잔재를 찾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었다. 경기도에서 통학하던 친구와 방 두 개 반지하 전세를 얻어 살림을 합쳤을 때, 친구 아버지가 딸을 위해 집 안 곳곳을 쓸고 닦고 찌개와 밑반찬으로 차려 놓은 식탁을 마주했을 때도, 그런 아버지를 둔 친구를 마음으로 잠시 질투만 했을 뿐, 자신에게 주어질 미래의 시간을 상상하는 것으로 충분히 위안이 되었다. 대학 졸업을 할 때도, 입시 미술학원 인기 강사로 많은 돈을 벌었을 때도, 인숙의 이름으로 학원을 개원(開院)할 때도 친구들과 선후배들의 격려와 응원을 받는 것으로 부족함 없는 인생이라 여겼었다. 가족의 울타리가 없는 외로움으로 때때로 향할 곳 없는 표류로 헤맬 때도 있었지만, 혼자서도 충분히 버텨 낼 만한 외로움이고 방황이거니 큰 의미를 두지 않았었다. 더는 찾아낼 희망도 미래의 시간 속 상상도 할 수 없는 때에 인숙은 돌아갈 곳도, 잠시 멈추고 쉴만한 쉼터 같은 곳도 없었다. 갓길 없는 인생의 도로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자신을 이제는 편안한 자유로움으로 보내주고 싶었다.


한나는 ‘멜버른’이라는 도시를 이렇게 말했었다.

“신이 광활한 자연 속에 유럽 도시 하나를 통째로 살며시 옮겨 놓은 곳 같아. 도시를 벗어나면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엄숙함에 작아지는 나를 맞닥뜨리고, 개발이 닿지 않은 자연의 순순함에 겸손해져. 태초에 만들어진 세상 같고, 천국으로 통하는 잠시의 공간 같아. 이곳에서 처음과 끝을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 봤으면 해.”

한나는 끝을 모르는 맑은 바다와 하늘, 숲이 울창한 엽서를 보내오곤 했었다. 인숙은 세상을 버리기 전, 자신에게 마지막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 찾아온 땅 멜버른이었다.


이런저런 장소, 여러 상황에서 사라질 자기를 기억하지 못할 낯선 이들에게 떠 오르는 영어 단어로 스스로에게 거짓 가면을 씌웠다 벗기기를 몇 차례 했었다.
갤러리에서 만난 삼십 대 백인 부부와 갤러리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자기를 화가라고 소개하고 제대로 공부도 하지 않았던 미술사를 주절대며 거만을 떨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인숙에게 그림에 재능이 있다고 화가가 되어 보라 말해 준 적이 있었다. 그때 인숙은 선생님에게 화가가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지를 물었고, 선생님은 화가는 돈은 많이 벌 수 없을 것 같다며 웃었었다. 기차 옆자리에 앉은 중년 부인에게 인숙은 소설가라며 작품 구상을 위한 여행 중이라고 했다. 야간 고등학교에 다닐 때, 근로 청소년 글짓기 공모에 나가서 상을 받은 적이 있었고, 심사위원이었던 대학교수가 자기 책에 인숙의 짧은 글을 실어주기도 했었다. 동네 카페 아르바이트생에게는 부잣집 외동딸로 부모님에게 늦은 반항 중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갑자기 한 친구가 떠 올랐다. 검정고시 학원에서 알게 된 그 친구는 학원 수업이 끝나면 자기를 기다리는 자가용으로 힘없는 걸음을 끌며 인숙에게 손을 흔들 곤 했었다. 어느 날 아침 친구는 인숙에게 수업이 끝나고 인숙이 사는 독서실에 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날 그 아이를 기다리는 자가용은 없었다. 칸칸이 커튼이 처진 독서실 환경을 보고 친구는 이런 곳이 집이냐 물었고, 인숙은 아버지가 무서워서 가출해서 지내는 곳이라고 말해 주었었다. 친구는 인숙을 경양식 레스토랑에 데리고 가서 함박스테이크를 사주었고, 자기 머리에 있는 예쁜 머리핀도 인숙에게 주었다. 택시를 타고 돌아갈 때는 자기 지갑에 있는 현금을 몽땅 꺼내 주고,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고 차에 올랐다. 인숙은 떠나는 차를 보며 택시비가 걱정되었었다. 그날 이후 친구는 학원에 나오지 않았고, 한 참 시간이 지나서야 그 아이의 소문을 들을 수 있었다. 부잣집 외동딸인 그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잠깐, 왜 그 아이는 그런 선택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그제야 들었다. 결핍이라고는 없어 보였던, 그 아이에게도 자기처럼 죽음을 계획할 수밖에 없는 이유 같은 것이 있었다는...


콘과 로라에게는 한국에서 작은 학원을 운영하다, 쉼을 얻기 위해 요양 목적으로 왔다고 한나가 말해 두었었다. 콘과 로라는 그런 인숙에게 헌신적 이리만큼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었다. 인숙이 집에서 쉬는 날이면 콘은 잔디를 깎거나, 자동차 정비 같은, 소음이 발생할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로라는 인숙이 잘 먹는 음식이 있으면 부족함 없이 만들어 주고, 제대로 음식을 못 먹는다 싶을 때는 한국 음식 레시피를 알아 와서 서툰 한국 음식을 내놓곤 했다.

그런데도 인숙은 어둠 속에 혼자 갇혀 올라오지 못하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더 깊은 곳으로 잠기는 것 같았다. 그런 기분을 잠시라도 벗어나고픈 처절함으로 틈날 때마다 찾아오는 선희를 거부하지 않았었다.

선희는 인숙의 기분 같은 것은 헤아리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 교회, 신앙, 성경에 대해 계속 말하고 있었다.

“나는 새벽에 눈 뜨면 하나님이 보고 싶어서 교회 가는 일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언니는 새벽마다 뭘 그렇게 교회 가서 빌고 살아요?”

인숙은 선희가 믿는 신에 대한 관심이 아닌, 사람의 맹목적 믿음이 얼마나 자기 본질을 잃어가게 하고, 왜곡된 존재에 갇히게 하는지 선희를 통해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매일 빌면 하나님이 다 들어주세요?”

“그럼, 들어주시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이 없겠어요? 뭐든 기도만 하면 괜찮으니, 말이에요.”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힘든 일, 불행한 일, 많이 경험하지. 하지만, 그 불행을 주님께서 친히 감당해 주시기 때문에 힘들지만, 웃을 수 있고, 외롭지만, 견딜 수 있는 게 신앙이라고 하던데… 목사님이.”

“그니까, 새벽마다 뭘 빌고 있는데요? 말해 줄 수 있어요? 그리고 듣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죠?”

“그냥 십자가 앞에서 마음속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고 나면, 마음에 평안히 오거든.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증거지.”

“자기 문제를 회피하고 싶어서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를 상상하고 그 존재에게 떠넘기는 무책임한 자기 방어 아닌가요?”

“달라, 새벽기도 같이 가 볼래요?”

“글쎄요.”

“내일 새벽 다섯 시 십오 분쯤 픽업 올게요. 새벽에 와서 없으면 그냥 갈 테니, 부담 갖지 말고…”




으슬으슬 서늘한 새벽 공기 사이로 희미한 불빛이 깜박이며 가까워지고, 인숙 앞에 멈췄다.

“나와 있었네.”

선희 환한 웃음의 의미를 도통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인숙은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자기 육신을 이렇게라도 깨워 보고 싶었다.

“새벽에 일어나는 게 좀 힘들 텐데, 다음부터는 집안에서 기다려. 집 앞에 와서 핸드폰 울려 줄게, 울리면 나와요.”

“여기 와서 새벽잠이 없어서 힘들게 일어나진 않았고요. 새벽공기 냄새가 좋더라고요.”

“근데, 어떻게 나올 생각을 했어? 내가 말은 했지만, 정말 이 새벽에 나와 있을 거라 생각 못 했는데…”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그냥 나온 거예요.”


십여 분 정도를 달려 도착한 교회는 현대식 상가 건물이 많고, 여러 대의 트램이 교차하는 복잡한 육 거리 한쪽, 양쪽 높은 빌딩 사이, 엄숙한 자태의 오래되고 고급스러운 전통 건축물이었다. 교회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동호와 미선이 접혀 있는 의자를 하나씩 홀 한쪽에 펴고 있었다. 새벽에는 오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본당 앞 홀에서 목사님 말씀 잠깐 듣고, 비상등만 켜진 본당으로 들어가서 각자 기도하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선희가 알려 주었다.

“목사님, 지난번에 목사님께서 연락처 주신 자매예요.”

“네, 반갑습니다. 저는 김동호 목사입니다. 이쪽은 제 아내고요.”

“네, 안녕하세요.”

“이 새벽에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저쪽으로 가서 앉으시죠.”

“네”


김동호 부부와 선희, 인숙, 조만석과 박 권사, 윤 장로, 이 집사……

인숙을 포함해 여덟 명 정도가 펴놓은 의자에 앉았다. 김동호의 주도하에 성경 말씀을 찾아 읽고, 교회를 위해, 나라를 위해 여러 가지 형편에 처해 있는 성도들을 위해 몇 분 정도 다 같이 소리 내어 기도했다. 그리고 김동호의 짧은 말씀 해석과 그 말씀이 오늘의 양식이 되길 바란다는 말로 자리를 파하고, 본당으로 각자 기도할 자리를 찾아들어 갔다. 본당 문을 열자, 우측과 좌측 벽 아치형 창문이 규칙적인 간격으로 배열되어, 격자무늬 창에는 여러 색이 혼합된 성화가 담겨 정면에 있는 강대상 중앙에 커다란 십자가를 비추고 있는 것 같았다.

“나 저기 가서 기도하고 나갈 테니, 자기도 여기서 기도해도 되고, 홀에 나가서 기다려도 돼.”

선희는 강대상 아래에 무릎 꿇고 엎드렸고, 인숙은 문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의자에 앉아 선희를 주시했다. 잠시 후 선희는 엎드린 채 훌쩍이기 시작했고, 듬성듬성 각자 자리를 잡고 기도하던 다른 사람들의 인기척이 인숙의 시선을 분산시켰다.
젖은 음성으로 주여, 주여, 주여 라는 말을 반복하는 사람,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 죽여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사람, 알 수 없는 말을 감격적으로 뱉으며 두 손을 십자가를 향해 뻗고 있는 사람, 그저 넋을 놓고 멍하니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
인숙은 충격이었다. 저런 언행으로 현실적 삶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다 믿는, 저들을 무지하다 해야 할지 순수하다 해야 할지…


“교회 오니까 어때?

“……”

인숙은 개인 종교 활동에 대해 평가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행위로 삶의 현실이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서 선택하는 도피 수단 중 하나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선희의 기대 어린 표정을 보며 솔직한 느낌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비논리적인 많은 말을 들을 것 같았고, 그런 말에 논쟁을 시작하려니, 갑자기 피곤이 몰려와 아무 말하지 않았다.


“시간 괜찮으면 우리 집에 가서 아침 먹고 데려다줄게.”

“아니요, 집에 가서 아침 먹고, 준비하고 나가 봐야 해요.”

“돌아오는 일요일에 픽업 갈 테니 교회 같이 갈래요?”

“아니요.”

“그럼 낼 새벽에도 픽업 올게, 픽업 와서 아무도 없으면 혼자 가면 되니까. 새벽에 일어나 지면 나와요.”

“네.”


아침 식사를 하고 로라가 챙겨준 간식을 받아 인숙은 또 어디론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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