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기분은 '우울'

by 기빙트리

말라버린 밥을 한 술 떠 입에 넣었다.
버석버석하다. 반찬은 볶은 김치와 핫바.

느즈막이 시작한 점심이었다.

막 수저를 들었을 때, 문이 열리며 한 쌍의 커플이 들어왔다.

오래도록 찬찬히 둘러보는 그들을 지켜보다가 그만 밥술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20여분만에 다시 뜨는 밥 숟가락. 밥이 말랐다.

오늘의 하늘은 잿빛.

맞은편 국숫집 난로 연통에서 흰 연기가 깃발처럼 펄럭인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연기가 바람을 증명한다.

감정도 그런 것일까.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흔들리고 있다.

개점도 채 하기 전에 책방냥이가 문 앞에 와 있었다.

요즘 들어 몰골이 더 처참하다.

지저분하고 비쩍 마른 몸. 약을 먹이려 해도 번번이 실패한다.

생의 의지가 약해진 것인지, 아니면 나의 조급함이 앞서는 것인지 모르겠다.

자꾸만 ‘죽음’이라는 단어가 스친다.

그 단어의 잔상은 얕게, 그러나 오래 남는다.

뉴스 한 줄에 보니 여에스더가 한때 스스로 죽음을 계획했었다고 한다.
그 부자가. 가진 것이 많고 늘 단단해 보이던 사람이.
감정이란 참으로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누구의 지갑도, 지위도, 명성도 봐주지 않는다. 조용히 스며들어 제 몫을 한다.

나의 감정도 한동안 계속 다운 상태다.

그러니 나오는 말과 글이 유쾌하지 않다.

억지로 밝아지려 하지 않는다. 밝음이 의무는 아니니까.

감정과 정서는 저 연통에서 펄펄 날리는 흰 연기와도 같다.
금세 흩어질 것 같지만, 그 순간만큼은 가장 선명하다. 중요하지 않은 듯 보이나, 실은 가장 중요한 것.

그래서 나는 끝내 감정을 신뢰하지 않는다.
지금의 우울이 나의 전부는 아니니까.

우울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그날의 일을 하고, 그날의 친절을 베풀고, 그날의 잠을 잔다.

정서가 온전치 않다고 인생을 모두 시커멓게 물들일 수는 없기에...

삶은 감정보다 조금 더 크다고 믿고 싶다.

이러다 이것이 나를 집어 삼킬 즈음에는 우울을 달래어 가라앉힐 생각이다.

떠나든, 사람을 만나든, 새로운 일을 벌이든.

다만 우울이 지나쳐 ‘고통’이라는 암초를 만나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내 인생의 한 챕터를 불행으로 굳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책방은 오늘 조용하다.

어제 연필질하던 소묘를 마무리해야겠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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