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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라이닝 Jan 06. 2023

넋 놓고 있다 마흔 다섯

눈물, 콧물 빼는 중년입성기

마흔 다섯이 되었다. 정신줄 놓고 있다 훌쩍 마흔 다섯이 되어 버렸다. 


마흔 다섯 즈음 되면 없던 서사가 생긴다. 한 사람이 태어나 한 사람을 만나 헤어지고 다른 이를 또 만나 결혼하거나 결혼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거나 안 낳거나 가족이 아프거나 아프지 않거나.. 살면 살수록 여러 선택지에 따른 서사가 생겨난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서른, 마흔이 되었다. 매일 다니던 회사에서의 생활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했는데 점점 회사에서는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진다. 위에서 누르고 밑에서 찌르니 버티지 못해 나온 회사였다. 매일 출근을 해야 한다는 게 끔찍했다. 심장이 뛰고 숨이 가빠져 죽을 것 같아 23년 직장생활을 마무리했다.  

 

나와보니 세상 어디에도 내 자리가 없다는 상실감에 또 아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덜컥 눈물, 콧물 빼는 중년이 되었다. 내가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아이는 큰다. 

아이는 커가는데 내가 아프지 않으면 친구들 하나둘 아프기 시작하고, 부모님이 큰병에 걸리시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는 어린데 회사에서는 점점 책임이 커지고 설 자리는 점점 작아졌다. 거기다 아픈 아버지를 모시고 큰 병원에 이래저래 다니다 보면 일도 가족도 점점 버거워지는 시간이 찾아왔다. MRI, 뼈 스캔, 방사선 치료, 항암, 호르몬 치료 등 병원에서의 대기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그만큼 환자인 아버지의 짜증과 예민지수는 늘어간다. 둘러보니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온 내 또래들이 많다. 볼 때마다 한번씩 커피 한 잔씩 사주고 싶은 오지랖이 발동하기도 한다;;

어제 늦은 저녁, 남편은 회사가 매각이 되었다고 말했다. 

2023년은 전 지구적으로 회사원들의 고용 한파가 예상된다는 뉴스에 내 남편의 회사만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공사의 계열사였고 작년에 최대의 실적을 낸 곳이었기에 내가 아이와 아픈 아빠를 돌볼 동안 버텨줄 것이라 자신만만하게 생각했던 차였다. 모회사가 휘청이면서 알짜 계열사들을 하나둘씩 팔기 시작했고 그 첫 타자가 남편의 회사였다. 그 정도로 남편의 회사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있음을 눈치 채지 못했다. 반주뿐만 아니라 매일 저녁에 독한 술을 마실 때까지도 남편이 힘들어한다는 걸 눈치 채지 못했다. 

 

매일 아침 6시 반에 집에 나서 15년째 몸담은 회사였기에 남편의 상실감은 말로 다 못할 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곧 희망퇴직이 시작될 거고 3개월치를 받느냐, 6개월치를 받느냐를 이야기하다 출근했다. 나는 '못 받을 수도 있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하지 않았다. 

얼마 동안 출근은 이어질 것이다. 희망퇴직과 실업급여, 쓰지 못한 육아휴직, 사업자등록, 편의점 사업주, 무인 가게, 대출, 학원비 등 밑도 끝도 없는 단어들이 머리를 스쳤다.   


우연히 보게 된 김미경 강사의 강의가 생각났다. 2,30대는 실패라는 구슬을 꿰어 실패창고에 두고 40대에 꺼내 쓰며 성공에 이르고 그 경험이 50대를 빛나게 할 것이라고. 돌아보니 마흔다섯이 된 지금, 실패는 잦았고 그 실패 덕분에 생긴 상처가 오늘을 살게 해주기도 했다. 

이번엔 실패가 아닌 잠시멈춤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잠시 멈추고 쉰이 된 남편이 산에도 가고 늦은 육아에 지친 몸도 좀 쉬어가라 하기로 했다. 이미 벌어진 일에 더이상 미련두지 않는 게 더 살기 편하다는 위안을 하며. 뭐 먹고 살지, 어떻게 살아갈지를 더 고민해야 하는 마흔다섯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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