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가의 서랍에는 수십 개의 글들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고요히 잠들어있다. 지난주 휴가 때 쓰다만 고레섬 역사이야기, 은고르에서 만난 한 세네갈래 회계사의 이야기, 고레섬에서 한 시간을 넘게 엉엉 울다 나온 이야기, 앞집 아줌마와 아저씨의 이야기 등등. 글을 쓰기 시작하고 많은 응원과 질타와 호기심을 받았다. 나에게는 평범한 이곳의 삶이 누군가에게는 호기심으로 다가오기도 했고 누군가에게는 질투로 느껴지기도 했나 보다.
세네갈에서는 조심해야 하는 것들이 몇 가지가 있다. 그중에 이쁜 아이를 봐도 이쁘다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신이 질투를 하여 그 아이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이다. 혹여나 아이가 아프기라도 한다면 어떤 외국인이 아이에게 이쁘다고 말해 아이에게 좋지 못한 기운이 들어온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 법칙이 나에게도 전해져 왔나 보다. 이 글들로 나의 평범하고도 고요했던 삶을 질투하는 이 가 있었고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마저 듣기도 했다. 그리고 그 질투로 신이 노하였는지 지난 열흘간 질투를 받았던 이야기들로부터 사람들에게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엄청 많은 사건들이 다가왔다. 큰일이라고 생각하면 큰일이고 작은 일이라고 생각하면 작은 일이겠지만 꽤 충격과 상처로 내게 돌아왔다. 다행스럽게도 꿋꿋하게 씩씩하게 일어서는 중이다. 그리고 또 한 번 말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몹쓸 말을 던진 건 아닌가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수경 언니 말로는 한국에도 옛말에 아이가 너무 이쁘다던가 큰 칭찬을 해주면 신이, 하늘이 질투해 그 아이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단다. 9시간의 시차, 지구 반대편의 나라에서 서로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의 상식선이라던가 삶의 기준이 완전히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새삼스레 다시 한번 느낀다.
흔들렸던 멘탈로 휴가를 냈고 그 휴가는 잠식시켜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의 흔듦을 되려 롤러코스터를 타듯 뒤흔들어져 버렸다. 별일 아닌 것에 화가 나고 신경질이 났고 억울하고 서러웠다. 괜히 휴가를 냈다고 생각했으나 지금 돌아와 생각해보니 잘 흔들고 정리했던 시간들이었음을 인지한다. 흔들리지 않았더라면 그 모든 무거운 짐들을 어깨에 짊어 엉금엉금 기어갈 테지. 가끔은 낯선 곳에서 몇 시간 동안 엉엉 울며 낯선 이에게 위로를 받는 것은 스트레스 해소에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이번 휴가를 마치며 새로운 가족을 들렸다. 처음에 이사를 하며 고양이를 키우려 홈스테이 때 갓 태어난 아기 고양이를 데려오려 했다. 3마리가 태어났는데 3마리를 다 데리고 오자니 내가 너무 부담스럽고 1마리를 데려오자니 그 한 마리가 너무 외로울 것 같고 2마리를 데려오자니 남은 한 마리가 너무 외로울 것 같았다. 결국 어영부영 시간이 흐르자 그 아이들은 자연의 세계에 익숙해져 나의 품에 들어오기엔 너무 커버렸다. 결국 그들의 자연 속 삶을 존중해주기로 하고 가끔 띠에스에 놀러 가 안부를 묻기로 했다. 그렇게 이번에 꽃을 사 오게 된 것이다. 이아이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작고 씩씩한 모습의 꽃망울과 탄탄한 줄기를 가진 이아이들에게 이름을 하나씩 붙여주었다. 꿈, 평화, 사랑. 아무래도 내 꿈이 너무 큰가 보다. 꿈이라고 지어준 아이는 사랑과 평화보다 너무 커 맞는 화분을 만들지 못했다. 사랑과 평화에게 분갈이를 해주는데 흙속에서 작은 애벌레가 나온다. 내가 톡-하고 건드리자 아기처럼 몸을 웅크리는 것이 괜히 설렜다. 그리고 두 번째 화분을 옮기자 손톱만 한 지렁이가 나온다. 이 집에 나 말고 숨 쉬는 무언가가 살고 있다는 것이 괜히 설레고 두근거렸다. 말을 걸어주지도 지켜주지도 못하는 작디작은 아이들이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를 하기도 하고 든든하기도 했다.
어느덧 8개월 차. 8개월 전 이곳에 오기 전에 이것저것 이곳에서의 일이 끝나면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계획이 있었다. 매우 숨 가쁜 지난 8개월이었던 것 같은데 결과물이 뚜렷하지 않으니 괜스레 죄책감이 든다. 결과물이 필요했던 한국에서의 내 직업병인가 보다. 계획했던 몇 가지 중 최근에야 계획을 구체화시키기 시작했고 남은 1년 4개월간 저 아이들과 동거 동락하며 살아있는 삶을 살다가 돌아가면 좋겠다. 오늘의 하얀뚜밥이야기는 누군가를 만난 이야기도 아니고 세네갈의 이야기도 아닌 나만의 8개월 차, 이곳 삶에 대한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