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문을 열면 가장 먼저 오는 손님
올초부터 책방 앞을 지키던 백돌이는 어느새 가을 끝자락에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처음 그 고양이를 보았을 때를 잊을 수 없다.
사람 음식에 중독된 듯 몸은 퉁퉁 부어 있었고, 여기저기 찢긴 상처에, 절름거리는 다리까지.
거의 죽음과 맞닿은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누군가 중성화수술은 시켜 놓았더랬다.
책임질 수는 없지만, 완전히 버려두지도 못한 어떤 마음이 백돌이를 이 거리에 남겨 둔 것일까 생각하곤 한다.
요즘도 책방 문을 열면 첫 손님은 백돌이다.
어디선가 느릿느릿 모습을 드러내더니, 익숙한 길을 따라 책방 문 앞까지 걸어온다.
다리를 조금 절뚝이면서도, 마치 “왔어” 하고 인사하는 것처럼.
오늘은 공기가 제법 쌀랑하다. 이제 가을도 끝을 내려는 모양이다.
정오 무렵인데도 하늘은 잿빛으로 가라앉아 있고, 바람 끝이 서늘하다.
책방 앞을 지나 차를 대고, 가게문을 연다.
수많은 등을 하나씩 켜 두면, 비로소 이 작은 공간에 온기가 깃든다.
날이 추워질수록 노란 불빛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사람과 책과 동물들을 위한 조용한 피난처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문득, 겨울이 오면 백돌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불쑥 올라온다.
'조화로운 삶'의 스콧 니어링은 버몬트 산에 정착하며 동물을 키우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관계의 무게를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니어링과 달리, 어느새 삶의 여기저기에 동물들을 들이고 있다.
책방 고양이, 안방의 말티즈, 숙소의 마당냥이들까지.
'선 하나 그어내기'를 잘 못하는 쪽에 가깝다.
백돌이는 최근에서야, 거의 1년 만에 내게 ‘코 인사’를 허락했다.
한여름, 얼굴에 붙은 진드기를 떼어주려다 간격이 멀어졌던 이후로 오랜만이다.
마음 같아선 커다란 엉덩이를 툭툭 쳐 주고, “괜찮아?” 하고 묻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한 걸음 다가갔다가, 백 걸음 멀어져 버리는 뒷모습을 여러 번 지켜본 탓이다.
늦봄 즈음, 백돌이는 책방 문 앞에서 서서히 책방 안쪽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었다.
책 진열 테이블 아래까지 성큼성큼 걸어와 밥을 먹었다.
책방 앞 도로는 차가 늘 끊이지 않고, 위험한 순간이 많다.
그날 나는 조바심을 내서 ‘차라리 중정 쪽을 백돌이 자리로 만들어 줄까.’ 생각했다.
백돌이가 밥을 먹는 사이 살며시 뒤로 돌아가 문을 닫았다.
순간, 늘 느리게 걷던 백돌이가 튕겨 나가듯 쪽문을 지나 골목 밖으로 도망쳐 버렸다.
그 사건 이후, 냥이는 다시 문 앞에 돌아오기까지 여러 달을 망설였다.
그리고 최근에서야, 마침내 내 손끝에 자기 코를 살짝 가져다 댔다.
아주 짧고, 아주 조심스럽게. 그 몇 초를 위해 우리는 거의 1년을 돌아온 셈이다.
나는 아직도 선을 긋는 일에 서툴다.
책방 앞 길고양이에게 마음을 내어주면서도,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겨울 밤, 찬 바람 부는 시간에도 저 노란 불빛 아래에만 머무를 수 있는 것은 나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을 여는 첫 손님이 백돌이일 때, 나는 안도한다. 오늘도 살아서, 오늘도 여길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겨울이 오기 전, 또 한 번 고민하게 될 것이다.
어디까지가 이 작은 책방의 지기가 감당할 수 있는 책임인지,
그리고 어디까지가 그저 마음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운명인지.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백돌이가 책방 앞을 지키는 동안, 이곳의 노란 불빛은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따뜻하게 켜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