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그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아이 앞에서 아이처럼 울어버린 두 여자의 이야기

by 온작가

기어이 그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그녀와 헤어지는 날.


그날은 아침부터 내내 슬펐고 그녀에게 전할 선물을 사면서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자꾸 천장만 봤고 결국 그 순간이 되어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울어버렸습니다. 아이가 보는 앞에서 아이처럼 한참을 울어버렸습니다.


'언당님'...

아이가 '엄마' '아빠'를 겨우 말했던 무렵 그 작은 아이의 얄팍한 단어장에 '엄마'와 비슷한 빈도로 등장했던, 아이에게는 어쩌면 또 다른 엄마와도 같았을 그녀는 어린이집 원장님입니다.



원장님을 처음 만난 건 아이가 생후 2개월쯤 됐을 때였던 것 같아요. 그때 전 인생 최대의 위기를 온몸으로 맞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너덜너덜', '만신창이' 이런 표현이 딱 어울리는 때였습니다.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에... 겨우 두 달 했을 뿐인 육아는 저라는 사람과 너무도 맞지 않는, 그냥 완전히 다른 세상의 무언가였어요.


저 조그만 생명체는 왜 뻑하면 빼액- 하고 울음을 터트리는 건지 왜 뻑하면 자다 깨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건지 저 찡그림은 저 울음은 아프다는 건지 짜증이 난다는 건지 대체 뭔지...


남들처럼 '모성애'가 뿜뿜하기는 커녕 누가 나 좀 살려달라고 누가 이 말도 안 되는 전쟁터 같은 곳에서 날 좀 구해달라고 소리치고 싶기만 했어요.


딱 그럴 때 남편 손에 이끌려 찾아갔던 곳이 동네 어린이집이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작가적인 자료조사력을 발휘해 온갖 맘카페들을 뒤져가며 매의 눈으로 평판 좋은 어린이집을 찾아냈겠지만 그땐 그럴 여력조차 없었어요. 그냥 그렇게 어린 아기도 받아줄 수 있는 곳이 있기만 하다면 큰절이라도 하고 싶었으니까요.


"최소 돌은 지나야 해요"

몇 군데서 똑같은 얘기를 듣고 역시 안되나 보다 하며 잔뜩 풀 죽어 있던 무렵 원장님을 만났습니다.


"우리 어린이집에 생후 한 달에 온 아기도 있어요. 지금 8개월인데 정말 잘 다니고 있고요"

마치 천사 강림의 순간 마냥 후광까지도 비칠 지경이었죠.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연신 인사를 했고, 우리의 인연은 시작됐습니다.


매일 가정에서 또 어린이집에서 응가는 몇 번 했는지 변 상태는 어땠는지 분유는 얼마나 먹었는지 잠은 얼마나 잤는지 아기에 관한 모든 것을 알림장을 통해 공유하며 우리는 '슬기로운 공동 육아'를 해 나갔어요.


아니 사실 주 양육자는 원장님이었고 저는 '거들뿐'인 형태였지요.



그 사이 저도 조금씩 평온했던 일상을 찾아갔습니다. 늘 귀신 산발이던 머리카락도 차분해지기 시작했고 불룩 나왔던 배가 사라진 것처럼 아무 일 없었던 듯 출근도 다시 시작했지요.


원장님은 그렇게 '갓 태어난 엄마'인 저도 같이 키워주셨습니다.



백일쯤부터 근 3년 간 뒤집고 기고 걷고 뛰면서 '사람'이 돼 가는 과정을 우리 부부보다 늘 먼저 봐주셨던 원장님.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그날은 종일 우리 아이에게만 매달려 계시며 큰 사랑과 기도로 보듬어주셨던...

그래서 지금까지도 아프기만 하면 그 따뜻했던 품을 잊지 못하는 아이로 만들어 주셨지요.


지난 3월, 온 가족이 코로나에 걸렸을 땐 '입맛이 없다'는 저의 한 마디에 칼칼한 부대찌개와 아이가 좋아할 만한 간식들을 대문 앞에 두고 가시기도 했던 그 고마운, 그 깊은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그런 분과 예상보다 훨씬 빨리 이별을 하게 된 겁니다.


그전부터도 '나중에 어린이집 졸업할 때 원장님 얼굴 어떻게 보지? 진짜 대성통곡할 거 같아' 늘 남편에게 그런 말을 했었는데 그 순간이 정말 오고 만 거예요.


우리는 애써 시선을 외면하다가 일순간 눈을 마주치자마자 '어떡해' 하면서 울었습니다.


아마도 친정 엄마, 친정 언니 그 이상의 존재였을지 몰라요. 마음의 아주 큰 부분을 어느순간부턴가 내어드리며 온전히 의지하고 있더라고요.


모든 것이 서툰 초보 엄마에게 그런 '기댈 곳'이 있다는 게 그저 감사하기만 했습니다.



이사를 하자마자 공교롭게도 아기가 많이 아팠습니다.


생애 첫 이별에 대한 슬픔과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요. 근데 그 정체를 알기엔 너무 어린 나이이니 마음으로는 받아들일 수가 없어 몸으로 반응을 했던 걸지요.


새 어린이집에 곧잘 적응하나보다 했던 아이는 아침부터 울음을 터트렸어요.


"안 갈거야 엄마랑 있을거야"

"또래미키 어린이집 다닐 땐 한 번도 안 간단 얘기한 적 없었잖아"

"거긴... 원장님이 있었잖아"

......


그랬지, 원장님이 계셨지...

엄마보다 더 진짜 엄마 같았을, 늘 너를 사랑으로 품어주셨던 원장님이 계셨지... 아플 때면 너무 자연스럽게

파고들며 어리광부릴 수 있었던, 완벽히 따뜻하고 안정적이었던 그 품이 있었지...


매해 스승의 날이면 우리 모녀의 스승인 그 분을 찾아갈 겁니다.

다음 만남엔 울지 않을 거예요. 그녀에게 어울리는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안개꽃다발을 준비해야 겠습니다.


분유량이 유독 적던 아이를 대식가 아기로 만들어주셨던 원장님의 도시락은 늘 무척이나 따뜻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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