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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콩 Nov 09. 2017

사라지다, 빈.

PETAR 동굴 체험



"빈, 어디있어? 나 너무 무서워. 시내로 널 찾으러 갈게"


사건은 이러했다. 나는 해먹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고 알렉스는 샤워를 하러갔다. 누워있다보니 점점 쌀쌀해지는 기분이었고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무거운 배낭에 여독을 풀고자 산책을 나갔다. 사실 시간이 그렇게 오래됐는지도 몰랐다. 한시간이 넘도록 밖에 돌아다녔던 것이었다. 길거리에서 만난 꼬마들과 통하지 않는 언어로 간신히 인사와 자기소개를 나누고 태어난지 고작6일된 강아지를 껴안고 행복해하던 찬라였다.


"빈!!!"


하고 상기된 알렉스가 터벅터벅 걸어와 화가 잔뜩 나있었다. 나는 그것도모르고 "이것봐, 나 새로운 친구가 생겼어!! 그리고 이 강아지 이름을 내가지어줬어. 빈이라고해!"


알고보니 그는 온 호텔을 돌아다니며 나를 찾아다녔고 사람들에게 나를 보았냐며 (차이니즈 걸이라고 했단다.) 물어다녔단다. 마침 리셉션에 있던 사람도 사라졌고 호텔에 묵은 투숙객은 우리뿐이라 혹시라도 내가 살해당한건 아닐까 납치당한건 아닐까 별에 별생각을 다 했단다. 신발도 배낭도 돈도없이 사라진 내가 무슨 일이생긴건 아닐까하는 두려움끝에 밖으로 나를 찾아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단다. 멀지않은곳에 나는 10대 꼬마들과 갓 태어난 강아지를 부둥켜안고 놀고있었던 것이다. 사실 오전에 동굴탐험을 했는데 다 재미있고 다 즐거웠는데 소통의 세상이 알렉스 뿐이라는 것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고있던 찬라였다. 언어가 안된다는 것이 이렇게 스트레스가 될지 몰랐다. 알렉스가 많은 통역을 해 주었지만 동굴에서 역사와 과학적인 용어에서 내게 한계가 있었고 포르투갈어도 못하는 내가 영어에서까지 스트레스를 받으니 세상과 소통을 하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습관처럼 포기하기위한 핑계거리를 찾고있었다. 이 여행이 의미가 있는것인지, 누군가에게 크게 의존하고 스스로 사고하기보다 따라다니는 것에 대해 스스로 용납할 수 있는 여행인지, 민폐만 되는 여행은 아닌지, 오로지 내것이 될 수 있는 여행인지. 갖은 부정적인 생각이 떠올랐고 이대로 4개월의 여행을 진행해도 되는지에 대한 고민도 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어를 배운덕에 듣고 읽고 유추하는것까지는 되지만 소통이 안된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수없이 갑갑했다. 특히 옆에 네이티브 스피커가 있으니 더욱이 나의 바디랭기지는 무용지물이었다. 나는 스스로 유용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때 행복을 느끼곤 하는데 무용지물이 된 기분이었다. 여하튼 그것이 버릇처럼 포기의 길로 가는 여럿 이유들을 찾으며 안되겠다고 생각했고 산책을 시작 했던 것이다. 알렉스를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된 기분이었고 꼬마친구들을 만나게 된것이었다. 내가 포르투갈어로 할수있는 말은 내이름을 겨우 소개하는 것과 귀여워, 아름다워,   강아지 등 갓난아기 정도에 해당했다. 겨우  내가 알아낸 것은 아이들이 10살이라는것, 멜리사, 호사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것, 강아지가 태어난지6일되었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알렉스가 나를 찾았을때는 30살의 성인이 아닌 10살짜리 꼬마가 된 기분이었다.


"나 어린애 아니야!"


그는 내가 아무것도 할수없다는 것에대해 좌절하는 것을 알곤 본인이 한국에서 여행하더라도 무조건 나를 따를 수 밖에 없으며 아기가 될 수 밖에 없을것이라고 했다. 이곳은 본인의 나라고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본인의 언어에 대해 우린 충분한 정보를 얻을수 있는 것이니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입장을 바꿔보니 나도 전혀 모르는 시골마을에서 샤워하는 사이 알렉스가 고작 플리플랍을 끌고 돈도 없이 핸드폰도 안되는데 한시간이 넘도록 사라지면 많이 걱정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이 스페인이었고 누가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는 곳이었다. 이번 여행도 나는 누군가에게 의존하는것이 너무나 힘들었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함께하는 것이다. 의존하는 것도 누군가가 나에게 의존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는 나에게 이번 여정의 과제는 함께하는 것을 배우는 것인가 보다.



 나는 어떠한 언어로써 정의해 나를 가두는 것을 그닥 즐기지 않는다. 나는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이야. 라고 정의해버리면 도시나 신문물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서 모호한 표현을 즐기는 편이다. 아주 좋아한다는 것은 그만큼 나에게 큰 의미로써 다가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야 라고 정의하는 것도 나에겐 큰 의미인 것이다. 때때로 이것들이 아주 나를 모호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하지만 욕심이 지나친 탓에 한가지를 선택하는것은 너무 힘든 일인 것이다. 확실한것은 나는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 인위적이지 않고 누군가의 의도적이지 않은 것을 말한다. 우리는 상파울로에서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 PETAR로 향했다. 60년전 계획에 의해서 만들어진 공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울창한 나무들이 자연스러웠다. 2년간 벌거숭이 샛 노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만 보다와서 그런지 푸르른 나무들이 새롭게만 느껴졌다. 이곳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를 가지고 오는 곳인데 우리의 가이드 말에 의하면 그녀는 20년동안 세번의 뚜벅이 가이드를 했단다. 그렇다, 우리는 탑3에 속했던 것이다! 더구나 포르투갈어를 알아듣지도 하지도 못하는 동양여자애와 함께! 축하한다는 나의 말에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이곳 국립공원은 약 60년전에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곳이고 30년 전에는 도로에 나무가 없었다고 한다. 내가 자라는 동안 울창한 이 나무들도 열심히 자랐던 것이다.


첫번째는 강이 흐르고있는 동굴이었다. 7km의 큰 동굴은 으스스 하기도하면서 괴물들의 치아같은 형상을 하고 있기도하고 하늘하늘한 스카프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도 했다. 하늘하늘한 스카프같은 돌은 툭툭 치면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동굴의 세계는 길고도 높고 어둠이 가득했다. 우리는 고작 800m의 깊이만 들어갔는데 렌턴을 끄고나니 눈을 뜨고있어도 감은것처럼 그 어떤 빛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앞을 보지못하는 장님의 느낌이 이런걸까? 라고 물었더니 가이드 안나는 앞을보지못하는 사람은 이곳에오면 아주 쉬운길이라고 했다. 평생을 이 암흑속에 갖혀산다고 생각해보니 마음이 너무 슬펐다. 그렇게 첫번째 동굴을 빠져나와 세상의 소리와 빛, 바람소리, 새소리, 나무들의 잎들이 서로 부딪히며 세상으로 돌아온것을 환영하는 것 같았다.


두번째 동굴은 조금 다른 느낌을 가져다 줬다. 언덕을 오르고 올라 도착한 동굴은 꽤 높은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은 수백년 전 혹은 수억년 전 폭포가 흐르던 곳이라고 한다. 또 이후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곳이기도 한단다. 그 동굴안에는 광장처럼 펼쳐진 작은 공간이 있었는데 세번의 결혼식을 올린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다고 상상해보니 너무 아름답고 경이로웠을 것 같았다.

입구에는 과거 사람들이 살았을 법한 흔적이 있었는 데 바로 불을 피운 흔적이었다. 바닥에는 흙이나 모래가 아닌 재로 이루어져 있었고 원시인들이 살았을 모습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우리는 또다시 깊은곳으로 가 명상을 하고 음악을 들었다. 두번째 동굴을 빠져나와 기분이 계속 다운되는 기분이 들었다. 첫번째 동굴은 아주 깨끗하고 자연에 파뭍힌 느낌이었다면 두번째 동굴은 무언가 사람의 손이 닿은 귀신의집에 다녀온 기분이었다. 분명 동굴속에서 들었던 Lemon tree는 내게 아늑하고 따듯한 기분을 주었는데 빠져나온 이후론 기분이 상쾌하지 않았다. 알렉스에게 이런 기분을 설명했더니 그 동굴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것이라고 했다. 분명 그곳에서 불을 피우는 것이 쉽지않았을 것이고 불을 끄지않은 채 계속 피웠을 것이란다. 그로인해 산소부족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갔을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또한 그 동굴은 무너지면서 생긴 돌들이 많았는데 그 또한 많은 사람들이 사망한 이유중 하나일것이라는 추측을 했다. PETAR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동굴이 있는데 그곳은 들어갈수는 없고 사진으로만 봤는데 너무나 멋있었다.


긴 세월의 흔적을 보다보니  그 세월의 작고 작은 지층을 함께했었다는 것이 큰 의미이기도 하지만 나의 삶은 아주 작고 또 작은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기 위한 나의 방법은 솔직해지는 것이다. 솔직하게 내가 느낀 감정들을 알렉스에게 털어놓고나니 한결 마음이 좋아졌다. 두려워하는것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 같다. 상파울로에서 영화를 한편 봤는데 제목은 the good lie. 한국에서는 뷰티풀라이라고 개봉했었던 것 같다. 여튼 마지막에 딱 한줄의 문장이 나오는데 "빨리가려면 혼자가고 멀리가려면 함께가라"라고 했다. 혼자 하면 변수계산이 쉬운데 함께하면 변수를 계산조차 할 수 없는 것이 나의 두려움이 오는 것이다. 더이상 계산하지말고 그저 느끼는데로 마주하는데로 스쳐지나가듯 지내야겠다고 생각 했다.


빨리가려면 혼자가고 멀리가려면 함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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