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잠든 지금, 고요한 시간 속에서 오늘 하루를 돌아본다.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완벽한 엄마란 없는 것이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생각나고 때로는 자책감에 너무도 괴롭다. 난 항상 나에게 미안해했던 엄마가 정말 이해가지 않았는데,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엄마의 그 마음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엄마라는 존재는 필연적으로 자식에 대한 미안함을 갖게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완벽한 엄마를 꿈꿨다.
우리 엄마는 워킹맘이어서 늘 바빴고 나는 할머니 손에 자랐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컸다. 나는 이런 나의 성장배경으로 인해 엄마를 원망하거나 내게 무엇인가 결핍되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멋지게 사회생활하는 엄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학교 다녀와서 간식을 챙겨주는 엄마를 가진 친구들이 너무도 부러웠다. 사실 나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었다. 따뜻한 간식을 내 아이에게, 그리고 내 아이의 친구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그런 엄마.
그래서 쌍둥이들이 세상에 나왔을 때, 나는 아이들에게 정말 잘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 항상 불안하고 조급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초보엄마였던 나는 잘하는 것은 커녕 하루하루를 겨우 보낼 수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엄마가 되기 위한 어떤 지식도, 마음의 준비도, 실질적인 대비도 해놓지 않았다. 더군다나 나는 집안일에 재능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정리정돈과 요리와 같은 영역은 내게 너무도 어려웠다. 나는 절망스러웠다. 내가 생각했던, 내가 이상적으로 꿈꿔왔던 엄마의 모습에 전혀 다가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내가 생각했던 '좋은 엄마'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에서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의 새로운 모습도 보고, 깨지기도 하고, 성장하고 있다. 이것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아마 평생 계속되지 않을까. 손수 요리한 음식을 예쁘게 담아주거나, 엄마표 미술놀이를 하는 등 주변에 보이는 엄마들이 좋은 엄마인 것 같아 여전히 조바심이 날 때도 있지만, 조금은 부족하고 서툴지라도 나는 내 나름대로 방식과 노력으로 아이들과의 시간을 보내는데 집중하고 싶다. 아이들이 한번이라도 더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오늘도 그렇게 잘 보냈다.
오늘 하루 수고한 나에게, 그리고 수많은 엄마들에게 토닥토닥 위로를 전하고 싶다.
수고했어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