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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콩 Nov 24. 2017

브라질속 세계여행(1) - 한국편

봉헤이치로에서 만난 코브라질리언.

1. 봉헤이치로

브라질에 도착해서 가장 많이 들은말은 봉헤이치로를 꼭 가보라는 말이었다. 봉헤이치로는 일종의 코리안타운으로 여럿 한국인들이 모여 살고있는 곳이다. 봉헤이치로에서 많은 한국인들이 패션, 드레스 등 각종 의류들을 판매하고 있는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봉헤이치로로 향하는날 친구의 할아버지는 내게 몇가지 미션을 주셨다. 다녀와서 봉헤이치로가 어땠는지 꼭 감상평을 들려주는 것 이었다. 특히 수십년전엔 브라질이 한국보다 더 잘 살았었는데 이젠 아니라며 그들의 이야기를 꼭 들어보라 하셨다. 봉헤이치 근처에 한 공원에서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어르신을 만나 한국인이냐고 여쭤 봤더니 한국인이셨다. 봉헤이치로가 어디냐, 출구가 어디냐 등 이런저런 질문끝에 공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공원을 빠져나오자말자 사거리 길건너편 한 슈퍼앞 테이블에 있는 노인 두분을 만날 수 있었고 또 길을 물어보며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브라질로 오시게 되셨어요?"


그들은 30-40년 전 쯤 파라과이로 넘어왔다고 했다. 당시에 박정희 정권시절이었는데 그분들 말에 의하면 당시 돈을버는 것이 너무힘이들었고 그래서 이민을 결심하게 되었다고하신다. 브라질은 이민을 잘 받아주지 않았고 파라과이에 있다가 브라질에 올 기회가 생겨서 넘어오게 되셨다고 한다. 매번 알렉스가 통역을 해주거나 나는 따라가기만 했는데 브라질 속에서 한국여행이 시작되었다. 어르신들은 딸같다며 의자가져와 앉으라고 하셨고 어르신들께서는 시원한 마실것들을 권해주셨다. 브라질 생활에 너무나 만족하며 살고계시는 것 같았다. 또 한국사회가 발전됨에 따라 사람들이 삭막해지고 어려워지는 것을 한국갈때마다 느끼신다고 한다. 나 또한 그부분에 있어서 너무나 공감했다. 지난해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던 때 한국에 방문했었는데 가지고있는 현금이 없었고 현금인출기조차 찾지못했다. 유심카드를 준비해가지 않아 전화기를 개통하지도 못했다. 급하게 카드로 리무진버스를 결제해 대구로 내려갔는데 다들 가진 전화기를 빌리는데 그렇게 힘이들수가없었다. 한겨울에 나의 초라한 냉장고바지와 에메랄드 바람막이도 한몫했을것이다. 그때가 눈이 억세게 내리던 날이었다. 보이스피싱이나 사기 등의 문제와 나의 행색들 등 여러가지이유로 나는 가족들에게 전화하기까지가 하늘에 별따기였던 기억이 났다. 어르신들도 강남역에서 길물어보려 했는데 사람들이 들은척도안하고 지나가더란 이야기를 하셨다. 발전을 대가로 정을 내어준 기분이었다. 그분들은 어깨넘어로 포르투갈어를 배우셨기 때문에 잘 모른다고 하셨다. 현지인인 알렉스와 대화가 너무나 어려웠고 내가 영어로 통역해주어서야 이해를 할 수 있었다.


"30년을 넘어도 학교를 다닌게 아니라 일하며 어깨넘어로 보며 배워서 포르투갈언어를 잘 못해."


브라질삶에 대해 만족하냐고 여쭈어봤더니 너무나 만족하신다고 하셨다. 특히 브라질리언들의 오래된 것을 잘 보존하는 것이 너무 좋다고 하셨다. 수십년, 수백년된 좋은 건물들을 잘 보존, 활용한다며 무섭게 변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갔을 때 가족들은 모두 나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브라질은 너무 가난하고 중요한걸 허물어버리는것에 대해 화나고있었다며 서로의 견해에 대해 신기해 하셨다. 세상 사람들은 빨리변하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지나가고나면 후회하게 되나보다. 가진것이 많아도 지나간것에 대해 후회하는 세상이다.

어르신들은 봉헤이치로에 오뚜기와 롯데가 있다며 꼭 가보라하셨고 나는 오뚜기 기업과 롯데기업을 생각했는데 그곳은 한인마트 이름이었다. 출발전 꼭 한국과자를 하나 사먹겠다고 다짐했지만 너무비싼가격에 포기했었다. 그리고 지금 플로리아노폴리스라는 지역에서 나는 한국과자를 뜯고 있다. 내가 세네갈에서 브라질로향하던 날 친구는 브라질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고 내가 플로리안폴리스로 도착했을 당시 그와 그의 어머니의 여행에 동행해준 다솜이 준비한 한국과자가 선물로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빈! 우리 여기서 수행해야할 미션이 있어!"


갑자기 알렉스가 어디선가 들은적이 있다며 봉헤이치로에있는 모든 혹은 대부분의 상점들은 고양이를 키운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이유가 궁금하다며 물어볼만한 상점으로 들어가 한국어로 물었다.


"저는 한국에서 온 여행자인데요, 친구가 그러는데 대부분 봉헤이치로에있는 상점들은 고양이를 키운다고 하더라구요. 왜 그런가요?"



"하하, 쥐때문이에요. 그냥 고양이가 좋아서 키우는 사람도 많겠지만 우리는 쥐때문이에요~ "


아! 하고 우리는 탄성을 질렀다. 우기가 끝나고나면 쥐가 자주출몰하는데 고양이를 키우고나선 쥐의 등장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 상점은 너무나 바빠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고 봉헤이치로의 패션거리를 추천해주셨다. 너무나 예쁘고 세련된 옷들이 많았는데 백패커의 가방은 너무나 무겁고 주머니는 너무 가벼운덕분에 쇼핑하는 맛이 너무나 슬퍼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브라질에서 내가 받은 동양인에 대한 생각은 첫번째로 아주 똑똑하다는 것이고 두번째로 아주 동안이라는 것이다. 여럿 인종이 살고 있고 인종차별이 별로없다고들 하는데 그에비해 인종차별이 아주심하다고 생각 했던 이유들이 있었다. 브라질은 밖에서 바라보던 시선과 안에들어와 들여다보는 나의 시선이 아주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 유럽편에서 이야기해볼 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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