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크는 이야기
개인적으로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가, 돌도 안된 자신의 아이를 잃었다는 내용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저 내가 상품 정보를 얻기 위해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눌렀을 뿐인데 내게 전해진 이 소식은 나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다. 두 아이가 태어나고 참 많은 상상들을 하게 된다. 이건 아이를 잉태했을 때부터 엄마에게 숙명처럼 주어지는 그런 불안 같은 것인데, 내 아이가 건강하게 잘 커서 태어나 주어야 하는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그건 내 뱃속을 빌려 10달을 살아가야 하는 한 생명체가 무사히 나를 통해 태어나야 한다는 사명감과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엄마로서의 책임감이 버무려져 산부인과에 갈 때마다 참 많은 불안을 겪게 했다. 초음파로 첫 아이를 볼 때 심장소리가 잡히지 않아서 가슴이 덜컹했던 기억부터, 기형아 검사를 할 때에의 불안감, 임신성 당뇨 재검이 떴을 때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있진 않을까 하던 걱정과 임신 기간에 불가피하게 먹었던 약이 아이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쳤을지 모른다는 공포까지 순간순간 다양한 형태로 나를 괴롭혔던 것 같다. 그만큼 아이에 대한 엄마의 모성은 불안과 함께 자라난다.
다행히 두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그때부터 또 다른 걱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일을 할 때의 나는 새벽 세 네시에도 새벽 택시를 타고 집에 귀가하기도 했고, 며칠 밤을 새워서 일을 하다가 쓰러질 것처럼 집에 와서 좀비처럼 일어나 또다시 회사에 가고를 반복한 적도 있었다. 혼자 비행기를 타고 지구 반대편에 어느 나라에서 보름 동안 여행을 다닌 적도 있었지만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참으로 불안한 일들 투성이었다. 우리 엄마 아빠는 나를 믿고 그런 모든 나의 일상들을 받아들여주셨지만 이제 어린이집을 보내는 마음조차도 쉽지가 않다. 어린이집에 처음 가던 18개월 즈음, 다른 친구가 안아주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져서 뒤통수에 피를 보았던 그때부터 아이를 기관에 맡기고도 걱정이 많았다. 혹시나 다치진 않을까, 뭘 먹다가 목에 걸려서 큰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체험활동을 하러 가더라도 그 버스는 사고 없이 무사히 오갈 수 있을까, 무리에서 떨어져 길을 잃어버리진 않을까. 아이를 키워보지 않았다면 좀 과하다 싶을 수도 있는 이런 생각들은 엄마라면 누구나 한 번씩 하는 생각들이다. 아마 겉으로 그 마음을 표현하느냐, 아이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그런 마음들을 숨기며 아이에게 대범한 척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아이들이 매일매일 무사히 건강하게 자라 주는 모습들로 엄마의 불안함은 서서히 잠재워지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지지는 못한다. 어느 순간 작은 불씨 하나로 활활 타오를 수 있는 것이 바로 불안이라는 녀석이다.
그런데 그 불안이 현실이 되었을 때의 그 암담함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나도 부모가 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이 감정들. 그런데 이런 사건, 사고가 기사나 다른 소식으로 전해질 때마다 가슴이 철렁... 하는 이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쉽지 않다.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을 것이고 자신의 운명과 바꾸고도 싶었을 것이다.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어떤 위로도 건넬 수 없는. 일면식도 없지만 마음으로 함께 아팠던 또 다른 어떤 아이들의 부모인 나는, 세상을 떠난 그 아이의 명복을 그저 간절히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