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마지막'

슬프도록 유한한 삶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by 온작가


강원도 홍천군 모곡리 화재사고 현장


지난 5월 1일 강원도 홍천에서 발생한 화재사고. 5년 전 해당 주택을 구입하고 주말농장의 거처로 쓰며 전원생활을 꿈꾸던 노부부와, 60대 지인 두 명이 모두 사망했다. 당일 오후부터 저녁까지 뉴스에도 몇 차례 보도됐던 이 사건.


전원생활 준비하다 참변‥홍천 주택 화재 4명 숨져 (imbc.com)


그 '60대 지인 두 명' 중 한 명은, 아는 사람의 어머니였다.



우리 부부의 연이 시작된 천주교 모임. 거기서 운영진으로 활동해 온 한 살 아래의 그녀는, 이렇게나 갑자기 '부고 문자'의 '상주' 란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갈 걸 상상이나 했을까.


아기 때문에 남편이 대표로 다녀온 장례식장. 그녀는 비교적 담담한 모습이었다고 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헐레벌떡 빈소를 찾은 이들에게 어머니 사고의 정황에 대해서도 똑 부러지게 설명했다고 했다. 눈물은 더 이상 흘리지 않는다고, 밥도 잘 먹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속이 속이겠는가. 유일한 혈육인 언니는 지방에서 생활하고 있어, 지금껏 어머니와 단 둘이서 살아왔던 그녀다. 바로 전날까지도 '나물 많이 캐 올게'라며 소녀 같은 웃음을 지어 보였을 어머니가, 기가 막히게도 영정사진 안에 있다. 언젠간 꼭 예쁜 자연 속에서 살리라 꿈에 부풀어있었던 어머니의 친구는 옆 장례식장의 한편을 차지했으리라. 유독 친했던 친구분들이었는지 그렇게 한 날 한 시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토록 좋아했던 자연의 품 안에서.



생각해보면 '거짓말처럼' 그렇게 떠난 이들이 꽤 있었다. 불과 며칠 전에도 이제 막 50대에 접어든 회사 조명 감독님이 그야말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날 점심때까지만 해도 동료들과 맛있게 식사를 하고는 그 후부터 그렇게 식은땀을 흘리시더란다. 식사를 함께 한 동료들은 당연히 체한 거라 생각하고 병원에 다녀오길 권하며 여느 때와 똑같은 오후를 보내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감독님은 쓰러졌고 119가 왔고 1시간 뒤에 회사로 연락이 왔단다. 돌아가셨다고. 사인은 심장마비.


tvN에서 함께 연예뉴스를 만들었던 동갑 피디도 사인이 불분명한 상태로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맞았었다. 두어 달 뒤 몇 년간 작업해 온 소설책이 세상에 나올 예정이었을 만큼 재능도 있었던 사람. 내 결혼식에도 왔었고 '오빠의 심정으로 잘 보고 가요' 메시지도 줬던 사람. 다음 만남 장소는 당연히 우리가 다시 함께 할 작품의 회의실이나 그의 결혼식장이 될 줄 알았는데 영등포의 작은 장례식장이 됐었다. 함께 일했던 작가라 소개한 나의 두 손을, 부서질 정도로 잡으며 통곡하던 그 어머니의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우리 옆집 할아버지는 40대 초반의 아들과 단둘이 살고 계셨는데 낚싯배가 전복되는 사고로 아들을 잃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먹고 자고 TV 보고... 모든 일상을 공유하던 아들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우리 아이를 '꼬맹이' '공주님'이라 부르며 유독 예뻐해 주시는 할아버지... 아이를 보며 또 우리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실까. 우리끼리 웃는 것조차 죄송할 때가 있다.




정말 그 누구도 꿈에서조차 예상치 못했던 갑작스러운 죽음... 그 후의 세계에서 당사자들은 얼마나 억울하고 가슴이 찢길까. '슬프다'는 표현으로는 억만 분의 일이나 설명할 수 있을까. 그들은 마치 드라마에서처럼 몽환적인 느낌 가득한 곳에 모두 모여, 남겨진 가족들을 보고 있을까, 어떤 모습으로?...


그런데 이런 갑작스러운 '마지막'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것.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을 거다.


그렇다면 또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가 어떤 자세로 살아가는 게 맞을까, 하는. 내게 확실하게 주어진 시간인 '지금 이 순간'을 백 퍼센트에 가깝게 살기 위해서 나의 업에 그리고 나의 가정에 그냥 지금처럼 충실하려 애쓰며 사는 게 맞는 걸까, 아니면 지금껏 늘 품고만 다녔던 '버킷리스트'를 꺼내 들고 단 하루라도 그것에 몰두하며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사는 게 맞는 걸까.


그리고 만일 지금 이 순간이 나의 '마지막'이라면 주변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내가 보냈던 마지막 카톡 내용, 내가 보인 마지막 모습은 과연 무엇이 될까. 그렇게 생각하면 그 어떤 순간도 최소한 부끄럽지는 않을 정도로 살아야겠지.




하루아침에 일어난 화재 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그 아이는 이틀 전 발인식을 통해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홀로 빈집에 들어가 오열을 했을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아니 정말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희한하게 더 생생히 기억해낼 것이다. 엄마와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을, '엄마가 없는 거짓말 같은 세상' 속에서.


그 아픔을 감히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그저 말없이 꼭 안아주고만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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