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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프씨 Mar 06. 2024

도대체 IB가 뭐야?

내 아이가 경험한 IB프로그램 #9

국제학교와 한국 학생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이들이 하나 둘 핸드폰을 갖기 시작하던, 하필 그 손에 애플과 함께 갤럭시 폰이 보이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해외 살이를 하며 한국인이라는 게 자랑스럽게 여겨지던 게 말이다.

외국 아이들이 삼성이라는 이름을 알기 시작하고, 그게 미국 회사가 아니라는 게 알려지면서 한국의 성장을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 둘째 아이가 삼성이 한국 회사가 아니라고 우기는 같은 반 외국 친구와 논쟁을 벌이고 돌아와 '삼성이 한국 것이 맞는지'를 재차 확인하는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불닭볶음면’이 ‘삼양’이라는 이름으로 대박이 났고, 우리의 국민 간식인 떡볶이를 비롯해, 김밥, 김치볶음밥, 어묵, 삼각김밥 같은 다양한 분식들이 어느새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친숙한 메뉴가 되기 시작했다.

비단 음식뿐인가. 언젠가부터 학교 행사 때 영어노래가 아닌 한국 노래가 버젓이 흘러나오고 외국 아이들은 한국어 가사를 그대로 따라 부르며 한국 아이돌 춤을 열심히 따라 췄다. 국뽕에 취하고 싶진 않지만 솔직히 학교 행사 때 그런 모습을 목격하면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이 글을 처음 썼던 몇 년 전에 비해 지금은 더 말할 것도 없이 한류의 유행이 계속되고 있다. 이젠 동남아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까지 한국 음식과 다양한 콘텐츠들이 알려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다양한 명품 브랜드 엠버서더에 한국 배우나 가수가 선정되는 일이 이제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다. 음식과 코스메틱, 음악과 드라마를 넘어 최근 몇 년간 한류의 분위기를 실감하게 하는 또 하나의 모습은 한국인처럼 한국말을 하는 외국인을 마주할 때다. 이곳 인니만 해도 한국의 서울대에 해당하는 국립대(우이:UI) 한국어과에 다니는 현지인들이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취업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업무나 페이 등 여러 면에서 꽤 매력적인 인재들인 셈이다. 작년엔 이곳에서 주최한 문학상 소설부문 우수상에 우이대 한국어과를 나와 한국 하나은행 인니 지부에 채용된 현지인이 수상하는 일이 있었다. 시상식에서 만난 히잡을 쓴 그 친구를 보고 두 번 놀랐는데, 소설을 쓸 정도의 한국어 실력에 한번 그녀의 한국말 발음에 또 한 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마 얼굴을 보지 않고 목소리만 들었더라면 그녀가 외국인이라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거다. 주최 측도 수상작을 선정하고 개별 연락을 하는 가운데 그녀가 현지인임을 알게 되어 꽤나 놀랐단다. 한국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듯,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많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며, 때문에 해외에 살고 있는 교민인 나는 한 번씩 불쑥불쑥 애국심을 닮았지만 조금 다른 감정인 자부심을 느끼곤 한다.


다시 학교로 돌아와, 국제학교에는 말 그대로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이 모여있다. 최근처럼 한류 바람이 거세지 않았던 시절부터 한국 아이들은 학생 수 대비 학업 능력이나 활동 면에서 꽤 잘하는 부류에 속해 오고 있었다. 이곳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중국계 아이들의 경우, 솔직히 성적에 크게 상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곳 인니도 많은 중국인들이 오래전부터 상권을 장악하며 살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졸업 후 해외대학으로 자녀를 유학시킨 후 보통 가업을 물려받게 하기 때문에 해외 대학에 입학 가능할 정도의 성적이면 크게 푸시하지 않는 분위기다. 물론 부모 개인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인도계나 한국계 부모들에 비해 보통은 심하지 않은 학구열을 보인다.


앞에서 언급했듯 한국인의 교육열은 세계 어디에서든 유효하고 그만큼의 결과 또한 뒤따른다 할 수 있다. 필자가 사는 곳도 교민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보니 다양한 한국 레슨 선생님들과 학원이 존재한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현재 한국 교육의 아쉬운 부분이며 가장 아까운 소비를 하고 있는 부분이라 생각되는 사교육이 한국인들이 모여 사는 해외에서도 거의 똑같이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해외에서 한국 국제학교를 보내던 외국 국제학교를 보내던, 많은 한국 부모들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다양한 레슨을 시작한다. 한국에 비해 큰 규모의 학원 형태가 아닌 보통 개인 레슨의 형태로 이루어진다는 것 외에 꽤 비슷하게 사교육을 시작하는 셈이다.(베트남의 경우 한국의 대형학원이 해외지점의 이름으로 한국과 비슷한 규모로 운영되고 있고, 이곳 자카르타에도 중소형 규모의 한국 학원들이 여러 곳 운영 중이다) 피아노, 플루트 등 악기 레슨과 수학, 논술, 중국어, 그리고 영어 레슨까지도 한국 선생님과 진행한다.


영어를 쓰는 국제학교를 다니며 한국 선생님에게 영어 레슨을 받는다는 게 언뜻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큰 아이가 저학년일 때 지인의 자녀들이 한국 선생님과 영어수업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무척 혼란스러웠다. 국제학교에 다니는데 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이었다. 한국 선생님과 레슨을 시키는 부모들의 의견은, 문법을 잡아주는 건 한국 선생님이 가장 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에 비해 외국 선생님들은 한마디로 빡시게 시키질 않는단다. 실제, 원어민 교사임에도 문법이 부족한 이들이 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국어 교사가 한국어 문법을 모두 다 꿰고 있는 건 아닌 이유와 같은 경우다. 말을 한다고 그 언어의 문법을 다 아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외국 샘들의 공부 스타일이 우리가 기대하는 것에 못 미치는 경우도 상당하다. 한국인 선생님들처럼 빡시게 공부를 시키는 원어민 샘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결국 교육열 뜨거운 우리 한국인 부모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덕분에 이곳의 많은 한국 아이들은 국제학교를 다니더라도 한국 교재로 진행하는 수학공부나 영어공부를 따로 배우는 경우가 많다.


큰 애를 졸업시켰고 둘째를 고등학교에 재학시키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사교육에 관련한 의견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저것 다 소화도 하지 못할 레슨을 어려서부터 받아왔던 아이보다 차라리 학교 생활 하나에만 집중한 아이가 탑이 되는 경우도 있고, 그 많은 레슨들을 다 소화하는 아이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필자도 아이가 저학년일 때는 무척 고민스러웠다. 귀가 얇기도 하거니와 나보다 높은 학년 엄마가 하는 말이니 다 맞는 말인 것만 같았다. 실크로드처럼 대부분이 따라간다는 그 길을 나도 밟아야 하는 건가, 고민스러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게 조언을 날리던 엄마들도 그 시간을 처음 겪는 것이었으니 사실 결과와 미래는 모두 불확실한 셈이었다. 내 경우엔 우르르 떼 지어 다니는, 똑같이 처음 그 시간을 맞이하는 엄마들 말고 훨씬 먼저 아이들을 키워본 나이 차이가 많은 지인 분들의 조언에 더 공감했고, 덕분에 많이 흔들리지 않고 후회 없는 뒷바라지를 한 것 같다.


그렇다면 레슨은 필요 없을까.  이것 역시 부모의 교육 철학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다. 전적으로 그렇다, 아니다라고 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의 교육이 필수적인 최소한의 지식을 최대한 교육시키려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면, 그곳에서 채우지 못한 부분에 대한 필요에 의한 사교육은 도움이 되는 게 맞다.

문제는 필요해서가 아니라 남들이 하니까 유행 따르듯 시키는 레슨은 부모의 기대만큼 결과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국제학교의 교실 분위기는 확실히 한국과 다르다. 저학년의 경우가 특히 더 그렇다. 한국의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 집에서 선생님과 부모가 제시하는 길을 가능한 이탈하지 않고 따라 있다면, 이곳의 아이들은 사방이 뚫린 넓은 평지에 그냥 아무렇게나 풀어헤쳐져 있는 모습과 같다. 아이들은 제 자리에 앉지만 내키는 대로 편한 자세를 취하고 선생님도 자유롭게 움직이며 큰 소리로 뭔가를 설명한다. 관심이 생겨 좀 더 가까이에서 듣고 싶은 아이는 선생님 쪽으로 더 다가가기도 하며 별 관심 없는 아이는 크게 집중하지 않고 다른 일, 딴짓을 하기도 한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모두 자기를 쳐다보거나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는다고 아이들을 혼내지 않는다. 원하는 아이는 질문도 하고 더 많은 것들을 알아가겠지만 모든 아이들에게 다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한 아이들이 하는 대로 그냥 두고 본다.

처음엔 저학년 선생님들의 그런 모습이 성의 없어 보이고 무책임해 보이기도 했다. 방임, 방조 같은 단어들이 떠올랐고 편하게 선생님 생활을 한다고까지 느껴졌다. 내 반 학생은 어떻게든 책임진다! 는 느낌의 한국 선생님들과는 정말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애가 영어가 서툴러 성적이 별로인 거 같은데도 영어공부를 더 하라느니 레슨을 하라고도 하지 않고, 되려 레슨 시킬까? 물으면 나중에 나아질 거니까 괜찮다고만 했다.

초등학교는 내내 대체 언제쯤 괜찮아지고 어떻게 괜찮아지는 걸까를 기다리다 지나간 것 같다. '초등학교는 맨날 노는 것처럼 보여'라고 말하던 선배 언니들의 말처럼, 정말 애들이 놀러, 행사를 하러 학교를 다니는 것만 같았다. 헌데 그러다 정말, 나도 모르는 사이 사춘기를 지나더니, 아이는 자기가 해야 할 것을 알아서 찾아 하기 시작하고 심지어 열심히 하기까지 했다. 결국, 할 때가 되니 말이다.


국제학교라는 전제이기에 필자의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시키는 족족 다 잘 받아들여 모든 레슨이 아이의 학업에 도움이 된 경우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아이였다면, 아마 그렇게 시키지 않았어도 충분히 잘했을 아이였을 거라는 게 (여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아이들을 가르쳐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공부에 타고난 아이들은 분명히 있고, 그런 아이는 뭘 시켜도 혹은 아무것도 시키지 않아도 결국 잘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 중에는 그렇게 공부에 타고난 아이만 있는 게 아니다. 말을 잘하는 아이도 있고,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도 있고, 센스가 있는 아이도 있으며, 다양한 손재주를 가진 아이도 있다. 행사가 넘쳐나는 이곳에서 학교생활에 충실히 따라가다 보면 멋 모르고 참가한 행사를 통해 자기도 모르는 자신의 끼를 발견하기도 하고 그것에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선생님을 우리가 아는 단어인 “Teacher”로 부르지 않고 “Sir”이나 “Mis”로 부르는 격식 없는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이 똑같은 길을 치열하게 다퉈 나가야 하는 과정이 아니라 어느 쪽으로 갈지 모르는 다양한 길을 두고 학교라는 장소를 즐기고 있기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예민한 부분이고 중요한 사안인 만큼, 사교육에 대한 견해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임을, 다양한 의견 중의 하나임을 다시 한번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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