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애미

< 1 >

by 타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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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마자 또 데리고 나갔어. 몰러, 뭘 사주신대.”


딸에게 딸의 따님 동선을 보고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정의 방에는 급히 벗어 던진 교복이 구겨져 있었다.


얀띠는 지난주부터 다정의 생일을 기다렸다.

선물 사주겠다는 사람이 받을 사람보다 더 목을 빼고 있었다.

여기 애들이 원래 그런지 얀띠가 유난스러운 건지, 하여간 나는 얀띠가 신기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봐서 그런가 얀띠는 다정을 제 핏줄처럼 대했다.

제 자식인 양. 제 동생인 양. 제 자식도 동생도 심지어 제 나라 사람도 아닌 아이한테 그랬다.


남편 없이 키운 딸년은 성격이 똑 나 같았다.

나처럼 생각보다 말이 먼저였고 그 말들은 죄다 가시투성이였다.

억척스럽고 무식해 뵈는 엄마를 정아는 참 싫어했다.

싫은 티를 감추지 않는 딸년에게 나도 입만 열면 욕부터 뱉었다.

어떻게든 내게서 빨리 벗어나려는 딸에게 나는 제발 그러라고 했다.

알아서 혹이 떨어져 주면 나는 땡큐라고 했다.


대학 입학 후 정아는 그토록 원하던 자취를 시작했다.

설이나 추석처럼 시급을 더 쳐주는 연휴에는 어김없이 알바를 더했다.

하도 연락이 없어 죽었나 싶을 때 귀신같이 한번 들렀다.

그렇게 일 년에 한 번 정도 얼굴을 보고 살았다.

악착같은 것도 닮았는지 취업하기 힘들다는 시대에 졸업하자마자 회사에 들어갔다.

사회생활을 시작하자 그나마 오던 걸음도 하지 않았다.

남의 돈 뺏는 고됨을 배우겠거니, 기대는 내 속 제일 구석진 곳에 처박고 살았다.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온 정아 곁에 한 놈이 서 있었다.

한눈에 알아봤다.

내 딸 힘들게 할 위인이라는 걸.

고집 세 보이는 눈매와 실눈처럼 얇은 입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제껏 먹은 나이가 허튼 거 투성이지만 사람 가리는 눈썰미는 자신 있었다.

다른 놈은 없었냐.

생각만 하려던 게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둘은 좋지 않은 표정을 한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자 보는 눈도 나를 닮았나.

그 말은 승용차가 연기를 뿜고 출발한 후에 나왔다.

그래도 일말의 기대를 해보았다.

나를 닮았어도 에미보다 더 배웠으니 낫지 않을까.

그러길 바랐다.


엄마에게서 그렇게 탈출하고 싶었던 딸년은 결혼하자마자 아예 나라를 떴다.

비행기로 일곱 시간 날아가는 더운 나라로 간다고 했다.

끼고 살던 자식이 아니어선지 별 실감도 나지 않았다.

지긋지긋해 하던 나라를 떠나 딸년이라도 원대로 잘 먹고 잘살기를 바랬다.

그건 진심이었다.


적도에 도착했다는 첫 소식 이후 이년 반 만에 정아에게 연락이 왔다.

와달라고 했다.

비행기 표 보내줄 테니 와줄 수 있겠냐고.

몇 년 만에 들은 딸애 목소리가 생소했다.

콕콕 가슴을 찌르던 투가 아니었다.

낮았고 지친 목소리였다.

짐 쌀 때 뭘 넣어가냐 물었다.

어려서 잘 먹던 자반 고등어가 갑자기 떠올라서였다.

나 입을 여름옷이나 챙겨오라던 정아는 전화를 끊기 전 망설이던 말을 뱉었다.

애기 옷이나 좀 사 오던지.

여자 아기라고 했다.

얼마 전 돌이 지났다고 했다.

이름은 다정이라고 했다.

혹 뗀 줄 알았더니 하나가 더 생겼네.

뇌를 거치지 않은 말이 또 튀어 나왔지만 전화를 끊은 뒤였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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