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akong Sep 03. 2019

분리가 주는 힘



워킹맘이 되니 확실히 바빠졌다. 투잡을 뛰고 있는 기분이랄까. 매일 세탁기를 돌릴 수 없어서 빨래는 쌓여가고, 집은 엉망이고 겨우 하루하루를 보내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에 좋은 점도 많아진 것 같다.


워킹맘 9일 차(주말 제외)의 생생한 경험기!


육아의 질이 높아진다?

일을 하게 되면 절대적으로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니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기가 어렵다. 그에 따른 아쉬움도 존재하고 미안한 마음도 들고..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게 된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든 만큼 아이에게 더 잘하게 되고, 더 깊은 관심을 쏟게 된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들었다. 나 역시도 그렇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진 것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나는 이것을 '분리가 주는 힘'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전에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냈음에도 여전히 아이와 관련된 시간들이 지속되는 느낌이었다.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 밥을 준비하고 기저귀와 물티슈 등 아기용품을 구매하는 등 온전한 나만의 시간은 없는 것 같은 그런 느낌. 하지만 일을 하고 나니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난 후에는 아이들과 완전히 분리가 되는, 굉장히 색다른(?) 시간을 경험했다. 물론 오늘 울면서 어린이집에 갔던 아이들이 신경 쓰이고, 하원하고 나서 아이들이 잘 있을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지만, 어찌 되었건 회사에 있는 동안은 아이들에게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나 같은 경우는 아이들이 밤에 자지 않는 것이 매우 스트레스였다. 아이들이 자야 못다 한 집안일도 마무리지을 수도 있고, 오늘 하루가 끝남음에 안도하며 정말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잠을 자지 않으면, 잠자는 시간이 늦어지면 그만큼 나의 시간 또한 부족해지기에 그게 그렇게 화가 날 수가 없었다. 나는 엄마가 되었고 현재 내가 최선을 다해야 할 부분은 육아라고 아무리 마음을 다스려봐도, 나의 고유한 영역이, 나의 시간이 빼앗기는 것 같아서 너무도 화가 났다. 그런데 회사에 복귀하고 나니 몸은 정말 힘든데,  아이들과 분리되었던 시간 동안 나도 나만의 에너지를 충전하게 되어서 이에 대한 화가 정말 많이 줄었다. 물론 여전히, 너무 잠을 자지 않을 때는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많지만, 보통의 경우 ‘한 번 참을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었다. 이는 개인적으로 중요한 변화이며 어찌 되었건 엄마의 화를 받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우리 한 번 다시 잘해보자

아이를 기르면서, 그리고 쌍둥이를 키우면서 우리 부부는 정말 모든 것을 갈아 넣었다. 시간과 체력과 재정과.. 정말 모든 것이 아이들 위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우리 부부는 터지기 직전까지 참으며 지난 2년을 보내왔다. 중간중간 남편이 '나 사랑하는 거지..?'라는 이야기를 물어봤을 때도 그냥 투정 부리지 말라는 식으로 넘기고 우리 앞에 주어진 육아를 위해 전력 질주했다.

'사랑하지, 그런데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 애가 울잖아 악 어떻게 좀 해봐!!'


회사에 복귀하고 많은 워킹맘들과 점심을 먹고 있다. 그중 한 선배의 이야기가 내 마음을 울렸다. 선배는 연년생 육아를 하면서 너무도 힘들었다고 했다. 남편과의 관계는 정말 갈 때까지 가서 작년엔 자신에게 있어 정말 최악의 한 해였다고 말했다. '잘못하다가는 이혼할 것 같더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선배의 말을 듣고 나는 놀랬다. 선배가 그런 생각을 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아졌기 때문에 편하게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며 선배는 덧붙였다. '변화된 것은 없는데 나아지고 있어. 어느 정도 포기하기도 했고 하하. 남편을 사랑해주는 마음을 잘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남편은 아이만 바라보는 아내를 보며 서운한 감정도 많이 들었던 것 같더라고. 나도 딱히 그랬던 것은 아닌데..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


나도 생각해왔었던 부분이고, 내 남편도 어느 정도 표현해왔었던 부분이었는데... 육아에만 몰입할 수밖에 없었을 때는 나의 이 마음을, 상대방의 이 마음을 미처 챙길 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선배의 말을 듣고 나니 앞으로의 방향성이 명확해졌다.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된다는 것을.


남편은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할지 모르지만, 나는 스스로 변화하기로 결심했다. 아직은 과정 중이지만,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관계뿐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처지에 있으면서 또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 뭔가 변화할 수 있는 힘 또한 생긴다.



하지만 몸은 정말로 힘들다. 동동거리며 아침마다 아이들 준비시키고 어린이집 보내고.. 매일 버스정류장까지 뛰어간다. 퇴근할 때도 버스를 놓칠세라 뛰느라 바쁘다. 사실 여유가 없어도 너무 없다.


일한다고 한 것은 나의 선택이기에 지금 상황이 힘들다고 툴툴거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좋은 점만 있진 않겠지만 핑크빛 미래만을 예상할 수는 없지만,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고 단점이 있으면 장점이 있으니까. 그냥 하나씩 하나씩 해보면 되겠지. 내 삶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이전 16화 육아, 잠시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