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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콩 Jul 10. 2016

내가 만난 세네갈의 예술가

세네갈 레인 줄 착각하고 있는 하얀 뚜밥의 이야기

 

어릴 때부터 미술을 참 좋아했다. 엄마는 일찍이 학원이 아닌 화실로 나를 보내주셨다. 덕분에 사고의 자유를 키울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화실에서는 내게 '너는 미술에 재능이 없으니 취미를 하도록 해'라는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아 그 뒤로 그림 그리는 것을 오랫동안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의 자유를 키울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나는 수학을 참 좋아하는 편이었다. 언제나 정확하게도 정답이 있었고 그림도 정해진대로만 그렸던 것 같다. 화실에서는 그것을 깨어주기 위해 선생님은 부단히도 노력하셨다. 그림이 아닌 사진처럼 보이기 위해 붓의 터치를 흔적을 남기기 싫어 뭉게 버리는 날이면 그냥 붓의 라인이 살아있어도 괜찮아-라고 해주셔서 그 라인을 살려두는 것이 내 사고로는 너무나 어려웠던 것이다. 재작년쯤인가 퇴사를 하고 집에서 환자놀이를 할 때 오랜만에 창고 안 퀘퀘 묵은 이젤을 꺼내 들었고 스케치북에 조금씩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곳에 와 세네갈의 예술가들을 만날 기회가 꽤 있었다. 띠에스에서 언어교육을 받던 때 남자친구랑 싸우고 헤어짐을 앞둔 상황에서 프랑스어 선생님인 메모나는 나를 한 화실로 이끌었다. 그곳에서 메모나의 어릴 적 친구인 조수를 만났고 그는 내게 스트레스를 풀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그는 내게 종이와 물감들을 주며 마음껏 그려보라 했다. 나와 남자친구의 관계에서 퀘퀘 묵은 감정들이 냄새가 났고 그 감정들을 말리지 않았기 때문에 곰팡이가 슬고 부패해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걸 그리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풀렸고 그날의 쾌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이후로 종종 그의 화실에 놀러 갔고 띠에스 갈 때마다 그의 작업실을 방문해 안부를 주고받는다. 



조수는 다카르 대학을 중퇴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대답을 하지 않는다.  이곳 세네갈래의 그림들은 처음에 보면 '아!'하고 신기한 것들이 많지만 이곳에서 꽤 지내다 보면 비슷비슷한 기법으로 어떤 화가의 그림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조수의 그림이 좋다. 조수의 그림은 누가 봐도 조수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기법이 드러나지 않는 그림 한점 그리고 작은 엽서 같은 그림을 몇 점을 샀다. 프랑스, 이태리 각지에서 전시를 열기도 하고 아시아에서도 누군가가 그의 그림을 왕창 사가지고가 전시회를 열기도 했단다. 나중에 한국에서도 꼭 전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그의 그림에는 아이와 여자만 있는데 남자도 그려서 커플을 그려달라 했더니 조수는 여자가 더 좋아서 안된단다. 그의 기법으로 아련한 커플의 그림도 참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말이다. 


 지난 5월에는 고레섬에서 휴가를 보냈다. 고레섬은 세네갈의 유명한 관광지로 외국인들이 많은 탓인지 그림을 파는 사람도 많고 아티스트도 많다. 그리고 꽤(?) 괜찮은 작품들도 건질만한 것이 많다. 고레섬에서 오르막길 쪽에는 그림 파는 이들로 한가득이다. 나도 이곳에서 그림 몇 점을 구매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 고레섬에서 그림을 보던 날 눈을 반짝이며 모든 그림이 그렇게 다 좋을 수 없었다. 이제 어느덧 9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서인지 막눈이 되어버린 것인지 비슷비슷한 그림에 눈에 틔이는 그림들을 찾기가 어렵다. 작은 부띠끄 같은 곳에서는 액세서리를 팔기 위해 구슬을 꿰고 있는 사람도 보이고 그림을 그리느라 바쁜 사람들도 많다. 사실 처음 고레섬에 대해 글을 쓰게 된다면 당연 역사이야기 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고레섬에서 만난 고레섬에서 태어나고 자라, 고레섬에서 아티스트를 하고 있는 한 친구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고레섬의 그림 파는 오르막길을 끝까지 올라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길 따라가다 보면 한 액세서리를 파는 부띠끄가 있다. 그곳에서 구슬을 꿰는 마담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사진을 찍겠다는 양해를 구해 찍고 나니 귀걸이를 구매하라고 한다. 미안하다며 그녀를 뒤로한 체 올라가버렸다. 그리고 바로 오른쪽에 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창고 같은 게 보인다. 그곳에서는 모래그림 작업이 한창인데 그곳에서 나는 마마를 만났다. 엄마라 마마가 아니라 mame cheikh라는 이름을 가진 멋진 남자다. 처음에 이곳은 뭐하는 곳인가 기웃거리다가 마마를 만났고 그는 작업실로 들어와 앉으라는 소리에 들어가 무턱대고 앉아버렸다. 세네갈은 모래그림을 많이들 하는 편인데 이곳 작업실의 모래그림은 정말로 예뻤다. 


마마는 내게 앉으라 하더니 모래그림을 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주겠다고 한다. 모래그림을 구매하며 내심 궁금하긴 했으나 막상 설명들을 기회가 생기니 괜스레 설레었다. 마마는 마마 포함해 총 5명의 친구들과 함께 작업을 한다. 마마는 간단한 모래그림 작업을 도와주거나 본인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이곳밖에 마마가 그린 그림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다른 친구 한 명은 모래그림을 만드는 일을 하고 다른 친구는 모래그림을 병에 넣는 아트를 한다고 했다. 나머지 둘은 아트 작업도 하지만 대부분 모래 채취를 하고 모래를 만드는 일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마마, 너는 그림 그리는 거 맞아? 말만 하는 것 같은데?"


라고 했더니 작업실내 친구들이 모두 폭소를 했다. 


모래가 많은 이곳에서 아무 모래나 주워다 하면 되는 줄 알았더니 모래도 다 출처(?)가 있었다. 저 명칭들은 모두 모래의 출처들이다. 살리는 다카르 아래쪽 너무 아름다운 바닷가를 인접하고 있는 휴양지다. 또 사하라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하라 사막이다. 이곳은 사하라 사막 이남 바로 인접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께베메르 옆 롱뿔 사막도 잘은 모르겠지만 듣기에 따르면 사하라 사막 사막으로부터 시작된 사막이라고 들었다. 망그로브 나무에서 난 모래, 감비아, 말리, 부르키나 파소 세 국가에서 채집한 모래이고, 모리타니는 세네갈 북부 인접해있는 큰 국가다. 까자망스는 세네갈 남부 지역으로 세네갈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최근 불안정한 정세로 외교부로부터 여행 자제지역으로 판정나있다. 때문에 단원들은 그곳으로 여행가는것이 어려워 졌다. 락로즈는 많이들 알고 있는 세네갈의 핑크호수. 르네상스는 다카르에 르네상스 동상쪽을  말한다. 물론 아무런 모래를 채집해 색소를 섞어서 하는 작품들도 많다. 그래서인지 마마의 작업실 사람들은 그림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났다. 물론 그림값도 엄청나게 차이가 있었다. 


나무 판때기에 목공용 풀처럼 생긴 것을 쓱싹 하고 그리더니 모래를 한 겹 한 겹 끼어 올린다. 너무 빨라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는데 쌓인 모래들을 털어 내고 나니 이내 집 한 채가 완성이 되었다. 저 그림을 어느 정도 말린 후 배경 작업을 또 나눠서 한다고 한다. 아래 사진이 배경까지 완성한 후의 최종본 사진이다. 


나도 몇 점의 모래그림을 가지고 있는데 이곳의 모래그림은 너무 비쌌다. 이곳 세네갈은 대부분의 물건들을 흥정해 구매한다. 심지어 택시도 탑승전 택시기사와 흥정을 보고 난 후 탑승을 한다. 마마에게 그림 몇 점의 가격을 물어보니 내가 구매하던 그림의 가격의 10배에 가깝다. 물론 사이즈가 조금 더 크긴 했지만 말이다. 마마에게 너무 비싸다고 했더니 작품 하는 친구의 그림이라 많이 할인해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 돈이 없으니 다음에 다시 오겠다고 했다. 



그런 나를 마마는 따라나서며 고레섬 소개를 해주고 싶다고 한다.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니 마마는 아무런 페이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를 안심시켜준다. 고레섬 입구에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가이드를 해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고레섬의 곳곳의 명소들을 투어 시켜주고 고레섬 역사에 대해 설명해주고 소정의 가이드비를 받는다. 나는 당연히 마마가 가이드비를 받으려 자처해서 소개해준다고 하는 줄 알았는데 먼저 페이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에 당황스러웠다. 왜 돈을 받지 않냐는 나의 질문에 마마는 말한다. 



나는 이 곳, 고레섬에서 태어나고 자랐어. 지금은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잖아. 내가 정말 사랑하는 곳이야.
네가 이곳에 와주는 것으로도 나는 너무 행복하고 감사해.
그러니 소개를 해주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니겠어?




우리는 한참을 고레섬을 걸어 다니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 공부를 했고 수영을 매우 잘한다고 한다. 성장하면서 한 기술교육원에서 미술을 따로 배우긴 했지만 계속 그림을 그리고 연구를 한다고 한다. 음주와 흡연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휴~~ 어려워 어려워!"


"왜 어려워? 너는 무슬림이라 흡연이나 음주를 하면 안 되잖아?"


"아니야... 안되지.. 근데 예술가는 참.. 힘들어~~"


"그래서 너도 음주나 흡연 해?"


"예술가는... 참 힘들어~~" 


"푸하하 그래서, 너는 흡연이나 음주를 안 하는 거지?"


"아니야.. 안되지만 예술가는 가끔 필요해" 


그리고 그와 한참을 고레섬을 걸어 다녔다. 그는 고레섬을 걸어 다니며 고레섬의 친구들을 소개하여주었다. 지난번에 와서 듣지 못했던 고레섬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고 다 가봤다고 생각했던 곳곳을 소개해주고 안내해 주었다. 고레섬에 오면 프랑스인이나 영국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마마는 포르투갈령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흑인 노예의 역사는 포르투갈로부터 시작된다. 포르투갈 무역상이 흑인 둘을 왕에게 받치며 노예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어떤 책에서는 포르투갈이 흑인 노예의 역사의 시작이라 하지만 또 어떤 책에서는 그 전 아랍인들이 더욱 잔혹하게 노예무역을 했다는 말도 있다. ) 이후 네덜란드에 의해 고레섬이라는 이름이 붙여줬고 프랑스, 영국, 그리고 다시 프랑스가 지배하고 독립선언을 할 수 있었다. 이 고레섬에는 포르투갈인이 최초로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 마마는 데려갔었다. 지금은 어떤 사람이 그곳을 예술공간으로써 쓰고 있어서 함부로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다. 





또, 재미있는 것이 갤러리에서 나오며 그의 엄마를 만났는데 적잖이 당황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바로 구슬을 꿰며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녀가 그의 엄마였던 것이다. 액세서리를 사라고 기여코 나를 잡았지만 나는 떠나버렸었다. 그런 나에게 "저 아이는 착하지 않아. 한참 이야기하더니 사진만 찍고 가버렸어. 액세서리 하나 사라고 했는데도 안 샀어."라고 마마에게 말했다. 그리고 마마는 엄마에게 설명했다. " 빈따가 다음에 다시 오겠대요. 약속했어요."


"마마 너네 엄마가 나보고 친절하지 않대.."라는 나의 말에 


"빈따! 괜찮아 내가 잘 설명했어. 그리고 다음에 다시 올 거잖아?"


"고마워"



 9개월이 되는 시간 동안 가장 큰 변화는 흥정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바득바득 우기며 흥정했던 내가 그들의 친구가 되면서 그렇게 흥정하기가 어려워졌다. 어렵게 모래를 채취하고 또 그것을 작품으로써 승화하고 물론 잘 버는 날도 있을 테지만 어려운 날도 있다. 하지만 그림을 사서 파는 친구들은 정말 당장 필요한 돈 때문에 겨우 본전만 건져서 파는 친구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정말 속사정까지는 알 수 없지만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나의 몫이고 여러분의 몫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주는 사랑에 벅차 흥정할 때 머뭇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래도 이들 또한 나를 친구로 가족으로 받아들이면 내가 준 것 이상으로 나에게 또 주려고 한다. 하루는 상추를 사러 200원어너치 달라고 했더니 선물이라며 내가 산 양보다 더 올려 준 것이었다. 가끔 현지 사정에 대해 무지한 외국인들이 말도 안 되는 값을 치르며 그림을 사거나 택시비를 냄으로 인해 물가가 엄청난 속도로 오르고 있다.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 가까운 거리는 500 세파로 택시 이동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1000 세파 이하의 금액은 택시기사들이 쳐다도 보지 않는다. 더욱이 재미있는 사실은 이곳 현지인들은 특. 히 프랑스인에게 많이도 바가지를 씌운다는 사실이다. 고레섬에서 슬리퍼가 끊어져 당화 해하는 나를 본 네네는 


빈따 나 슬리퍼를 팔아.
이거 원래 프랑스인에게는 10000 세파, 15000 세파에 팔지만
너한테는 2000 세파에 줄게. 얼른 가져가














글쓴이. 김은빈

직업. 영감님처럼 동네 시찰 나가기

부업. 세네갈의 작은 마을 께베메르에서 아이들 요리교육을 하며 지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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