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셋째주, 본격적인 공부 시~작.
은채는 이제 몇 권의 책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전까지는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이었죠. 학교의 구조를 파악하고 공부시간에 앉아 있는 법과 쉬는 시간에 쉬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줄 서는 법도 배웠죠.
돌봄 시간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저 멍하니 엄마가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더군요. 미술도 하고, 체육도 하고 나름의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이 주차 수요일에 데리러 갔을 때 은채와 돌봄 교실 친구들은 아직 운동장에 있었습니다. 뭘 하나 봤더니 줄 간격을 맞추는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남자들이 훈련소를 가면 제일 먼저 배우는 게 제식 훈련이듯이 아이들도 줄을 서고 간격을 맞추고 같은 박자로 걷는 걸 배운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좋게 보면 어린이이면서 동시에 학생의 자세를 배우는 것이고 부정적으로 보면 조직에 걸 맞는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는 것이겠죠. 은채한테 물어보니 복도에서 어느 쪽으로 걸어야 하는지, 뛰어선 안 된다는 것, 책걸상에 바로 앉는 법도 배웠습니다.
아내가 수요일 저녁에 지유 얘기를 해줬습니다. 은채 친구 중에서 지유는 두 명인데 한명은 최근까지 다닌 하늘빛 어린이집 친구이자 현재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는 전지유고, 한 친구는 그 전에 다녔던 호은 어린이집에서 알게 돼서 쭉 친구로 지내다가 이젠 같은 학교 친구까지 된 박지유입니다. 이날 얘기는 박지유 얘기였죠. 엄마끼리도 친하니까요. 지유네 반은 칭찬 스티커를 준다고 했습니다. 수업시간에 바르게 앉아 있거나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친구에게 말입니다. 지유는 이 스티커에 욕심이 나서 열심히 선생님 말씀을 잘 들었고 덕분에 열두 장이나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 얘기를 들은 은채가 자기 반도 받는다면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선생님이 바른 자세로 앉아 있는 사람, 수업 잘 듣는 사람 말하면서 칭찬할 때 다른 친구 이름과 함께 항상 내 이름을 부르면서 칭찬해 줘. 나도 칭찬 스티커 받았어.”
그래서 제가 물었죠.
“어떻게 앉아 있는데?”
그러자 은채는 자세를 흉내 내며 바른 자세를 설명했습니다.
“엉덩이 뒤로 착 붙이고, 허리 바로 세우고, 책상하고는 주먹 하나 들어갈 정도로 떨어지고. 이렇게.”
은채는 원래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귀담아 잘 들어 외우고 그걸 그대로 실천하는 데는 선수입니다. 자유로운 영혼인 아빠의 입장에서는 고지식해보이기도 하지만 선생님이나 엄마 입장에서 보면 둘도 없는 모범생이죠.
어린이집에서도 그랬습니다. 발표회가 있어서 노래와 율동을 몇 달 동안 배워야하면 은채는 그 노래와 율동을 유튜브로 찾아 달라고 해서 혼자 보고 외우고, 며칠 만에 다 외워서 집에서 혼자 미리 공연을 하곤 했습니다. 7세반이던 시절에는 부산시민회관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저도 직접 가서 봤지만, 그때 너무나 열심히 해서 선생님이 고맙다고 할 정도였죠. 이 행사가 노인복지관에 계신 노인분과 관계자분들을 위한 위로 잔치였는데 은채와 친구들이 공연을 잘 한 덕분에 연말까지 노인 단체나 요양원에 여러 번 공연을 가야했죠. 몰려드는 출연 요청에 원장 선생님이 정중히 사양하며 스케줄을 조절해서 말이죠.
이런 은채를 보는 전 늘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왜 저렇게까지 잘 하려고 할까?’
발표회에 가 보면 동작도 적당히 하고 선생님 눈치, 옆에 친구 눈치 보면서 편하게 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마치 ‘내가 이건 잘 한다고 무슨 떡이 나오나? 내가 아이돌이 되겠냐.’하는 속마음을 온 몸으로 표현하는 것만 같죠. 그런 친구들을 보면 왠지 제 과 같아서 쿨 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은채는 이 무대가 데뷔 무대인 아이돌처럼 전력을 다해서 했습니다. 첫 번째 발표회였던 5세반일 때부터 그랬습니다. 그래서 은채가 뭘 배우겠다고 하면 전 그걸 배우는데 드는 돈 걱정 보다, 너무 열심히 하지는 않을까, 또 열심히 해도 안 되면 너무 좌절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서곤 했습니다. 이때까지는 자기가 열심히 하면 웬만한 것은 다 잘해 왔는데 열심히 해도 안 된다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그 좌절감은 의외로 클 테니까요.
은채는 학교생활도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바르게 앉고, 급식 주는 대로 안남기고 다 먹고, 숙제 내주는 건 집에 오자마자 다 하고, 일곱 시 알람에 맞춰 일어나기 위해 아홉시쯤이면 잠자리에 들고 말이죠. 진짜 이대로만 크면 제 평생 만나지 못했던 수재, 모범생 한명을 이 세상에 내놓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전 은채가 좀 편해지길 바라왔습니다.
어린이집 7세반에 올라갈 때 부모님 전체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제 7세가 되고 학교 갈 준비를 해야 하니 숙제를 좀 내줄지 여부를 부모님께 물었습니다. 물론 전 됐다고 사양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채는 그 해 하반기부터 시작한 매일의 받아쓰기에서 고득점을 맞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어쩌다 한두 개 틀리면 상심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그 친구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텐데 자기만큼 잘하는 특정 친구를 라이벌로 정해 놓고 그 친구를 항상 이기겠다고 의지를 불태우곤 했습니다.
이런 의지가 초등학교로 이어졌습니다.
은채는 뭐든 잘 하려고 하고 처음 하는 것도 어설픈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집에서 연습을 합니다. 음악 줄넘기가 대표적이죠. 은채는 기본 줄넘기만 할 수 있는 자신과 제법 고난도의 줄넘기를 할 수 있는 선배 언니 오빠들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그 고난도 동작을 집에서 혼자 연습했습니다. 물론 덕분에 그 다음 주에는 이런저런 줄넘기 동작을 따라 할 수 있게 됐죠.
사실 요즘 제 고민은 이런 은채에게 다 잘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아니 사람은 다 잘 할 수 없다는 걸 가르쳐 줘야 하나, 아니면 나중에 스스로 깨닫고 아파할 때 위로 해줘야 하나 하는 것입니다. 아마 지금은 자신이 가진 능력의 한계와 탤런트, 즉 재능의 유무를 절감하고 어떤 분야를 스스로 접고 포기하기에는 이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서른이 넘어서 카피라이터에 재능-물론 그 전에도 글은 제법 쓴다는 소리는 들었지만-이 있고 이것이 천직인 걸 알고 이 분야에 매진한 뒤로 너무 늦게 시작했다는 아쉬움이 있는 저로서는 은채가 조금 일찍 자신이 잘하는 분야를 찾아 에너지를 집중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뭘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좀 여유롭고 편하고 느긋하게 학교를 다녔으면 하는 마음이 가장 큽니다. 40분 내내 각 잡고 앉아 있는 딸보다는 종종 선생님 몰래 짝과 장난을 치는 딸이길 바라는 마음인 것이죠. 아마 장난꾸러기 아들을 둔 엄마가 이 글을 보면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하실 겁니다. 하지만 너무 잘 하려고만 하는 자식을 보는 부모의 마음도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안 그래도 피곤하고 힘든 인생인데....
초등학교 때만큼이라도 좀 적당히 편하게 학교 다니면서 칭찬을 덜 기대하면, 아니 칭찬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그리고 누군가에게 칭찬 받지 않아도 자기는 충분히 소중하고 예쁜 사람이란 걸 믿으면서, 어린 시절만큼은 좀 편하고 자유롭게 누리길 바라는 마음. 엄마의 핀잔처럼, 참 현실 감각 없는 아빠의 마음일까요?