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개월 우리 부부를 괴롭히고 있는 가시 돋친 말들. 빌라 단톡방에 시시때때로 올라오는 아래층 남자의 분노 섞인 독백입니다. 물론 어린아이들이 많은 곳이니 어느 한 세대를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그 분노가 향하고 있는 지점의 대부분이 우리 집임을, 우리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거였습니다.
층간 소음 문제... 사회적인 이슈가 된 지 오래지요. 특히 코로나 시국, 집에 있는 시간들이 늘면서 이전보다 훨씬 심각해졌다는데요, 그게 우리 집 일이 될지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도 말마따나 '머리가 울릴 정도로' 진짜 괴로우니 이런 카톡 폭탄들을 수시로 투하해댄 거겠지만 우리도 할 말이 많습니다. 우선 우리 아이는 집에 머무는 '절대 시간'이 무척 짧은 아이예요. 평일엔 하루의 대부분을 어린이집에서 보내기에 아침에 일어나서 길어야 두 시간, 밤에 자기 전에 길어야 세 시간 정도나 될까요? 기본적인 성향도 아주 온순하고 내성적인 편이기에 우당탕탕 뛰어다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조금, 아니 사실은 많이 억울한 거예요. 그 짧은 시간 동안 얌전한 아이가 만들어내는 작은 소음들에도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게 말이죠. 물론 단 한 번도 직접 우리 집을 찾은 적이 없었고 주차장에서 가끔 마주쳐도 웃으며 인사하는 걸로 봐서 그는 정말 우리 집만을 타깃으로 하고 있는 건 아닐지 몰라요. 도둑이 제 발 저린 걸지도요. 그러나 바로 윗집인 우리로서는 곤욕스럽지 않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하루 종일 우리 부부는 '뛰지 마' '뛰지 마'를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세 돌도 안 된, 이제 막 자신의 단어장을 열심히 채워가고 있는 아이가 아마도 하루 중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사랑해' '아이 예뻐' '넌 너무 소중해' 이런 게 아닌, '뛰지 마' 였을 거예요.
그 말에 세뇌당해서일까요? 나름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똑똑한 우리 아이가 어느 날부턴가 까치발을 하고 다니는 겁니다. 학습이 너무 잘 된 탓이죠. 어린이집에서도 그랬다는 거예요. '아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 어린 게 벌써부터 세상의 눈치를 보고 있는 현실이 끔찍하기까지 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사'를 계획했어요. 서울 집값은 이미 '미친 수준'이었기에 부천, 김포, 인천까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집을 보러 다녔지요. 양가 어른들껜 알리지 않았습니다. 괜히 심란하실 수 있으니 일단 괜찮은 집이라도 발견하고 난 후에 상의를 드릴 작정이었어요.
한 2주를 그러고 다녔을까요? 드디어 발견했습니다. 경기도 부천의 신축빌라였는데요, 회사 근처라는 게 마음에 안 들긴 했지만(ㅋㅋ) 그 외엔 다 좋았어요. 부천 중에서도 서울과 아주 가까운 곳이라 시부모님이 오시기에도 편할 거 같았고요, 유치원이 코앞에 있고 초, 중, 고등학교가 모두 도보 5분 이내에 있었고요, 학세권이다보니 유해시설이 1도 없었고 뭣보다 바로 인근에 대공원이 있었어요. 지금 집도 인근에 서서울 호수공원이 있긴 하지만 도보로는 좀 무리인 거리에 있거든요. 아이에게 늘 땅을 밟으며 뛰어놀게 해 주고 싶었고 사시사철 바뀌는 계절들을 온전히 느끼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데요, 지금은 가끔씩만 할 수 있던 것들을 그곳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매일 할 수도 있겠단 생각에 가슴이 좀 뛰더라고요. 아이가 아빠처럼 성당에서 다양한 활동들을 하며 자라길 바라기에 성당이 도보거리에 있다는 것도 좋았고요, 가장 아래층이라 층간소음 스트레스에서도 비교적 괜찮을 수 있을 거 같았어요. 그냥 모든 게 다 좋았어요.
그런데요, 선뜻 결정하기가 잘 안 되는 겁니다. 왜였을까요.
가장 큰 건, 이전에도 몇 번 (이번과는 다른 이유로지만) 이사를 생각했을 때마다 우리를 주저앉혔던 결정적인 이유와 같은 것이었어요. 바로 '할세권'에 대한 신념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요?
아이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지금 차로 5분, 도보로 15분 정도 거리에 사시는데요, 어느 조부모님이 안 그러실까만 두 분은 집안의 첫아이이자 어쩌면 마지막 아이가 될 가능성이 큰 우리 아이를, 정말 아주 각별하게 사랑해 주십니다. 역세권, 학세권, 숲세권, 팍세권, 스세권 다 좋지요. 그런데 아이에게 그것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것이 할세권... 즉 할머니 할아버지와 지근거리에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두 집이 같이 이동하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그건 너무 큰일이 될 것 같아 자체적으로 패스...^^
그리고 유독 낯가림이 심한 우리 아이가, 몇 년간 함께 하고서야 어린이집 친구들에게 정을 듬뿍 주고 있는데 이 친구들과 지금처럼은 자주 시간을 보내지 못할 것도 분명할 거 같았고요,
렌털로 이용하고 있는 정수기, 비데, 음식물 처리기 등을 옮기고 벽걸이 티비도 옮길 걸 생각하면 골치가 지끈지끈 아프기도 했어요.
그래서 거실에 층간소음방지 매트를 시공하고 그냥 살까? 하다가도... 출근길, 마음에 쏙 들었던 그 동네를 지날 때면 또 욕심이 올라오고... 며칠을 그러고 있습니다. 참 답답하지요.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나는, '서울 사람'에 대한 욕심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요. 23년 전 방송작가를 하겠다고 혈혈단신 올라와 지금껏 살고 있는 이곳 서울... 20년 넘게 나름 열심히 한 우물을 파고 있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서울시민'의 자리 하나를 거머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어쩔 수 없는 '옛날 사람'이지요. 성공한 사람들은 오히려 시골로 떠나는 요즘 시대에 그래도 서울러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어쩔 수 없는 '모태 촌사람'이지요.
'그래! 결심했어!'
옛날 사람들만 아는 그 <인생극장>에는 고민의 갈래 길 앞에서 명쾌하게 결정을 내리는 이휘재가 있었는데요. 요 며칠은 누가 그렇게 이사에 대해 대신 결정해 주면 참 좋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대신 결정해 준다고 한들 그걸 기꺼이 실행할까요? 이제 싫은 거 안 되는 게 너무 많은 나이여서 말이죠)
아이와 우리 부부에게 가장 좋은 선택지는 어디일까요? 제 고민은 언제 어디쯤에서 멈춰지게 될지 저도 참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