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는 글쓰기 Ep1. 상처로 가득했던 그 시절의 나에게
'우르르 쾅 쾅'
세상이 다 떠나가고도 남을 것 같은 그 남자의 고성은 천둥 번개 소리 그 이상이었습니다.
이제 겨우 초등학생 정도였던 아이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책상 밑으로 들어가 귀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같이 소리를 질러보았어요. '아아아아악'...
하지만 남자의 고성을 잠재우기엔 턱없이 작은 소리였지요. 각자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분노와 불안을 토해낸 그 남자와 그 아이. 30여 년 전의 아빠와, 저였습니다.
30여 년 전 책상 밑에서 떨고 있던 아이야, 안녕?
네게 너무 늦은 인사를 건네고 있네.
기억이 나지 않았던 건 아니야.
아니, 외려 필요 이상으로 너무 자주 기억나 눈을 질끈 감아버린 때도 있었지.
그럼 내 눈앞 검은 세상 저 멀리로 그 기억들이 다 사라져 버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유독 작았던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던 아이야.
다행히도 30여 년 뒤의 너는 더 이상 책상 밑에 들어갈 일도 귀를 막을 일도 부들부들 떨 일도 없다는 것에 우선 안심하렴. 지금까지도 큰 소리에 유독 잘 놀라고, 같이 사는 5살 꼬맹이가 만날 '겁쟁이'라 놀릴 정도로 무서운 게 많은 사람이긴 하지만 최소한 '남몰래' 무서워하고 '남몰래' 울 일은 없단다. 네 아빠와는 전혀 다른, 온화하고 따뜻하고 귀여운 남자를 만나 뭐든 함께 나누며 살고 있거든.
가엾은 아이야, 그때의 아빠는 왜 그렇게 늘 날이 서 있었을까? 대학 교수로 살고 싶었지만 초등학교 교사로 만족해야만 하는 삶이 정말이지 끔찍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걸까? 늘 모든 화를 엄마에게 다 퍼붓고 소리소리를 지르고 때로는 엄마 등을 철썩철썩 때리기도 했던... 분노 조절 장애인의 삶 그 자체였던 순간순간마다, 당신이 그렇게나 예뻐했던 막내딸이 얼마나 공포스러워했었는지 알긴 알까?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민트색 책상 아래로 떨어졌던 눈물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아빠는 지난날에 대한 벌을 받기라도 하듯 2019년 가을, 암 환자가 됐어. '놀라지 마... 아빠 암 이래' 출근길 버스에서 엄마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받고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눈물도 안 나오더라. 지금까지 만 4년 넘게 수십 차례 항암 치료, 완전 관해, 재발, 또다시 항암... 등의 과정을 거치며 아빠도 물론 힘들었겠지만 미안하게도 난 늘 놀라우리만치 덤덤한 엄마가 너무 가엾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 '그래도 병원이 아닌 집에서 함께 눈을 뜰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라고 하는 엄마가.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은 아빤데 왜 그 몇 배의 벌을 죄 없는 엄마가 받고 있는 건지 하늘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더라.
아이야, 30여 년 후의 넌 여전히 아빠를 온전히 용서하지 못했다. '사는 게 버겁고 표현이 서툴렀다'는 두루뭉술 감성적인 말로 포장하는 건 네게, 또 엄마에게 너무 무책임한 일 같아서 그저 '아빠도 많이 힘들었나 보다' 생각하려고 애쓰는 중이란다. 그래도 아빠가 물려준 예민함과 예리함으로 23년이 넘도록 작가 일을 하고 있으니 그 점은 진심으로 감사해하면서.
그러니 너도 더 이상은 그곳에서 웅크린 채 벌벌 떨지 말고 당당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렴. 불안정함의 극치를 달렸던 10대의 너를, 그나마 꽤 편안해진 40대의 내가 두 팔 벌려 꼭 안아줄게. 아주 오래도록, 숨이 막힐 정도로 꼬옥.
이제 눈물을 닦고 함께 가자. 더 이상 그 어떤 큰 소리에도 놀라지 않을 정도로 담대해져 있을 미래의 어딘가를 향해. 손 꼭 잡고 함께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