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혔던 벌레 퇴치기(記)

자비 없는 자취 생활 01

by 뭉게

날이 많이 따뜻해졌다. 봄이 다가오면서 벌레도 슬금슬금 등장하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내 앞을 날아가는 벌레를 보니 자취할 때의 공포가 생각났다.


때는 여름이었다. 늦은 새벽에 불을 끄고 누워 있었는데 에어컨에서 탁-탁-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래된 원룸이었기에 에어컨이 고장 난 건가 싶어서 불을 켜고 살펴보았다. 신기하게도 불을 켜니 소리가 멈췄다. 그래서 다시 불을 끄고 누웠는데 얼마 안 지나서 다시 에어컨에서 탁-타닥-탁-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이면서도 가끔씩 불규칙적인, 원인도 모르는 소리였다.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살펴봐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다시 침대에 누워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에어컨에서 소리', '에어컨 탁탁 소리', '에어컨 고장' 등 검색해 봤지만 확실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소리를 무시하고 자려고 했지만 잠귀가 예민한 탓에 잠들 수 없었다. 에어컨을 꺼봐도 여전히 소리가 들렸다. 잠이 안 와서 그냥 누워서 핸드폰을 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나.


탁-탁- 소리가 귀 가까이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순간 온몸의 털이 저릿했고, 반사적으로 일어나 방 불을 켰다. 정체는 날개가 달린 벌레였고, 내 침대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에어컨에서 들렸던 의문의 소리는 벌레의 날갯짓 소리였고, 불이 꺼진 틈을 타 활동했던 거였다. 그 벌레는... 몸집이 매우 컸다. 엄지 손가락 길이만 했고, 훨씬 통통(?)했다. 살면서 그렇게 큰 벌레는 처음 보는 거라 나한테는 공포 그 자체였다. 늦은 새벽이라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없었다. 큰일 났다.


내가 살던 원룸은 방과 주방이 분리되어 있었고, 그 중간에 문이 있었다. 나는 주방으로 대피했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숨이 안 쉬어질 정도였다. 어떡하나, 내가 잡아야 할 판인데, 내가 해결해야 하는데 잡을 용기도 방도도 없었다. 진짜 X 됐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전에 사둔 에프킬라가 있었다. 나는 재빠르게 에프킬라를 집어 들고, 다시 주방으로 피신했다. 심호흡하며 스스로에게 벌레 잡을 용기를 부여했다. 할 수 있다, 해야 한다.


문을 살짝 열어 벌레의 동태를 살폈다. 바닥을 기듯이 날고 있었다.


이때다! 몸통은 뒤로 빼고 팔만 최대한 뻗어서 에프킬라를 뿌렸다. 뿌리면서도 팔이 덜덜 떨렸다. 갑자기 튀어 오르면 어떡하지?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보통의 벌레가 아니라 그런지 에프킬라를 뿌려도 뿌려도 계속 꿈틀거리고 기어 다녔다. 나도 굴하지 않고 바닥이 흥건해질 정도로 에프킬라를 뿌렸다. 익사시켰다, 가 적절한 표현이겠다.


숨 막혔던 벌레와의 사투는 끝이 아니었다. 휴지를 아주 두껍게 말아서 벌레를 덮었다. 그리고 나무젓가락으로 감싸듯이 집었다. 그리고 변기에 버렸다.


집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잠깐 들었다. 그 정도로 끔찍했다. 아직도 그 벌레가 어떤 벌레인지 알지 못한다. 검색해도 모르겠다. 찍어둔 사진이 없어서 아쉽다. 보면 아마 깜짝 놀랄 거다.


벌레와의 조우, 사투, 그리고 승리한 나는 이제 어떤 벌레든 잡을 수 있는 작은 용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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