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처음 울지 않던 날

서로 크는 이야기

by 난나J

어릴 적에 있었던 일 중, 지금까지도 꽤나 선명히 기억에 남는 상황이 있다. 초등학생 때 사촌동생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밤만 되면 울면서 이모와 이모부를 찾으며 울부짖던 그 때, 잘 놀다가도 자기 전에만 그렇게 부모님을 찾아대며 울었고, 결국 그 성화에 못이겨 이모와 이모부가 사촌동생을 데리러 오시곤 하셨다. 그 땐 그저 유별난 사촌동생의 어리광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아이를 낳아보니 그렇진 않았다.


아이들은 대개 아침에 일어났을 때 컨디션이 가장 좋다. 잠도 푹 잤겠다, 에너지는 100% 충전 됐겠다 하루종일 이걸 하며 놀까, 저걸 하며 놀까 상상하면서도 신이 난다. 그런데 아이들의 컨디션이 급 저하되는 시간이 있다. 그건 '졸릴 때'다. 잠이 오는데 자지 못하면 아이들의 짜증은 점점 고조된다. 어린이집에서도 낮잠을 자지 않으면 오후가 될수록 아이들의 짜증이 늘고, 컨디션이 급 저하된다고 한다. 아이들의 낮잠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다른 집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다. 신나게 놀 때는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누가 옆에 있는지 없는지는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 같이 노는 사람만 재밌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밤이 되면, 잠도 와서 컨디션이 급 저하됨과 동시에, 늘 잠자리에서 함께 했던 부모님의 부재를 그제서야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신나게 놀았던 그 공간이 갑자기 낯설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 아이는 갑자기 불안감을 느끼고, 잠이 쉽게 들 수 없기에 자기도 모르게 울면서 부모님을 찾아대는 것이다. 아마 그 때 나의 사촌동생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어린이집도 가지 못하고 집에 있던 '서'가 갑자기 할머니 댁에 가고 싶다고 먼저 이야기를 했다. 나는 사실 보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 번, 할머니 댁에서 자고 온다고 호기롭게 이야기 하던 '서'의 말만 믿고 녀석을 보냈다가 자기 전 눈물바다를 만들어 어쩔 수 없이 녀석을 데려온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늑대가 나타났다~~' 하면서 거짓말 하다가 결국 늑대가 나타났을 때 아무도 오지 않았다던 그 목동처럼 나는 서아가 이번엔 잘 자고 오겠다는 그 말을 사실 믿지 않았다. 이번에도 또 그러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더 앞섰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이를 보낼 때, '서'가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몇 가지의 장치(?)를 해두었다. 하나는 녀석이 늘 안고 자는 이불을 하나 챙겨주면서 "이걸 안고 자면 엄마 아빠가 멀리 있어도 엄마 아빠를 안고 자는 거야. 알겠지?" 하고 이야기 해주었다. 그랬더니 '서'가 "아~ 여기 엄마 아빠 냄새가 나니까 이걸 안으면 엄마 아빠를 안고 자는거야?" 하면서 나의 말을 되받아 주었다. 그래서 난 옳다구나, "그래~ 맞아." 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그랬더니 '서'는 "어? 근데 이불에서 '로' 냄새가 나는데?" 하는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급하게 "응~ 맞어~ 이불을 안고 자면 엄마, 아빠, 로아랑 꼭 껴안고 자는거야.~" 하고 일러주었다. 녀석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서가 밤에 울지 않고 잘 자고 오면 엄마가 칭찬 스티커 줄거야~ 약속 지킬 수 있겠어?" 하고 물었더니 씩씩하게 그럴 수 있다고 이야기 하는 '서'.



그런데 자신 없이 보낸 그 길 끝에, 녀석은 무려 3일 밤을 울.지.않.고. 할머니 댁에서 자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나는 둘째와 단둘이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첫째를 좀 더 그리워할 수 있었으며, 신랑과도 한결 여유로운 육퇴를 누릴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서아가 할머니 댁에서 3일 밤을 잔 덕분에 얻을 수 있는 소득이었다. 이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으랴. 우린 그 시간들을 너무 달콤히 즐겼다. '서'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뿌듯하고 대견하고 감동스러운 그 시간들을 보내면서도 엄마인 나는 또 다른 감정에 살짝 휩싸였었다. '서'가 너무 갑자기 커버린 느낌? 이렇게 '아, 아이가 참 많이 컸구나.' 하는 순간들이 몇 번 오고 나면 '서'는 훌쩍 어른이 되어있을 것 같은 생각. 그러면 나는 참 많이 나이 들어 있을 것이고, 내 손과 나의 시간들을 갈구하는 지금과는 달리 '엄마 저리가~' 하면서 매몰차게 나를 밀어내는 너의 사춘기도 곧 나는 겪게 되겠지. 그렇다면 나는 지금 내게 주어진 너희와의 시간을 좀 더 감사히, 행복하게 보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까지 나의 생각이 미쳤다. 자꾸만 너희를 키우는 순간들 속에서, 내가 포기해야 했던 것들에만 집중해왔던 나의 감각들을 이제 좀 다른 방향으로 뻗어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가 없었을 때, 나에게 없는 것들은 참 많았을 거다. 두 아이의 엄마라는 가슴 충만함, 그리고 그 두 아이를 내가 직접 품고 낳고 키우고 있다는 그 성취감, 누군가를 이렇게나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랑의 성숙, 이기적이었던 나에게서 벗어나 누군가를 위해 나의 무엇을 희생할 수 있는 이타심, 내가 나 자신을 반성적으로 돌아보는 자기성찰도 아마 한참은 못했을 거다. 지금의 나이기에 이 모든 감정들을 만날 수 있었기에, 사실 난 얻은게 참 많은 사람이다.


'서'가 울지 않고 첫 외박(?)에 성공한 날.

2020년 5월 26일. 5살 너의 그 날 덕에 내 맘도 한 뼘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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