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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라이닝 May 24. 2022

누구나 자살사별자가 될 수 있다

살아남은 자의 변명

누구나 자살사별자가 될 수 있다.

20여 년 전 내가 그랬고 살아갈수록 곁에 자살사별자가 늘었다.

내 곁을 떠나간 이를 충분히 애도하는 시간을 거치지 않으면 삶의 어느 길에서든 턱턱 넘어질 수 있다.

나는 지금도 12월만 되면 먼 곳에, 도망 가고 싶어진다.


20여 년 전이었다. 12월 초 오래 함께 지냈던 친구가 자살을 했고 그 이후 내 삶의 방향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굳이 애써 뭘 해, 이렇게 살아서 뭐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무기력해지기 일쑤였다. 뜬금없이 눈물이 났고 틈만 나면 모국어가 통하지 않는 곳으로 도망을 갔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다가도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한국말이 들리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곳에서 은신하듯 걷고 또 걸었다. 걷고 또 걸으면서 떠난 친구가 왜 그랬을까를 생각했다. 이제야 외로운 타국에서 돌아왔는데, 아직 부모님이 저렇게 살아 계신데 왜 그랬을까.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그랬을까. '왜'라는 말이 늘 수수께끼처럼 나를 맴돌았다.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부터 장례가 끝난 이후, 나는 그 친구가 보낸 '신호'를 캐치하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오랫만에 만나 술을 마신 날, 친구는 잠을 잘 못 자고, 목욕탕에 가면 자신과 노인들밖에 없다는 말, 난 뭐하는 사람이지라며 눈물을 보였다. 나는 다 잘될 거라는 무책임한 말로 위로했고 그게 두고두고 후회가 됐다. 두통과 불면에 시달리는 사람한테 푹 좀 자라는 바보 같은 말을 한 내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다.   

자살사별자들이 흔히 겪는 것이 죄책감과 무기력이라는 이야기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친구가 떠난 뒤 무기력은 예고없이 찾아왔다. 일을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멍해졌다. 그리고 그때쯤 나 역시 다른 친구들이 연락이 와도 받지 않았다. 구구절절하게 기승전결로 지금 상황을 설명하기가 귀찮았다. 그저 숨고 심었다.

그러다 2년 정도 지났을까. 추도식에서 우연히 그 친구가 마지막에 구급대원에게 했다는 말을 들었다. '저 그냥 이대로 죽게 해주세요'라는 말이었다. 그 이후 왜 그랬을까라는 원망보다는 '그래, 진짜 그 친구의 선택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선택을 존중하기로 하니 오히려 더 담담해졌다. '그래, 여기서 살기보다 이곳에 머물러 있지 않는 걸 선택했다'고 생각하니 시끄러운 마음이 잦아들었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서 살아남기로 마음먹었다. 웃긴 말이지만 '네 몫까지 잘 살아볼게'라며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도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네 몫까지라니. 존재가 사라지면 그 몫도 사라지는 것. 부재를 견뎌야 하는 건 살아남은 자들이었다. 잡지 못했고 그 친구의 신호를 캐치 못했다는 죄책감에 처음에는 친구의 부모님도 가끔 찾아뵙고 전화도 드렸다. 명절이 되면 과일도 보내드리고 어머님과 같이 시내에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했다. 그러길 한두 해, 어느 날 어머님이 힘들게 말씀하셨다.


"이제 너도 잘 살아야지. 연락도 자주 하지 말고, 나는 니 연락이 오면 우리 아들이 그렇게 생각이 나"

이 말씀에 마음 아파도, 어머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겨울만 되면 시린 건 어쩔 수 없다. 알고 지낸 시간 8년보다 이제 떠나고 나서의 시간이 배로 더 길어졌다. 내 나이도 그가 떠났을 때보다 훨씬 많아졌다. 살아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때 우울증이라면 병원에 가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말이라도 해볼걸 하는 후회는 남는다.  만일 내가 그때 '왜 그래 , 병원에는 가봤어?' 라고 물었다면 결론은 달라졌을까?

물 위를 긋고 지나가는 새 그림자


우리는 산다는 게 기쁨은 짧고 슬픔은 길다는 걸 안다. 기쁨은 순간의 상태임을 살면서 깨닫는다. 시간이 흐르고 사랑했던 사람들도 하나둘 세상과 작별한다. 하지만 그 작별이 교통사고처럼 예상치 못한 것이라면 오래 상처를 남긴다. 남겨진 자들의 슬픔도 사라지지는 않는다. 누군가를 잃은 슬픔은 나와 함께 늘 공존한다. 그럼에도 살아진다. 살아진다는 거 자체가 미안해 괴롭던 날들도 있었지만 살아진다. 이기적이게도.  


자살사별자가 되었지만 그 사람의 죽음을 인정하고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몫까지, 그 사람이 살려고 했던 시간까지 살아야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에 닿았다. 비난받을 수도 있다 생각했다. 이제 오랜 시간이 흐르니 조금은 한발 떨어져 생각해보게 된다.


그가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누군가와 가정도 꾸리고 명절만 되면 시달리는 양가 문제, 돈 문제, 아이 양육 때문에 부대끼며 살아갈 것이다. 지리멸렬한, 징글징글한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술도 진탕 먹는 날도 있을 것이다. 집값에 애들 문제, 자잘한 문제에 또 고개를 꺾을 수도 있으리라.


그럼에도 가끔, 보고 싶어진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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