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이 넘도록 한 번도 ‘집을 사거나 팔아본 적 없는 사람’으로 살았다.
누군가는 “편하게 살았구나.” 또 누군가는 “어려웠구나.”
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돌이켜보면, 두 말 모두 어느 정도는 맞고 어느 정도는 틀리다.
결혼하고 처음 전셋집을 얻을 때, 시부모님이 함께 나서서 계약을 했다.
전세계약서도 그분들이 보관하셨다.
우리가 아직 어리고 부족해서 챙겨주신다고 생각해 아무렇지 않게 맡겼다.
전세를 옮길 때마다 시부모님의 참여는 너무 ‘당연한 수순’처럼 따라붙었다.
그런데 문제는,
시부모님이 챙긴 것이 전세계약서뿐만 아니라
남편의 인감과 신분증까지였다는 사실이다.
처음엔 신분증이 시댁에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모든 걸 알게 된 건,
아파트 청약이 번번이 떨어지면서였다.
이유를 확인해 보니 남편은 집이 두 채나 있었다.
겉으로 보면 좋은 일이지만, 실상은 시댁에서 남편 명의를 이용해
집을 사고팔며 시세차익까지 챙기고 있었다.
나는 정말 충격이었다.
남편은 결혼 후에도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채,
모든 경제권을 부모님께 맡긴 삶을 살고 있었다.
전세를 옮길 때마다 “도와준다”며 오셔서 계약서를 가져가던 분들이,
남편 이름으로 대출까지 받아 부동산을 사고팔았다니.
나는 그 사실도 모르고
“왜 우리는 무주택자인데 청약이 안 되지?”
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결혼 10년 만에 드디어 우리 집을 샀을 때도
시부모님은 계약서 보관을 당연하다는 듯 요구했다.
그날만큼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는 저희가 보관하겠습니다.”
당황하던 시부모님의 얼굴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남편 명의 대출이 잡히는 일이 잦았다.
불안한 마음에 어느 날 남편에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 안 되겠다.
인감과 신분증, 우리가 갖고 있어야 해.”
이 말 한마디로 큰 다툼이 벌어졌다.
며칠을 싸우고 나서야
남편은 결국 인감과 신분증을 되찾아왔다.
그 일로 시부모님은 몇 달 동안
“왜 네가 그걸 가져가냐”며
협박에 가까운 전화를 했다.
그 기억은 지금도 지긋지긋하다.
시댁과의 경제적 연결고리가 끊기자
남편과 다툴 일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게 조용한 50대를 맞았고,
아이들도 성인이 되어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전 평화롭던 중년의 삶에
또 한 번의 큰 파도가 찾아왔다.
80이 넘으신 시부모님 앞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빚이 있다는 소식이었다.
재산 대부분이 은행에 묶여 있고,
함께 일하는 시동생의 집까지 담보로 잡혀 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정말 말문이 막혔다.
결혼 27년 만에 들은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다.
며칠 전 남편은 더 충격적인 말을 꺼냈다.
“우리 집 팔아서… 주식도 다 정리해서
부모님께 보태면 어떨까?
부모님 건물 살려보고, 같이 해보면…”
지나가는 말이라도 너무 황당했다.
우리 27년의 보금자리를 내어준다고 해서
그 큰 구멍이 메워질 리가 없었다.
나는 마음을 정했다.
시부모의 미래보다, 지금 이 집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 가족의
미래를 지키자.
그래서 남편 명의의 집을
내 이름으로 변경하려 한다.
적어도 집 하나만큼은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
그동안 내 이름으로 된 재산은 하나도 없었다.
가지려 한 적도 없다.
그런 욕심도 없이 살았다.
하지만 50이 넘어서 처음으로 깨달았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돈, 재산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남편 그늘 아래서 보호받는 아내의 삶은 이제 끝이다.
이제는 내가 가족의 터전을 지키는 가장,
주인으로 걸어가야 한다.
나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제는 일도, 돈도, 내가 선택한 모든 것이
나를 도울 것이라는 것을.
지금 나는
‘주부에서 가장으로’
가족의 중심으로 건너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