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의 단편
얼굴을 보며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며칠 전 함께 일했던 사람에게서 다급한 듯 연락이 왔다.
전화 여러 번, 문자까지 남겨두었다.
작년에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을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동할 무렵
늘 내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구할 때면 내게 연락이 왔던 예전 동료.
사실 같이 일한 지는 거의 10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라
같이 일 했을 때의 기억조차 희미한 사람이었지만
나는 일을 하고자 했고, 그 사람 역시 일꾼이 필요했기에 우린 그렇게 다시 동료가 되었다.
사실 내가 오래 몸담아 왔던 그 일의 대부분에는
참 어디에 딱 떨어지게 ‘몇 년 차는 얼마!’라고 못 박아둔 것도 없는 데다가
사실 상 ‘부르는 게 값’이라
그 부르는 값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하면 그만, 마음에 들면 취하는 예전부터 해오던 못된 관행이 있다.
그런데 작년 이맘때쯤에 나의 멘털은,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일을 시작하고 싶다!’였기에
나의 연차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페이에도 그냥 하겠다고 대답을 하고 일을 시작했었다.
하지만 루틴 하게 돌아갈 거라던 스케줄은 늘 급하게 바뀌기 일쑤,
때로는 2,3개의 일감을 하루 이틀 사이에 다 후려쳐야 하는 상황까지 생기자
내가 계약서를 안 썼지, 구두계약도 안 했나 싶어 괘씸하고 화가 났다.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놓고도, 원래 그럴 때가 많다,
다음엔 안 그러겠다는 약속에 여러 번 참고 일해왔었다.
그러다 정말 안 되겠다 싶어 그만둔 것이 올 초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급해 보이던 그 사람,
그래도 같이 했던 정이라는 게 있어서
많이 다급한가 보다 하고 전화통화를 하는데
내게 급하게 하나가 펑크 나게 생겼다면서 부탁을 해온다.
급한 자가 우물을 파야 하지 않나,
나도 사실 일을 하게 된 것이 있어 정말 발에 땀나게 일하던 와중이었지만,
그래도 그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며 마음이 좀 약해진다.
그래, 많이 급해 보이니 좀 잘 쳐주면 일을 도와줄까 싶어 페이 협상을 한다.
“…그런데 페이는 얼마예요? 많이 주시면 생각해 볼게요…”
솔직히 일 할 때마다 매번 페이를 묻는 것이 썩 유쾌하진 않다.
사실은 내가 노동을 하고 지급받아야 하는 대가이기에,
내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 노동을 공급받아야 하는 당사자가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원칙 아닌가?
“이 일에 대한 대가는 이 정도인데, 할 수 있나요?”
먼저 묻고 거기에 대한 의사를 묻는 게 맞는 거 아닌가?
그런데 이 바닥은 늘… 그렇게 그 문제에서 날 좌절시킨다.
이 일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들게 한 사건도 사실 그 문제에서 기인한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일, 하지만 정당한 요구도 사치스러움으로 바뀌어버리는 상황을 만드는 구조적 문제점.
그런데 나의 그 질문에 이 사람은 갑자기 헛웃음을 지으며 내게 ‘재는 거냐’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갑자기 그때 그 사건이 떠오르면서 이 사람의 태도에서 불쾌함을 감출 수 없다.
다급해 보이던 그 절박함에서 갑자기 갑의 위치에서 나에게 불쾌감을 표출하는 당신,
그 태도를 보자 너는 그런 대우받으면서 일하냐고 되묻고 싶어 진다.
내게 주는 페이가 16년 차, 아니 이거 저거 육아 경력 빼고 나면 못해도 12년 차는 되는 사람에게 지불하는 정당한 대가냐고.
갑자기 머릿속이 명쾌해지며 정리가 된다.
그리고 단칼에 대답한다.
“그럼 전 못하겠네요.”
그리고 전화를 끊었는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살지 말라고, 되지도 않는 갑질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는,, 그런 조건에도 일을 하기로 했던 그때의 나를 뼈저리게 반성했다.
결국 나 같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제 살 깎아먹기를 하고 있었구나.
그렇게 해주니까, 그들은 그렇게 해도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을 애초에 보여줬어야 맞았구나.
난 또 그렇게 뒤늦게 배우는구나…
그 사람에게 장문의 카톡을 보내고 차단을 누르려다,
그럴 만한 애정도 사라져 버렸기에 그냥 차단을 눌러버렸다.
이제 당신과의 연은 여기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