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기획하고 기록하기
3. 첫 수업에 임하는 강사의 마음
얼마 만에 대면 수업인지. 대면이 일상이었을 때는 비대면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게 어색하고 불편한 일이었다. 코로나 19 팬데믹이 이렇게나 길게 이어질 줄 전혀 예상 못했고 애초 대면 수업으로 신청했다가 코로나가 잠잠해지길 기다려 처음 얼마간은 휴강을 했었다. 그러다 쉽게 지나가는 일이 아닌 걸 깨닫고 부랴부랴 비대면 수업 준비를 신속하게 해 나갔다. 학교에서도 비대면 수업에 관한 지침이 정해진 게 아니라서 각자의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해나갔다. 처음에는 수업의 특성상 비대면 라이브로 실시간 수업을 진행했다가 여러 이유로 비대면 녹화로 수업을 주로 진행해가며 15주 수업을 마쳤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 지났다.
당연히 대면이 주 수업방식이 되면 금방 또 적응할 줄 알았다. 같은 제목의 강의-기본 뼈대는 그대로 활용하더라도 업데이트가 필요한-이고 대면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시간이 훨씬 기니 말이다. 첫날 수업은 강의가 앞으로 어떻게 이루어질지 소개하는 자리다. 강의계획서를 보고 수강신청을 해서 대략의 내용은 알고 있으나 강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접근할지 학생들에게 알려주는 데 의의가 있다. 거기에 더해 실제 첫 번째 강의를 하는 것이다.
강사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없는 시간이다. 하지만 비대면으로 만나는 게 비일상적이라 대면으로 학생들 앞에 서면 마냥 신날 줄 알았다. 하지만 떨리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였다. 3학년 전공 선택이니 대학 시절의 2/3를 비대면으로 보내 비대면이 훨씬 익숙한 친구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게 어떨지 상상이 잘 안 갔다. 비대면 녹화로 할 때는 아무래도 강사가 혼자 일방적으로 말을 해서-대면으로 할 때는 학생들과 상호 소통하는 시간들이 있지만 비대면 녹화는 그런 시간들이 필요 없다- 학교에서는 70분 수업이면 40분 녹화로 대체하게 하였다. 강사가 책임져야 하는 시간이 50분씩, 세 번이니 150분, 즉 2시간 30분이나 된다. 첫날부터 2시간 30분을 꽉 채워서 할지 시간을 대폭 줄여서 할지 고민이 되었다. 학생들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첫날 첫 수업이 강사의 강의 내용뿐만 아니라 강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이라 신경이 더 쓰였다. 현장 친화형 수업이지만 수업의 형식은 빡빡하게 하고 싶었다. 비대면이라 쑥스럽지만 2시간 정도 진행하기로 하고 자료를 준비한다.
강의의 형식은 판서가 아니다. PPT로 문서를 준비해 공연 현장을 이해하기 위한 용어 중심으로 설명하고 실제 사례들을 최대한 담는다. 나 조차도 새로운 지식이 필요하면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고 어느 정도 감을 잡은 후에 관련 도서나 기존의 자료들을 찾아 읽는 형식이다. 거의 모두가 자기 매체를 보유할 수 있게 되면서 누구나 자기가 학습하고 경험한 내용을 누구에게나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의 누구의 어떤 자료라도 찾아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 수업에서 나의 역할은 일정한 관점을 가지고 널리고 널린 자료들을 취사선택해 정리해 접근하게 한다. 매 회차마다 정해진 주제가 있고 주제에 따라 주교재 내용을 위주로 용어 위주로 이론을 설명하고 최근 기사에서 다뤄지는 주요 공연장 혹은 단체의 사례를 소개한다. 이때 소개는 영상 목록들이다.
수업 때는 영상 전체를 상연하는 것이 아니고 도입부를 보여주면서 어떤 의의를 가지고 있는지 설명해 수업 종료 후 추후에 찾아보게 하는 방식을 택한다. 마지막에는 해당 주차의 주제와 관련해 현업에서 활동 중인 창작자(기획자 포함)를 소개한다. 이때 자료는 창작자의 최근 인터뷰 영상이나 지면 인터뷰 내용이다. 마찬가지로 수업시간에 내용 전체를 다루지는 않고 수업의 맥락에서 짚고 싶어 하는 부분을 부연 설명하고 추후에 확인해볼 것을 권한다. 다음 주차 수업 내용과 기타 사소한 공지들을 설명하고 마무리하는 형식으로 해서 2시간 반 정도 진행할 계획이다. 보통 한 수업을 위해 만들어진 자료는 PPT로 40~50매 내외면 적당하다.
오랜만에 첫 수업하러 학교에 갔다. 아직은 코로나 시국이라 수업 때 모두 마스크를 쓰고 진행한다. 짧은 대화를 할 때는 잘 몰랐는데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마스크를 쓰고 서로의 눈만 바라보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짐작이 잘 되질 않았다. 비대면 수업이면 아무래도 한계가 있겠거니 하고 서로 양해가 되는 점이 있었는데 대면은 대면인데 표정을 읽을 수가 없는 게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이었다. 대화를 할 때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비언어가 차지하는 비중도 꽤 높은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준비해 간 내용을 이야기하고 나니 시간이 2시간이 되었다. 인원도 적어서 이번에는 학생 들 얼굴도 익히고 이름도 외워보겠다고 욕심을 냈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 수강 신청 정정기간이 지나고 얼마나 많은 학생들을 만나게 될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수업을 마쳤다. 다음 시간에는 좀 더 자연스럽게 학생들을 대하고 능숙하게 하자고 마음먹게 되었다. 수업 내용도 내용이지만 학생들이 이번 수업의 기획의도에 공감하고 앞으로 14주 동안 즐겁게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좋겠다고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