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말 한 한국인 대학생이 그랜드캐니언에서 추락하여 치료비만 한화 10억이 넘는 금액이 청구되어 가족이 청와대 청원을 올린 사건이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큰 액수가 나올 수 있는 지에 대해서도 놀랐고 마치 모든 사람들이 미국 병원에 가면 그렇게 큰 돈을 지불해야하는 건가 하고 오해하기도 쉬웠다.
일하면서 딱 한번 한국인 환자를 만난적이 있다. 우리 주에서 한국인도 만나기가 힘든데 한국인 환자를 보는 것이 신기했고 그분 고향도 우리 아버지 고향과 거의 같은 동네라 부모님 생각이 났다. 갑작스러운 신경성 질환으로 헬기로 이송되어 메이요 병원 중환자실에서 급성기 치료를 받고 우리 병원으로 오신 분이었다. 중환자실 3주 치료 비용으로 청구된 의료비는 우리 돈 3억이 넘었지만 미군 보험을 가진 덕에 실제 150불을 지불했다고 하셨다.
미국에서는 보험이 없을 경우, 간단한 치료도 꽤나 큰 액수가 청구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선 민간 의료보험을 가지고 있다. 직장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직장과 연계된 의료보험은 매번 급여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사실상 얼마나 내고 있는지 평소에는 인지하기도 어렵다. 매년 직장에서는 본인의 의료보험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묻는다. 나의 경우는 부양 가족이 없기에 single 기준으로 HSA(health saving account) plan 을 선택하여 매번 얼마만큼의 돈을 낼 것인지도 설정했다. 처음에는 의료보험, 안과보험, 치과보험을 선택하고 돈을 얼마씩 낼 것인지도 모두 선택해야 하는 이 과정이 무척 번거롭고 공부해야 할 것 투성이었다. 한편으로는 본인의 건강 상태 혹은 재정 상태에 따라 나에게 맞는 플랜을 선택할 수 있어 합리적인 부분도 있다고 느껴졌다. 여하튼 직장과 연계된 보험으로 내가 매 달 내는 금액은 한국에서 일할 때와 비교했을 때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에서는 일률적인 국민건강보험으로 모두가 비슷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반면, 미국에서는 본인의 회사 보험에 따라, 혹은 같은 직장이라 하더라도 개인 선택에 따라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천차만별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는데,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경우는 근로자 본인과 가족 모두에게 거의 100%에 가까운 의료비가 지급된다고 했다. 이 외에도 일반 음식점, 마트 등에서 근무하는 서비스 업 근로자들도 대부분 직장에서 제공되는 의료 보험을 가지고 있다.
풀타임으로 근무하기 어려운 고령층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 혹은 적절한 생계 유지가 어려운 노숙인 등의 경우는 나라에서 운영되는 보험제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미국에는 국가에서 운영되는 보험으로 크게 Medicare 와 Medicaid 두 가지가 있다. 실제로 내가 병원에서 보는 환자들의 상당수가 medicare 나 medicaid 둘 중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 Medicare :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65세 이상 혹은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연방 보험
나처럼 이민자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수 십년을 산 미국인들에게도 여전히 보험은 어렵고 복잡하다.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개인이 따져보고 보험 상황을 관리하는 건 정말 어렵다. 이 때문에 병원에서는 환자들 마다 그 사람이 가진 보험을 확인하고 연계 병원 혹은 시설로 연결하거나 집에 갔을 때 어떻게 케어해야 하는 지 관리하는 Case manager 들이 있다. 이들은 보험사 혹은 연방 보험과 연락하여 추후 어떻게 병원비를 정산할 것인지 관리한다. 환자들은 퇴원을 하면서 병원에 직접 병원비를 납부하는 것이 아니라, 보험사를 모두 거쳐 최종 정산된 금액을 지급하게 된다. 미국에서는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는 것이 아니라, 보험이 없어서 못간다고 해야 맞다.
전반적인 의료제도가 불편한 점도 정말 많고, 난 의료 민영화인 미국의 상황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미국은 그 어느 나라들 보다 많은 돈을 쓰면서도 건강하지 않은 나라로 악명높다. 그렇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정 수준 이상의 의료혜택을 누리는 데 문제가 없다. 의료보험 체계의 문제도 물론 개선되어야 겠지만, 무엇보다도 전반적인 사람들의 생활방식이나 식습관 등의 개선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