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크는 이야기
방금 전까지만 해도, 둘째를 재우고 나오니 오늘 하루의 피로가 다 내 어깨에 앉은 듯했다. 그래서 물을 마시며 오늘은 이만 자야겠다고 작별을 고하는데 글쎄 매일 이렇게 글을 남겨보자고 다짐했던 그게 불현듯 떠오르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나의 잠자리가 있는 방을 지나 내 책상 앞에 갑자기 무슨 힘이 생겼는지 앉아서 노트북을 켰다. 오늘은 꼭 이 말을 해야겠어서. 뭐라도 누구에게라도 풀어놓아야 내 마음은 조금 위로가 될 것 같은데 그걸 신랑이랑 함께 하기엔 아이 둘은 너무 곤히 잠에 빠져있고, 신랑도 게임이라는 가상세계와 접속한 터라. 그 잠깐의 여유를 뺏고 싶진 않다. 나도 내 위로를 찾아야겠어서 써야겠다.
6월 4일 오늘로 둘째 '로'가 이제 13개월이 되었고, 영유아 검진을 받아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 코로나 때문에 잠시 미뤄두었던 검진이지만 시기가 지나면 받을 수 없기에 동네 병원에 전화로 예약을 하면서 1년이 되면 받아야 하는 예방접종이 생각나서 오늘은 예방접종을 하려고 그 병원에 사람이 많이 없는지 확인을 하고 병원으로 나섰다. 요즘엔 예전과 달리 아이들의 예방접종 기록을 담은 수첩을 가지고 아이들의 접종 누락을 막을 수 있는데, 사실 수첩까지 나올 정도라는 것은 예전과 달리 아이들이 맞아야 하는 예방접종의 수가 엄청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1개월 2개월, 4개월, 6개월, 12개월 각 개월마다 아이들이 맞아야 하는 예방접종이 얼마나 많으냐면 한 번 갈 때 4개의 예방접종 주사를 맞고 오는 날도 많다. 오늘이 '로'에게 바로 그런 날이었다.
그런데 가기 전 하나 찜찜한 것이 있었다. 분명 11월에 맞았다고 표시되어 있어야 할 칸에 맞았다는 도장이 찍혀있지 않고, 임시로 연필로 적어둔(실제 접종일에 그 연필로 쓴 것을 지우고 도장을 찍는다.) 글씨가 계속 찜찜했다. 분명 접종을 했다면 그 글씨가 도장으로 바뀌어있어야 하는데 그대로인 상태다. 그런데 내 기억 속에 마지막 예방접종 그 날에 간호사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생생히 기억나는 것이다. '당분간은 맞아야 할 건 없고요. 1년 뒤에 맞으면 돼요~' 수첩 속의 기록보다 내 기억력을 더 신뢰하다니 내가 바보였다. 나의 기억력은 원래 남들보다 좀 더 불완전하다.
병원 간호사 선생님께 물어보니 이게 누락되긴 힘들거라 신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나는 머릿속으로 온갖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로'가 분명 접종한 주사인데 그 주사를 한 번 더 맞는 거 아닌가, 그렇게 되면 우리 '로'에게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걸 어디서건 확인을 해야 하지 않을까. 온갖 생각에 빠진 데다 마스크 때문에 내 이마에는 땀까지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국가에서 의료비 지원을 하는 접종이기 때문에 의사가 직접 접종 전, 전산에 입력을 하고 그 뒤에 접종을 하기 때문에 누락이 되긴 힘든 구조였다. 냉정하게 따져보았을 때, 내 기억력에 좀 혼돈이 왔을 수도 있는 것이다. 생후 4개월 접종 끝났으니 2개월 지난 생후 6개월 때 보자는 얘기를 그렇게 알아들었는지도 모른다. 이 내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예방접종은 나의 몫이었으므로) 애꿎은 신랑에게 전화를 해서 이 사정을 얘기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어보았는데, 아무래도 내가 잘못 기억하는 거 아니겠냐고 한다. 그래 이 말을 듣고 좀 안심하고 싶었던 터다.
생후 12개월 예방접종도 그 이전의 예방접종을 끝내야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누락된 네 개의 예방접종을 진행하기로 했다. 로타바이러스 감염을 막는 먹는 약은 이미 7개월이 지나면 먹어도 소용이 없어서 그 약은 총 3차 중 한 번은 누락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맞은 뒤에 그 이후에 맞아야 하는 접종 중에도 두 개의 예방접종은 시기를 놓쳤기 때문에 맞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난 경황이 없다는 이유로, 아이 둘을 감당해내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로 '로'에게 소홀했던 것은 없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로'는 좋아하려나? 자기가 맞지 않아도 되는 주사가 두 개나 늘어서? 그리고 예전의 우리를 생각해 보면 참 그렇게 많은 예방접종을 하지 않고 자랐지만 더 건강하게 자라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땐 코로나도 없었고, 사스도, 메르스도 없었다. 앞으로의 세상은 바이러스와의 전쟁일 거라고 생물학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느낄 정도인데 '로'를 내가 너무 설렁설렁 키우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일을 할 때도, 늘 어느 하나에 집중하면 누구의 말도 들리지 않고, 내가 하고 있는 그 일을 끝내야만 주변을 돌아볼 수 있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멀티로 처리하는 것은 나의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데 육아는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도 동일한 능력을 요구한다. 내가 화장실에 앉아 있어도, 문을 열고 아이를 향해 방긋방긋 웃어줘야 하고, 첫째 아이의 등원 가방을 싸면서도 둘째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야 한다. 요리를 하면서도 아이의 밥을 먹여야 하고, 그러면서도 첫째 아이 놀이 말에 맞장구도 쳐줘야 한다. 이러니 정신없이 살게 된다. 아이 둘을 돌보느라 나를 돌보는 일은 잠시 미뤄둘 수밖에 없다.
잃어버린 예방접종만큼이나, 잃어버린 나에게 미안하다.
오늘도 나를 잠시 잊고 살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