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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프씨 Feb 07. 2024

도대체 IB가 뭐야?

내 아이가 경험한 IB프로그램 #5

IB의 꽃이자 그 자체라 말할 수 있는 IBDP, 그 험난한 과정 (2)


앞서 설명한 방식으로 결정한 HL 3과목과 SL 3과목, 그리고 필수 과목인 Theory of Knowledge(TOK. 장편 논술)와 Extended Essay(EE. 지식 이론), Creativity, Action, Servie(CAS. 창의성 활동, 신체활동, 봉사활동)를 모두 이수하여 받을 수 있는 총점은 45점이다. 

각 과목별 최대 점수가 각 7점씩이므로 선택한 6과목에서 최대 42점의 점수를 받을 수 있고, TOK와 EE, CAS에서 각 1점씩 총 3점의 점수를 받을 수 있다.  


Theory of Knowledge(TOK)는 철학, 도덕, 논술 등을 통합하여 비판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가르치는 교육 과정으로 100시간의 수업을 이수하고 1,200-1,600 단어의 에세이와 하나의 프레젠테이션을 완성해야 하는 과목이다.

Extended Essay(EE)는 학생들의 독자적인 연구와 추론을 통해 4000 단어 미만의 에세이를 써서 제출해야 한다.

Creativity Action Service(CAS)는 교과 과정에 포함되지 않은 교외 봉사활동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는 Creativity 50시간, 물리적인 운동을 하는 Action 50시간, 그리고 봉사하는 Service 50시간을 2년에 걸쳐 수행하여야 한다.


TOK를 작성할 당시 아이는 "내가 이걸 왜 쓰고 있는 건지, 뭘 쓰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모든 지식의 시발점이나 보통 학생들의 학업 중에서는 접하기 힘든 철학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에세이를 쓰려니 흔한 말로 멘붕에 빠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어찌어찌 툴툴거리면서도 결국 철학적으로 해석한 에세이를 작성해 냈고 그 과정 동안 쌓인 시간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대학에 입학해 필수 교양 과목으로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라는 과목을 듣게 된 아이가 TOK 했던 게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 몰랐다며 뿌듯해했으니 말이다.


EE는 쉽게 얘기하면 짧은 논문을 작성하는 거라 할 수 있겠다. 선택한 6과목 중 한 과목을 선택해 실험이나 주제를 정한 후 에세이를 작성하는데, 내가 대학에서 전공할 과목을 선택해도 되고 현재 점수가 가장 잘 나오는 과목을 선택할 수도 있다. 개인의 선택이며 그 기준 역시 다양할 수 있다. 어떤 아이는 자신과 가장 친한 선생님이 담당하는 과목을 선택하기도 하는데, EE를 써나가는 긴 과정을 생각한다면 그 또한 괜찮은 방법일 수 있다. 담당 선생님과의 상호작용이 원활하고 어려움이 없어야 긴 호흡으로 작성해야 하는 에세이를 무난하게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아이의 경우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을 EE로 선택해 초안을 일찌감치 작성해 두었지만 담당 선생님이 개인 업무가 많아 시간을 내기 힘든 분이어서 미팅을 잡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결국 끝내기는 했지만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아 꽤 스트레스를 받아했다. 서포트를 잘해주는, 학생의 일을 최우선시해주는 성향의 선생님을 선택하는 것도 EE과목을 선택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IB PYP와 MYP를 거치는 동안 아이들이 지겹게 해 오던 과제와 수업방식이 에세이를 쓰는 작업이었다. 각 학년에 따라 300자 이상, 500자 이상, 1000자 이상 이런 식으로 차츰 글자 수를 늘려가며 학년을 올라왔기 때문에 고학년 즈음엔 어느새 아이들 스스로 자신 있는 주제를 정하고 멘토 선생님과 수시로 상호 교환하며 이 작업들을 완성시킨다.  

저학년부터 이런 훈련을 시킨 이유는 이미 말했든 IBDP를 위한 훈련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선택한 6과목의 파이널 점수는 매년 치러지는 시험성적으로만 정해지는 게 아니다. 2년에 걸쳐 제출해야 하는(수행평가라 할 수 있는) Internal Assessment (IA)와 시험 성적을 합쳐 최종 점수를 받게 되는데 이 IA가 어찌 보면 아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부분일 수 있다.


최소한 12학년 1학기까지(보통 3월까지)는 과목별 IA를 끝내둬야 나머지 시간을 5월에 치르는 시험준비에 집중할 수가 있다. 따라서 11학년부터 약 1년 반 가량을 여섯 과목별 에세이인 IA와 앞에서 설명한 TOK, 그리고 EE까지 마쳐야 하는 셈이다. 그 중간중간 봉사시간에 해당하는 CAS 시간도 채워야 하니, 한마디로 11학년부터 12학년 1학기까지는 정말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간다. 한 과목 IA를 끝내면 다음 걸, 혹은 몇 과목의 에세이를 동시에 진행하기도 하며 학교 행사와 봉사도 참가해야 하고, EE를 실험으로 선택한 경우엔 주기적으로 실험과 결과를 산출해내야 하니 정말 하루가 모자라게 되는 시점에 이른다.


이 모든 걸 수행해야 하는 IBDP 과정은 절대 만만한 과정이 아니다. 해야 하는 공부의 양과 2년에 걸쳐 꾸준히 제출해야 하는 논문은 겪어보지 않으면 함부로 평하지 못하는 부분일 것이다. 속 한번 썩인 적 없던 지인의 딸이 IBDP를 하며 처음으로 욕을 내뱉었다는 얘기가 무척 충격이었던 기억이 있다. 그 아이 왈, 저 두꺼운 책들을 한 장 한 장 뜯어서 잘근잘근 씹어 먹었으면 좋겠다며, 오밤중 퀭한 얼굴로 중얼거렸다고 하더라. 어려서부터 맷집을 키워왔다 해도 막상 접했을 땐 힘들지 않을 수 없는 과정인 건 맞는 것 같다.

내 아이도 항상 피곤과 예민에 절어있긴 했던 거 같다. 완벽을 요하는 성격의 아이라면 기껏 어느 정도 쓴 에세이를 엎고, 또 엎고 할 수도 있다. 시간의 흐름과 실력의 향상이 거의 정비례로 진행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다시 읽은 이전의 글들이 성에 덜 차서 일 수도 있다. 완벽한 에세이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지만 계속 반복되면 제한적인 시간이 게 큰 문제로 다가올 수 있다. 시험 치를 준비를 제하고 남겨진 시간을 잘 분배해 에세이를 작성해야 하는 것도 글의 완성도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아이를 졸업시키고 돌아본 개인적인 견해로 아이들은 10학년즈음이 되어서 비로소 '제대로 된 공부'라는 걸 시작하는 듯하다. 물론 그전까지도 공부를 해왔겠지만, 내가 선택한 과목들로 이루어진 공부를 시작하는 즈음부터의 공부는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태도와 시각을 보인다.

내 아이 학교의 경우 특히 10학년 졸업 시험을 통과해야 IBDP를 시작하는 11학년으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게다가 졸업 시험의 범위가 9학년부터 10학년까지 배운 2년간의 내용이 모두 포함되기에 아이들은 대학의 전공서적 같은 두꺼운 책을 끼고 꽤나 열심히 공부를 해댄다.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하는 그런 제대로 된 공부를 하는 모습 말이다. 시험에 낙제해 다시 10학년 다녀야 하는 (쪽팔린) 최악의 경우는 면해야 하기에 나름의 부담을 안고 시험을 대비하는 모습을 보며,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공부 좀 하지.. 하는 아쉬운 생각을 부모인 나뿐 아니라 아이들 자신들도 하고 있긴 하더라.

사실 통과 기준이 되는 점수는 그렇게 높지 않다. 각 과목별로 낙제점수(F)만 면하면 거의 통과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일 이년에 한 번씩 가뭄에 콩 나듯 졸업시험에서 떨어지는 학생들이 있었고, 그럴 경우 대개는 여태껏 후배였던 아이들과 다시 10학년을 보내지 않고 다른 학교로 전학 가는 방법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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